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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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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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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서제(庶弟)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9277 2008.01.07 09:44:01 (*.147.81.39) 백제사0 Comments 867 Views 12 Voted / 0 Devoted
삼국사기를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관계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들은 주로 왕을 비롯한 지배층이다. 이는 고대의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로 가장 정통성이 큰 경우는 왕족과의 혈족관계에서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백제본기 역시 이해가 어려운 표현이 여럿 나오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왕의 '제2자'라는 표현과 '서제'라는 표현이다.
백제본기의 '제2자'라는 표현을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왕통을 이어가는데 부자관계가 아니고 어떤 여인을 매개로 하여 연결된 경우를 이른다. 그러면 실제관계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제2자로 기술하는 것이다. 심지어 형제관계도 이를 만족하면 제2자가 된다. 예를 하나만 들면 개로왕이 자신의 여인을 곤지에게 주어 자립위왕을 시켰으므로, 곤지가 만일 백제왕이 되었다면 곤지는 개로왕의 동생이 아니라 제2자가 되는 것이다.
무령왕은 동성왕의 배다른 동생이다. 일부 무령왕을 동성왕의 형으로 써 놓은 책을 보았는데 이는 일본서기의 해석을 잘못하여 생긴 오류다. 무령왕이 그냥 동성왕의 배다른 동생이면 동생을 뜻하는 弟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무령왕의 어머니인 '초향번준희'를 매개로 담로관계에 의해 엮어진 동생이라서 弟가 아니고 제2자가 되는 것이다.
근초고왕 역시 비류왕의 제2자이다. 이로부터 근초고왕은 비류왕의 아들이 아니라 근초고왕의 왕비나 왕모가 비류왕계열과 어떤 관련을 가진 사람임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면 실제로 두번째 아들인 경우에는 어떻게 쓰는가? 이는 진사왕조가 보여준다. "진사왕 근구수왕之<仲子>." 仲子에서 仲은 버금중이라 하여 두번째 아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제 서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서제는 백제본기에 3번 나오는데 모두 (1) 왕통이 자주 바뀌던 4-5세기에만 나오며, (2) 제2인자였던 내신좌평을 임명할 때 나온다.
* 비류왕 十八年, 春正月, 以王 庶弟 <優福>爲<內臣佐平>
* 아신왕 三年, 春二月, 拜 庶弟 <洪>爲<內臣佐平>
* 전지왕 三年, 春二月, 拜 庶弟 <餘信>爲<內臣佐平>
이런 경우 삼국사기가 일정한 원칙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보면 이중 하나만 확실히 알면 된다. 첫번째인 비류왕의 기록을 보면 그는 고이왕계가 아니라 초고-구수왕계이다. 성은 부여계인 解씨로 추정된다. 반면에 우복은 優씨로 고이왕계이다. 따라서 성이 다른 왕통인 것이다. 즉, 두 지배층이 결합하여 권력을 분점하는 것이다.
따라서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성이 다른 왕통인 경우에는 서제라는 표현을 썼다고 생각한다. 아신왕조에 나오는 서제 홍은 성이 없는데 당시 내신좌평에 오를 실력자라면 아마 고이왕계인 眞씨이거나 優씨일 것이다.
전지왕조에 나오는 여신은 물론 부여씨이다. 이 전지왕 3년, 즉 영락 17년 남해안의 삼한백제 마지막 세력이 고구려군에게 무너지고 등장하는 여신이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최초의 부여씨다. 즉, 전지왕 3년조의 기록이 광개토왕비문의 영락 17년조에 해당한다. 영락 17년의 전투는 그해 정월이어서 시기가 맞다(삼한사의 재조명).
전지왕의 성은 부여계인 解씨로 추정된다. 여신이 상좌평이 되어 전권을 장악한 후에 전지왕은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백제사 최초로 백제왕이라는 책봉을 받는다. 송나라의 기록은 여영이라 하여 전지왕을 부여씨로 기록하고 있지만 삼국사기에는 성은 없고 이름만 있다. 이는 김부식이 본 삼국사기 원사료에 이름만 나오고 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요약하면 백제본기의 왕의 庶弟란 성이 다른 왕통을 뜻한다고 본다.
