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초에 신라는 여러번 천도하는데 그 이유는 남쪽으로 이동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는 수도를 정했다고도 볼 수 없기 때문에 천도라는 말이 맞지가 않다. 그저 중심지가 이동하는 것일 뿐이다. 신라가 오늘날의 경주 지역에 자리잡는 것은 2세기 초의 다음 기록이다.

파사이사금 22년(101); 봄 2월, 성을 쌓고 월성이라 하였다. 가을 7월, 왕이 월성에 옮겨 살았다.

따라서 BC 1 세기에 한강 상류지역에 건국하였던 신라는 약 2세기에 걸쳐 남하한 셈이다. 좀 더 올라가면 BC 2 ~ BC 1 세기에 몽골의 유목지역 주도권을 놓고 벌어진 대사건으로 그에 연루된 일부 유목민족이 한반도로 들어온 것이 신라다(조약돌님 글 참조). 이들은 몽골초원시절 이미 한나라와 맞설 정도의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파사이사금은 초기신라의 대표적인 정복군주로서 1세기 당시 경북내륙 지역의 여러 소국들을 정복하였다. 이들이 충청이나 호남지역으로 가지 못한 것은 백제에게 밀렸기 때문이고, 경남지역으로 가지 못한 이유는 가야에게 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북내륙은 지형이 험해 방어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신라가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버틴 것은 비록 타의에 의한 것이었으나 파사이사금의 현명한 선택 덕분이었다.

파사이사금이 새로 쌓은 도성 이름을 왜 하필 월성이라고 하였느냐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반달 혹은 초승달 모양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최근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이후 신라는 천도하지 않는다. 구태여 천도를 따진다면 삼한백제의 진한시절인 4세기 초에 삼한백제의 진한지역 소국 통치정책에 따라 국가가 둘로 분열되어 절반이 지금의 김제지역으로 강제이주된 것이다. 벽골지는 이에 대한 고고학적 흔적이다. 하지만 이것도 분가라고 해야지 천도로 보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