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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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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
2007.11
4세기 이전 백제의 천도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9245 2007.11.19 22:26:18 (*.232.248.181) 백제사0 Comments 583 Views 9 Voted / 0 Devoted
백제는 4세기 이전에 다음과 같은 천도가 있었다.
최초 건국지: 위례성
[1] 천도 1
온조왕 13년(BC 6); 가을 7월, 한산 아래에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백성들을 이주시켰다. 가을 8월, 마한에 사신을 보내어 천도를 알리고 북으로는 패하, 남으로는 웅천, 서로는 바다, 동으로는 주양에 이르렀다. 겨울 9월, 성을 쌓고 대궐을 세웠다.
온조왕 14년(BC 5); 정월,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遷都).
- 삼국유사 역시 한산으로 천도하였다고 한다.
건국 초에 낙랑을 피해 위례성에서 한산으로 천도한 기록이다. 따라서 한산은 위례성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으나 마한과는 상당히 가까웠을 것이라고 본다. 위례성은 성 이름이고 한산은 지역 이름이다. 특히 위례는 이후 신라의 금성처럼 백제의 수도를 뜻하는 보통지명으로 쓰인다.
신라본기는 한반도 중부에서 남하하는 기록이 확실한데 백제본기는 불확실하다. 그 이유는 신라는 2세기에 걸쳐 이동하였으나 백제는 바다를 통해 이동하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해양국가의 모습을 보이는 온조왕조를 읽기가 쉽지 않다. 나는 백제가 요서에서 건국하여 한반도로 영역을 확대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최초로 마한을 만나는 온조왕 10년이 백제가 만주에서 한반도로 세력을 확대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초고왕 22년(187): 여름 5월 왕도의 우물과 한수가 모두 말랐다.
- 이는 왕도가 한수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온조 14년 이래로 수도는 한산이었다.
[2] 천도 2
근초고왕 26년(371);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왕 사유를 죽임.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移都漢山).
도대체 근초고왕은 수도를 어디에서 한산으로 천도하였다는 뜻인가? 어느 곳에서 한산으로 천도하였다면 그 어느 곳으로 간 것은 언제인가?
온조왕이 천도한 것은 말갈과 낙랑을 피해서였다고 그 이유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낙랑태수의 낙랑을 피해서였다. 그런데 근초고왕조의 천도에는 이유가 없다. 근초고왕은 왜 천도했을까? 고구려에 대승을 거두고 천도한 것을 보면 승전하였기 때문인 것 같은데 승전하면 수도를 옮기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근초고왕이 한강유역의 소국들을 지휘하고 고구려를 격파한 후 백제왕을 칭할 때 금강유역의 백제 진왕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두 나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http://histopia.new21.org/zero/zboard.php?id=neo&page=1&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여구&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44
최초 건국지: 위례성
[1] 천도 1
온조왕 13년(BC 6); 가을 7월, 한산 아래에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백성들을 이주시켰다. 가을 8월, 마한에 사신을 보내어 천도를 알리고 북으로는 패하, 남으로는 웅천, 서로는 바다, 동으로는 주양에 이르렀다. 겨울 9월, 성을 쌓고 대궐을 세웠다.
온조왕 14년(BC 5); 정월,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遷都).
- 삼국유사 역시 한산으로 천도하였다고 한다.
건국 초에 낙랑을 피해 위례성에서 한산으로 천도한 기록이다. 따라서 한산은 위례성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으나 마한과는 상당히 가까웠을 것이라고 본다. 위례성은 성 이름이고 한산은 지역 이름이다. 특히 위례는 이후 신라의 금성처럼 백제의 수도를 뜻하는 보통지명으로 쓰인다.
신라본기는 한반도 중부에서 남하하는 기록이 확실한데 백제본기는 불확실하다. 그 이유는 신라는 2세기에 걸쳐 이동하였으나 백제는 바다를 통해 이동하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해양국가의 모습을 보이는 온조왕조를 읽기가 쉽지 않다. 나는 백제가 요서에서 건국하여 한반도로 영역을 확대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최초로 마한을 만나는 온조왕 10년이 백제가 만주에서 한반도로 세력을 확대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초고왕 22년(187): 여름 5월 왕도의 우물과 한수가 모두 말랐다.
- 이는 왕도가 한수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온조 14년 이래로 수도는 한산이었다.
[2] 천도 2
근초고왕 26년(371);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왕 사유를 죽임.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移都漢山).
도대체 근초고왕은 수도를 어디에서 한산으로 천도하였다는 뜻인가? 어느 곳에서 한산으로 천도하였다면 그 어느 곳으로 간 것은 언제인가?
온조왕이 천도한 것은 말갈과 낙랑을 피해서였다고 그 이유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낙랑태수의 낙랑을 피해서였다. 그런데 근초고왕조의 천도에는 이유가 없다. 근초고왕은 왜 천도했을까? 고구려에 대승을 거두고 천도한 것을 보면 승전하였기 때문인 것 같은데 승전하면 수도를 옮기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근초고왕이 한강유역의 소국들을 지휘하고 고구려를 격파한 후 백제왕을 칭할 때 금강유역의 백제 진왕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두 나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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