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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지도 제작년대 논쟁

백제사 조회 수 2127 추천 수 0 2010.03.27 20:11:11

며칠전 칠지도 제작년대와 관련해서 '역사21'사이트에 livermini라는 분께서 올리신 글을

보았습니다...

 

요지는 칠지도의 명문에 제작년도가  태화4년 5월15일 혹은  11월 15일 병오라고 새겨져 있는데

태화 4년은 서기 230년이 될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주장 근거는 그당시 사용했던 달력으로 고증해보면 5월15일 11월15일은 계사, 기축일이랍니다...

 

어느 논문을 참고해서는  15일이 병오인 경우는 408년 11월15일로써 태화는 전지왕의 연호라고까지

주장하더군요...

 

저는 달력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역사방의 고수분들 주장에 혀만 내두릅니다..

칠지도는 신공왕후, 포상팔국의 난, 그리고 삼한백제를 설명하는 교수님의 로제타 스톤이었는데

'병오'일때문에 교수님의 주장이 뿌리채 흔들리는지요?

 

내내 '역사21'에서 교수님의 답변을 기다렸습니다...

 

 


댓글 '4'

一道安士

2010.03.28 16:40:42
*.179.113.66

칠지도의 기년은 태화4년까지가 X-ray로 확인된 공인기년이며 그 이후는 아직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판독이 태화4년 뒤가 ( )월 16일 병오 정양 ... 이런 식으로 나갑니다. 달은 불확실하지만 날짜는 15일이 아니고 16일이 맞을 것입니다. 질문하시는 분의 요점은 병오가 만일 날짜라 가정하는 경우에, 서기 230년의 12달 중에 15일 혹은 16일이 병오가 되는 경우가 없다는 뜻인지요?

물론 칠지도가 하루만에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병오가 날짜라면 최종 완성된 날이나, 왕에게 바쳐진 날이나,... 중에 하나가 되겠지요. 그리고 제한된 면적의 좁은 칼날 위에 ( )월 16(15)일 정양이나, ( )월 병오 정양 이라고 쓰면 될 것을 16(15)일 이라고 쓰고 병오라고 한 번 더 중복하여 썼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당시 삼한에서 어떤 달력을 썼는지가 문제가 되겠지만, 230년 당시의 동양에서 사용하던 모든 달력체계를 바탕으로 한 번 확인해 볼 필요는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230년의 12달의 16(또는 15)일이 병오가 아니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예를 들면,
A 역법에 의하면

230년 1월 16(또는 15)일 =
230년 2월 16(또는 15)일 =
...
230년 12월 16(또는 15)일 =


B 역법에 의하면

230년 1월 16(또는 15)일 =
230년 2월 16(또는 15)일 =
...
230년 12월 16(또는 15)일 =

어느 역법을 따르더라도 230년에는 12달 중에 16(또는 15)일에는 병오가 안 나온다는 뜻인가요? 주장하신다면 충분히 자료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병오가 없다는 것을 한 번 써서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칠지도의 기년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 삼국지 모두를 통해 동일한 기년확인이 가능하고, 삼국사기는 사건의 원인이 된 가야 7국평정의 달까지 정확하기 기록하고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서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만일 제 기년이 틀리면 현존하는 모든 사서가 틀리게 되고, 맞으면 현존하는 모든 사서가 맞게 됩니다. 더우기 제 칠지도 기년 찾는 방법은 칠지도를 보지 않고, 즉 칠지도가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고 가정하고 기년을 찾는 방법입니다. 제 책 삼한사의 재조명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역사21 사이트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왜 제 설명이 되어야 되어야 모든 사서에 일치하고, 그렇지 않으면 왜 또 모든 사서에 모순에 되는지를 전혀 모르실 것입니다. 즉, 삼국지 동이전의 어디를 보아야 칠지도의 존재를 알 수 있고, 삼국유사 어디에서 칠지도를 찾을 수 있는지,... 등등을 전혀 모른다는 뜻입니다.

