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지역 낙랑고분에서 지금까지 허리에 차는 버클의 일종인 교구가 7점 나왔다고 한다.(금으로 만든 교구가 1개, 은으로 만든 교구가 6개) 국립박물관에 금으로 만든 교구가 전시되어있는데 현재 국보이다. 잘 보면 동물문양으로서 전형적인 북방문화의 일종인데 이런 교구는 한나라 당시 중원에서는 거의 출토되지 않고 주로 외곽지대에서만 나온다고 한다(낙랑군 연구, 오영찬, 사계절, 2006) . 동쪽의 한반도, 서쪽의 신강성, 남쪽의 운남성이다.  이런 북방식 교구가 중원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것은 북방민족이 중원에 대거 진입한 중국의 삼국시대 이후이다.

금교구는 일개 태수가 차고 다니닐 수 없을 정도의 귀중품이다. 이에 대하여 "낙랑군 연구"의 저자는 후한이 재지세력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그들에게 나누어준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 있다. 즉, 한나라 정부의 하사품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군현에 환심을 사야 할 정도라면 군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요동이나 요서에서는 안 나온다. 군현이란 본래 태수를 보내서 통치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태수 말고 또 다른 재지 권력자가 있다는 말인가? 그런 권력자가 있다면 태수가 제대로 통치할 수 있을까?

또 하나, 나누어 주려면 자신들과 관련된 어떤 것을 나누어 주어야지 왜 북방민족 풍습으로 된 물건을 나누어 주는가? 예를 들면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선물을 준다면 미국적인 것을 택할까? 아니면 고려청자같은 한국적인 것을 택할까? 따라서 이는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고고학적인 면은 많은 자료를 모아놓아 편리하게 볼 수 있는데 해석적인 면은 과거의 통설을 모아놓는데 그쳐 별다른 도움이 못된다. 예를 들어 고구려-위 전쟁 직후에 있었던 삼한과 위나라 사이에 벌어진 기리영 전투를 고이왕조에 나오는 고구려-위 전쟁 당시에 행했던 낙랑공격으로 해석하는데 이는 사건의 연도부터 맞지 않아 분명 오류다. 그 외에도 서기 300년의 낙랑국 신라귀복 같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낙랑기록은 거의 읽지 못한다. 서울대학교가 주도하는 한국고대사 연구는 고고학적인 진보를 빼고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