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2세기 개루왕조와 4세기 근초고왕조를 백제본기 2대공백이라 부른다.  개루왕은 39년 재위 중 5년 북한산성을 쌓은 기록이 마지막이고 34년동안 왕의 행적이 없다. 근초고왕조 역시 재위 30년 중 2년째에 조정좌평 진정을 비난하는 기록이 나오고 공백이 시작된 후 기록이 다시 나오는 것은 재위 21년째이다.

그런데 이 두 왕의 공백기록은 다음 2가지 공통점이 있다.

1. 백제왕을 칭하던 시대이다.
- 4세기 이전의 백제왕 중에 백제왕이라 불린 사람은 1-2세기 3루왕과 4세기의 근초고왕이다.

2. 공백이 끝나는 것이 신라관계 기록이다.
- 긴 공백이 마감되며 나타나는 첫번째 기록이 신라관계 기록이다. 개루왕조는 신라인 길선이 반란을 을으켰다가 실패하여 망망하는 기록이고, 근초고왕조는 신라에 친선사신을 보낸 기록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본다. 개루왕조는 길선의 반란 실패에 의해 진왕제의 자립위왕이 끝났다. 그리고 백제는 더 이상 백제왕을 칭할 수 없는 상태인 韓의 1국이 된 것이다. 반면에 근초고왕조는 신라왕실의 여인을 왕후로 세우고 자립위왕하면서 다시 진왕(백제왕)을 천명한 것이다. 즉 진왕제를 회복한 것이다. 삼국사기가 근초고왕에 대하여 "원대한 식견이 있었다"고 하였는데 이는 충분히 일리가 있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