백제본기의 '제2자'라는 표현을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왕통을 이어가는데 부자관계가 아니고 어떤 여인을 매개로 하여 연결된 경우를 이른다. 그러면 실제관계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제2자로 기술하는 것이다. 심지어 형제관계도 이를 만족하면 제2자가 된다. 예를 하나만 들면 개로왕이 자신의 여인을 곤지에게 주어 자립위왕을 시켰으므로, 곤지가 만일 백제왕이 되었다면 곤지는 개로왕의 동생이 아니라 제2자가 되는 것이다.
무령왕은 동성왕의 배다른 동생이다. 일부 무령왕을 동성왕의 형으로 써 놓은 책을 보았는데 이는 일본서기의 해석을 잘못하여 생긴 오류다. 무령왕이 그냥 동성왕의 배다른 동생이면 동생을 뜻하는 弟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무령왕의 어머니인 '초향번준희'를 매개로 담로관계에 의해 엮어진 동생이라서 弟가 아니고 제2자가 되는 것이다.
근초고왕 역시 비류왕의 제2자이다. 이로부터 근초고왕은 비류왕의 아들이 아니라 근초고왕의 왕비나 왕모가 비류왕계열과 어떤 관련을 가진 사람임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면 실제로 두번째 아들인 경우에는 어떻게 쓰는가? 이는 진사왕조가 보여준다. "진사왕 근구수왕之<仲子>." 仲子에서 仲은 버금중이라 하여 두번째 아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제 서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서제는 백제본기에 3번 나오는데 모두 (1) 왕통이 자주 바뀌던 4-5세기에만 나오며, (2) 제2인자였던 내신좌평을 임명할 때 나온다.
* 비류왕 十八年, 春正月, 以王 庶弟 <優福>爲<內臣佐平>
* 아신왕 三年, 春二月, 拜 庶弟 <洪>爲<內臣佐平>
* 전지왕 三年, 春二月, 拜 庶弟 <餘信>爲<內臣佐平>
이런 경우 삼국사기가 일정한 원칙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보면 이중 하나만 확실히 알면 된다. 첫번째인 비류왕의 기록을 보면 그는 고이왕계가 아니라 초고-구수왕계이다. 성은 부여계인 解씨로 추정된다. 반면에 우복은 優씨로 고이왕계이다. 따라서 성이 다른 왕통인 것이다. 즉, 두 지배층이 결합하여 권력을 분점하는 것이다.
따라서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성이 다른 왕통인 경우에는 서제라는 표현을 썼다고 생각한다. 아신왕조에 나오는 서제 홍은 성이 없는데 당시 내신좌평에 오를 실력자라면 아마 고이왕계인 眞씨이거나 優씨일 것이다.
전지왕조에 나오는 여신은 물론 부여씨이다. 이 전지왕 3년, 즉 영락 17년 남해안의 삼한백제 마지막 세력이 고구려군에게 무너지고 등장하는 여신이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최초의 부여씨다. 즉, 전지왕 3년조의 기록이 광개토왕비문의 영락 17년조에 해당한다. 영락 17년의 전투는 그해 정월이어서 시기가 맞다(삼한사의 재조명).
전지왕의 성은 부여계인 解씨로 추정된다. 여신이 상좌평이 되어 전권을 장악한 후에 전지왕은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백제사 최초로 백제왕이라는 책봉을 받는다. 송나라의 기록은 여영이라 하여 전지왕을 부여씨로 기록하고 있지만 삼국사기에는 성은 없고 이름만 있다. 이는 김부식이 본 삼국사기 원사료에 이름만 나오고 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요약하면 백제본기의 왕의 庶弟란 성이 다른 왕통을 뜻한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