전지왕이 보낸 것이 아닌가 하고 이야기하시는 분은 전지왕자가 왜국에 다녀왔으므로 혹시 어떻게 둘을 엮어볼 수 없을 것인가 하는 생각에서 이야기를 꺼낸 것 같은데, 전지왕이 그 정도의 정치적 비중을 가진 일을 하였으면 반드시 아신왕조나 전지왕조에 나와야 합니다. 삼국사기 읽는 가장 첫걸음은 삼국사기에 나올 수 있는 사건과 나올 수 없는 사건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전지왕을 이야기하시는 분은 왜 여구나 여휘나 모두 백제왕인데 왜 하필 여휘는 왕세자인지를 모를 것입니다. 또 왜5왕 중 흥은 왜 왕이 아니고 왕세자인지도 모를 것입니다. 칠지도 이해의 마지막 관문은 왜 백제왕이 아니라 왕세자가 칼을 보냈느냐일 것인데 제 설명 외에는 다른 것은 없습니다. 이 역시 삼국지 동이전의 진왕기록을 이해하지 못하면 답변하지 못합니다. 삼한사의 재조명2에 나올 것입니다.

단, 하나 남은 문제는 고고학적 문제로 3세기에 칠지도 만드는 상감기법으로 만든 칼이 칠지도 외에는 아직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고학하시는 분 말씀이 그런 제조법은, 중국 출현은 물어보지 않아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한반도에서는 4세기에 출현하여 5세기에 대중화되었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통설이라고 합니다. 칠지도가 3세기가 되면 출현시점이 1세기가 앞당겨진다는 것이지요.

내린재

2010.03.30 21:12:11
*.10.110.7

저는 병오정양이 길상구에 불과하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는데요. 丙은 음양오행상 남쪽이고 남쪽은 화기를 뜻하므로 불기운이 가장 왕성 때 만들었다는 의미라는 것이죠. 실제제작시기인 5월16일이 병오일이 아니더라도 가져다 붙일 수 있는 표현인지 궁금해지네요.

一道安士

2010.03.31 22:09:21
*.232.248.181

"어느 논문을 참고해서는 15일이 병오인 경우는 408년 11월15일로써 태화는 전지왕의 연호라고까지
주장하더군요..." - 그 어느 논문이 어디인지를 찾았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것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
ㆍ홍성화 고려대연구원, 기존 통설 뒤집어 주장

고대 한·일 관계 해석의 핵폭탄인 칠지도(七枝刀)가 기존 통설인 369년이 아니라 408년에 제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홍성화 고려대 동아시아문화교류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열린 한일관계사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이소노카미(石上) 신궁(神宮) 칠지도에 관한 일고찰’)에서 “칠지도는 백제 전지왕(재위 405~420년)이 408년 11월16일 세자(구이신왕)의 탄생에 즈음하여 만들어 409년 사신을 통해 일본왕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칠지도는 6개의 가지와 몸통 윗부분의 날을 합해 7개의 검을 붙였다고 해서 이름 붙은 신검(神劍). 칠지도에 새겨진 61자의 글자는 한·일 고대사 해석에 파란을 일으켜 왔다.

그런데 홍성화씨는 새로운 판독결과 ‘11월16일 병오’가 확연하므로 이에 합당한 ‘일간지(日干支)’를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 결과 4~6세기 사이 11월16일이 병오(丙午)인 날 가운데 408년, 즉 백제 전지왕 4년 때를 주목했다.

<광개토대왕비문>에 고구려의 침공을 받은(396년) 백제가 “왜와 화통했다(百殘違誓 與倭和通)”는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백제본기>에 나오는 “백제 전지왕 5년(409년) 왜의 사신이 와서 크게 우대했다”는 대목도 감안했다. 홍성화씨에 따르면 이 시기(396~409년 사이)는 백제가 고구려의 침공에 어려움을 겪자 왜를 끌어들여 대응했던 시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홍씨는 백제가 군대를 파견해준 왜왕을 후왕(侯王)의 지위로 승인하고, 고구려와의 전쟁이라는 복잡한 국제관계에서 백제의 입지를 확고하게 굳히는 의미에서 칠지도를 하사했다고 보고 있다. 왜가 백제에 지원군을 보낸 이후 박사 왕인(王仁)을 파견한 것(405년)도 같은 칠지도 하사와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태○’는 백제의 독자연호

