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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
2008.02
가야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9297 2008.02.15 23:20:00 (*.147.81.39) 가야사1 Comments 1009 Views 2 Voted / 0 Devoted
역사적 기록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을 뽑는 것은 사람마다 사관이 다르기 때문에 각기 다른 것이 보통이다. 정치학자는 정치사에서, 경제학자는 경제사에서, 사회학자는 사회변동에서 고를 것이다. 또 어렸을 때 꿈이 성장해감에 따라 달라지듯이 역사공부를 해 감에 따라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기록도 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정답이 없는 문제지만, 내 관점에서 가야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이라 생각되는 것을 뽑아볼까 한다.
가야사를 기록한 대표서적에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와 삼국유사 가락국기가 있다. 각각에서 하나씩 뽑기 전에 지나간 삼국사기 각국 본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을 돌아보기로 하자.
*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
- 고구려와 전연의 전쟁 중 기마민족국가의 남하를 기록한 흘해이사금 35년조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전을 전기신라로, 이때부터를 중기신라로 구분하는 신라사의 분수령이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
- 고구려가 북연을 흡수하여 훗날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공에 맞설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던 장수왕 24년조이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
- 고구려의 잔국토벌 다음 해에 백제의 일파가 왜국을 건국하였음을 알리는 아신왕 6년조이다.
한국사란 성스러운 단군족이 하늘에서 내려와 지금까지 역사를 만들어온 것이 아니라 여러 민족이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지고 모여들어 하나의 문화공동체를 만들며 발전해온 것이다.
그러면 가야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은 무엇인가?
(1) 삼국사기 신라본기
- 가야 7국이 삼한백제에게 멸망하여 한반도에 삼한체체가 만들어진 것을 기록한 내해이사금 32년조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지 3년 후에 최근에 즉위하여 아직 자립위왕 하지 않은 백제 진왕으로부터 가야 7국 평정에 군사를 보내 신속한 왜왕 비미호에게 칠지도가 가게 된다.
(2) 삼국유사 가락국기
- 삼한백제가 고구려에게 멸망하여 삼한의 변진한 체제가 해체되고, 그 결과 가야제국이 재건국되는 상황을 기록한 영락 17년의 좌지왕 건국조이다. 이 무렵에 금관가야를 비롯하여 여러 가야제국들이 180년 만에 일제히 재건국되었다. (좌지왕 집단 자체가 영락 17년에 내려온 고구려군일 가능성도 있다.-조약돌설)
이 기록들은 중국사서와도 일치하는데 후한서-삼국지-진서로 이어지는 3-4세기 동이전 변진한조의 처음과 끝에 해당한다. 우리의 두 사서는 마한-변한-진한으로 이루어진 삼한체제의 기본적 존재시점을 사건의 연도마저 정확하게 서기 227년-407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가야사를 기록한 대표서적에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와 삼국유사 가락국기가 있다. 각각에서 하나씩 뽑기 전에 지나간 삼국사기 각국 본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을 돌아보기로 하자.
*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
- 고구려와 전연의 전쟁 중 기마민족국가의 남하를 기록한 흘해이사금 35년조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전을 전기신라로, 이때부터를 중기신라로 구분하는 신라사의 분수령이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
- 고구려가 북연을 흡수하여 훗날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공에 맞설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던 장수왕 24년조이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
- 고구려의 잔국토벌 다음 해에 백제의 일파가 왜국을 건국하였음을 알리는 아신왕 6년조이다.
한국사란 성스러운 단군족이 하늘에서 내려와 지금까지 역사를 만들어온 것이 아니라 여러 민족이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지고 모여들어 하나의 문화공동체를 만들며 발전해온 것이다.
그러면 가야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은 무엇인가?
(1) 삼국사기 신라본기
- 가야 7국이 삼한백제에게 멸망하여 한반도에 삼한체체가 만들어진 것을 기록한 내해이사금 32년조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지 3년 후에 최근에 즉위하여 아직 자립위왕 하지 않은 백제 진왕으로부터 가야 7국 평정에 군사를 보내 신속한 왜왕 비미호에게 칠지도가 가게 된다.
(2) 삼국유사 가락국기
- 삼한백제가 고구려에게 멸망하여 삼한의 변진한 체제가 해체되고, 그 결과 가야제국이 재건국되는 상황을 기록한 영락 17년의 좌지왕 건국조이다. 이 무렵에 금관가야를 비롯하여 여러 가야제국들이 180년 만에 일제히 재건국되었다. (좌지왕 집단 자체가 영락 17년에 내려온 고구려군일 가능성도 있다.-조약돌설)
이 기록들은 중국사서와도 일치하는데 후한서-삼국지-진서로 이어지는 3-4세기 동이전 변진한조의 처음과 끝에 해당한다. 우리의 두 사서는 마한-변한-진한으로 이루어진 삼한체제의 기본적 존재시점을 사건의 연도마저 정확하게 서기 227년-407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