북한에서 나온 북역 고려사를 보고 있는데 삼국사기와 여러가지로 대비가 된다. 삼국사기는 고려 중기의 저작물이나 고려사는 조선 초기의 저작물이다. 고려사를 보면 반드시 초기에 편찬했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삼국사기는 모든 왕력을 본기로 분류하여 기록하고 있으나 고려사는 世家로 분류하여 기록하고 있다. 거기에 고려사는 고려 마지막 왕들인 우왕과 창왕을 왕씨가 아니라 신돈의 신씨로 바꾼 다음, '신우'와 '신창'이라 하여 세가가 아니라 열전에 넣고 있다. 이는 조선의 건국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반증이다. 역성혁명의 정당성이 조선 초기까지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자신이 없으니 이런 기록을 하게 된 것이다.

고려도 신라왕실의 입장에서는 지방 반란세력, 즉 역적이 세운 나라일 뿐이다. 하지만 삼국사기는 신라왕실을 그렇게 능멸하지 않았다. 이는 신라의 멸망과정이 고려와 달랐고, 또 신라는 멸망 직후 왕실이 새 정부인 조선왕조에 의해 토벌되다시피한 고려와 달랐다는 것도 큰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삼국사기에서 가장 신뢰성이 떨어지는 기록은 왕건이 출현하는 삼국사기의 마지막 부분이다. 삼국사기 집필진들이 고려의 신하들이어서 공정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혹자는 삼국사기는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끝나고 이후는 다른 역사책을 편찬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삼국사기를 읽다보면 결국 왕건이 천년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고려왕조를 창업한 것을 찬양하는 책이다.

구 삼국사는 신라말 아니면 고려초에 편찬되었을 것이고 거기에는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까지만 나와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왕건이 출현하지 않는다면 고려왕조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을 지 모른다.

5백년 이상 국정기록일지를 가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런데 이 중요한 조선왕조실록은 고려왕조실록을 본딴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고려왕조실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고려왕조실록에는 이성계를 분명히 역적으로 기록하고 있었을 것이다. 고려왕조실록의 소실에 대하여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이 아니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당연히 고려사를 쓴 조선의 개국세력을 의심한다.

만일 고려사를 조선초가 아니라 조선 중기에 편찬했다고 해도 같은 결과를 낳았을까? 조선 중기가 되면 조선왕조가 자신감을 가지고 고려왕조를 대할 수 있어서 고려사가 혹시 달라지지 않았을까?

일본서기 편찬진은 여구왕-여휘왕으로 이어지는 응신 앞을 잘라버렸다. 그리고 응신을 아무 관계도 없는 신공왕후에게 연결시켰다. 이는 한반도와의 관계를 단절하기 위하여 쓴 책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정부는 고려사만 편찬하고 발해사(대진국사)나 금사는 편찬하지 않았다. 왜 발해사나 금사는 편찬하지 않았을까? 혹시 금사를 편찬하면 이성계와 관련된 사항이 나와야 하기 때문인가? 혹시 조선 중기에 고려사를 편찬했다면 고려왕조실록도 남고, 대진국사나 금사도 자신있게 편찬하지 않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우리 정부가 해방 이후 남한사 뿐만 아니라 북한사도 정식으로 편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쪽을 편찬하다보면 친일파들이 정권을 잡고 나아가 일본군 장교가 대통령이 되는 것 같은 정통성 문제로 껄끄러운 것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발해사나 금사를 편찬하지 않았던 조선 정부의 오류를 답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