그는 또 지금까지는 중국 동진의 연호로 파악됐던 ‘태○’가 백제 전지왕의 연호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백제가 연호를 썼다는 기록은 없으나 고구려(광개토대왕)와 신라(법흥왕)가 독자연호를 쓰고 있었음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씨는 이어 명문에 나오는 ‘기생성음(奇生聖音)’ 가운데 ‘성음’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의 불교용어라는 데 주목했다. 그럴 경우 ‘기생성음’은 “‘부처님의 가호’로 진귀하게 태어났다”고 해석될 수 있다. 백제에 불교가 들어온 시기가 침류왕 원년(384년)이므로 칠지도의 제작연도는 적어도 통설이었던 369년은 아니라는 게 홍씨의 주장이다.

고려대학원에서 ‘4~6세기 한일관계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홍성화씨는 “결국 칠지도는 408년 11월16일 백제 전지왕이 왕세자(구이신왕)의 탄생을 계기로 후왕(侯王), 즉 일본왕에게 하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전지왕 5년은 인덕의 즉위기록입니다. 이분은 일본서기 연대를 못 읽습니다. 왕인이 왜국에 간 응신16년은 405년이 아니라 402년입니다. 역시 이분은 일본서기 연대를 못 읽습니다. 단 2개만 보았지만 아마 5세기 중반 이전의 다른 기년도 못 읽을 것입니다.

성음이 불교용어라고 하였는데 이는 칼을 보낸 사람의 신분을 의미하는 구절입니다. 성음이 부처님을 의미한다는 견해와 진왕(엄들의 지배자)을 의미한다는 견해 중에 어느 것이 정확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일본서기는 백제가 칠지도를 보낸 이유를 가야7국 평정에 군대를 보내주었기 때문으로 설명하지 고구려와의 전쟁에 군대를 보내준 데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더우기 397년의 왜와 화통했다는 이야기는 왜국이 군대를 보내주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397년에 백제본기에 왜국이 최초로 출현하는데, 이는 이는 396년에 토벌된 잔국이 다음 해인 397년 1월에 왜의 땅에 다시 국가를 건국하였기 때문입니다.

왜가 군대를 보내 백제를 도왔다고 하는데 어디에 군대를 보냈다고 나옵니까? 광개토왕비문을 보면 한반도에 그냥 왜가 있는 것입니다. 5세기 초는 일본고대사에서 초대형 고분이 성립하는 시기, 즉 정복을 통한 국가건국기입니다. 왜국을 정벌하여 통일하기에도 한참 모자란 판에 어떻게 군대를 보냅니까?

전지왕은 재위 4년째 부여씨의 등장 이후 이름뿐인 왕이었는데 어떻게 진왕인 인덕을 후왕으로 임명하겠습니까? 상식을 벗어난 해석입니다. 백제가 독자연호를 사용하였다고 했는데 고고학적으로 단 한번이라도 나온 적이 있습니까?

더 지적할 수도 있지만 이 정도 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어떻게 칠지도 연호를 찾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나온 해프닝일 뿐입니다. 칠지도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다 있기 때문입니다.

一道安士

2010.04.19 14:00:24
*.232.248.181

"병오정양"은 햇볕이 가장 뜨거울 때, 즉 기가 가장 왕성할 때 만들어졌다는 길상구입니다. 일부에서 병오를 해석하기를 태화 4년 ( )월 16일에 해당하는 간지의 날짜를 다시 쓴 것이라고 하는 분도 계신데, 좁은 칼날에 같은 의미를 두 번이나 중복하여 썼을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실제로 중국 고대에 "漢 · 魏 · 晉 代의 경(鏡)·검(劍)·대구(帶鉤) 등의 명문에서" 5월까지 붙여서 병오정양을 기가 왕성한 시기를 뜻하는 길상구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음력 5월은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기 때문입니다. 즉 병오정양이 길상구일 경우 ( )속의 달이 5월일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중국 야후에 들어가서 병오정양을 검색하면 '병오'와 '정양'이 세트로 함께 나오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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