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o Korean History+새한국고대사
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첨부파일은 hwp, zip, jpg, gif 만 가능합니다.
※첨부파일은 hwp, zip, jpg, gif 만 가능합니다.
글수 941
02
2008.01
2008.01
사건 연도와 친족관계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9273 2008.01.02 10:17:38 (*.147.81.84) 기타0 Comments 789 Views 9 Voted / 0 Devoted
우리가 고대사서를 보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현대의 시각으로 고대를 보려 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에게도 삼국시대 당시는 이해하기 어려운 시기였는데 하물며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삼국사기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서를 볼 때 가장 기본적인 사항은 사건연도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아래에 잠시 언급하였는데 후한에 왜왕 수승의 사신이 왔다는 것이나, 일본서기 숭신 10년에 전국에 4도장군을 보내 자신이 왕임을 알리는 것은 사건연도를 모르면 각기 독립적인 사건일 뿐이다. 하지만 사건연대를 알게 되면 2개의 독립적인 점이 선으로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역사학이란 그런 것이다. 후한에 수승의 사신이 왔다는 것이니 숭신이 전국에 4도장군을 보냈다는 것 자체는 사료읽기지 역사학이 아니다. 이 둘을 선으로 연결할 때 그것이 비로소 역사학이 되는 것이다.
인터넷 가상공간에는 사료에 대하여 나보다 훨씬 잘 아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들을 동호인이라고 하지 역사학자라고 하지 않는다. 그 주된 이유는 그들이 역사적 사건을 선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단순히 사료읽기에 그치기 때문이다. 사료를 읽어서 저장하고 재현하는 능력만으로 따지면 컴퓨터가 훨씬 더 잘한다. 동호인에서 역사학자로의 전환하기위해서는 단순히 기억력만으로 되지 않고 사건 사이에 선을 그어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삼국사기에 보면 부자관계로 적혀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현대를 사는 우리는 흔히 이들이 혈연적으로 연결된 아버지와 아들일 것이라고 추정하게 되고, 생물학적으로 아들을 낳을 수 있는 나이를 가지고 재위 가능한 시기를 따진다. 하지만 고대에는 친자 뿐만 아니라 양자도 있고, 양자도 아니고 사료상의 부자관계도 있으므로 이런 생물학적인 관계는 두 사람이 친자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사건연도를 확인하는데 전혀 쓸모 없는 일이다. 사건연도는 사건 그 자체를 보고 찾아야 한다.
장인-사위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사서에 누구의 딸을 왕비로 맞았다고 하면 그것이 친딸인지, 양딸인지, 친족범위내의 여인인지, 아니면 사료상의 장인-사위인지 등등 구분하기가 어렵다. 이것을 모두 무시하고 무조건 실제 생물학적인 장인-사위 관계로 연도를 찾으면 사건연도의 이해가 엉망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먼 훗날 20세기 한국 정부의 수반을 고대사서 방식으로 기록한다면 다음처럼 쓸 것이다.
철종: 1849-1863
고종: 1863-1927, 철종의 아들
순종: 1927-1948, 고종의 아들
승만: 1948-1960, 순종의 아들
"승만제의 동생이 보선제인데 승만제 아들이 어려 보선제가 왕위에 올랐으나 승만제의 아들인 정희제가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정희제가 죽고 동생인 규하제가 잠시 왕위에 올랐으나, 역시 정희제의 아들인 두환제가 정변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다. 두환제는 아들 대신에 동생인 태우제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나 태우제가 죽고는 왕위가 보선제의 아들인 영삼제에게 갔다. 영삼제 이후에는 그의 동생인 대중제가 왕위를 이었고, 대중제는 자기 아들인 무현제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는데, ..."
우선 위의 왕력을 보면 이상한 것이 눈에 띨 것이다. 고종과 순종의 재위기간이 다른 왕들에 비하여 비정상적으로 길다는 것이다. 이는 고종과 순종 재위기간에 조선에 무슨 변고가 생겨 두 왕의 재위기간을 연장하여 그 기간을 채웠다는 뜻이다. 두번째는 왕호가 순종까지는 '종'으로 끝나다가 승만부터는 그것이 없었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승만은 순종의 아들이 아니라 순종과 승만 사이에 왕통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건 그렇고, 이것을 보고 20세기 후반의 한국현대사는 부자상속이 몇번이고 형제상속이 몇번이었다는 식으로 이해한다면 사료해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백제사를 두고 아떤 왕 이전에는 형제상속이, 이후에는 부자상속이 주를 이었다고 해석한 사람을 보았는데 전형적인 이런 예이다. 따라서 고대사서를 읽을 때 친족관계는 항상 여러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나는 백제본기에 나오는 '제2자'를 이해하는 데 10년 걸렸다. '무령왕은 牟大王之第二子也'에서 이해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힌트는 무령왕릉 출토 지석과 이를 기록한 일본서기에 있었다.
사서를 볼 때 가장 기본적인 사항은 사건연도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아래에 잠시 언급하였는데 후한에 왜왕 수승의 사신이 왔다는 것이나, 일본서기 숭신 10년에 전국에 4도장군을 보내 자신이 왕임을 알리는 것은 사건연도를 모르면 각기 독립적인 사건일 뿐이다. 하지만 사건연대를 알게 되면 2개의 독립적인 점이 선으로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역사학이란 그런 것이다. 후한에 수승의 사신이 왔다는 것이니 숭신이 전국에 4도장군을 보냈다는 것 자체는 사료읽기지 역사학이 아니다. 이 둘을 선으로 연결할 때 그것이 비로소 역사학이 되는 것이다.
인터넷 가상공간에는 사료에 대하여 나보다 훨씬 잘 아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들을 동호인이라고 하지 역사학자라고 하지 않는다. 그 주된 이유는 그들이 역사적 사건을 선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단순히 사료읽기에 그치기 때문이다. 사료를 읽어서 저장하고 재현하는 능력만으로 따지면 컴퓨터가 훨씬 더 잘한다. 동호인에서 역사학자로의 전환하기위해서는 단순히 기억력만으로 되지 않고 사건 사이에 선을 그어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삼국사기에 보면 부자관계로 적혀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현대를 사는 우리는 흔히 이들이 혈연적으로 연결된 아버지와 아들일 것이라고 추정하게 되고, 생물학적으로 아들을 낳을 수 있는 나이를 가지고 재위 가능한 시기를 따진다. 하지만 고대에는 친자 뿐만 아니라 양자도 있고, 양자도 아니고 사료상의 부자관계도 있으므로 이런 생물학적인 관계는 두 사람이 친자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사건연도를 확인하는데 전혀 쓸모 없는 일이다. 사건연도는 사건 그 자체를 보고 찾아야 한다.
장인-사위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사서에 누구의 딸을 왕비로 맞았다고 하면 그것이 친딸인지, 양딸인지, 친족범위내의 여인인지, 아니면 사료상의 장인-사위인지 등등 구분하기가 어렵다. 이것을 모두 무시하고 무조건 실제 생물학적인 장인-사위 관계로 연도를 찾으면 사건연도의 이해가 엉망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먼 훗날 20세기 한국 정부의 수반을 고대사서 방식으로 기록한다면 다음처럼 쓸 것이다.
철종: 1849-1863
고종: 1863-1927, 철종의 아들
순종: 1927-1948, 고종의 아들
승만: 1948-1960, 순종의 아들
"승만제의 동생이 보선제인데 승만제 아들이 어려 보선제가 왕위에 올랐으나 승만제의 아들인 정희제가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정희제가 죽고 동생인 규하제가 잠시 왕위에 올랐으나, 역시 정희제의 아들인 두환제가 정변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다. 두환제는 아들 대신에 동생인 태우제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나 태우제가 죽고는 왕위가 보선제의 아들인 영삼제에게 갔다. 영삼제 이후에는 그의 동생인 대중제가 왕위를 이었고, 대중제는 자기 아들인 무현제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는데, ..."
우선 위의 왕력을 보면 이상한 것이 눈에 띨 것이다. 고종과 순종의 재위기간이 다른 왕들에 비하여 비정상적으로 길다는 것이다. 이는 고종과 순종 재위기간에 조선에 무슨 변고가 생겨 두 왕의 재위기간을 연장하여 그 기간을 채웠다는 뜻이다. 두번째는 왕호가 순종까지는 '종'으로 끝나다가 승만부터는 그것이 없었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승만은 순종의 아들이 아니라 순종과 승만 사이에 왕통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건 그렇고, 이것을 보고 20세기 후반의 한국현대사는 부자상속이 몇번이고 형제상속이 몇번이었다는 식으로 이해한다면 사료해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백제사를 두고 아떤 왕 이전에는 형제상속이, 이후에는 부자상속이 주를 이었다고 해석한 사람을 보았는데 전형적인 이런 예이다. 따라서 고대사서를 읽을 때 친족관계는 항상 여러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나는 백제본기에 나오는 '제2자'를 이해하는 데 10년 걸렸다. '무령왕은 牟大王之第二子也'에서 이해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힌트는 무령왕릉 출토 지석과 이를 기록한 일본서기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