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 Resources about Korean History

디지털의 옷을 입은 역사자료. 이제 史料는 공유되어야 한다.

VIEW

삼국유사 | 三國遺事

고려시대 일연에 의해 작성된 한국 고대 문화사의 최고 원천.

GO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고등학교 7차 교육과정 국사교과서

MORE

History through images & Photos, Maps

이미지와 사진, 그리고 지도로 본 역사

VIEW

오늘:
488
어제:
420
전체:
1,226,522

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첨부파일은 hwp, zip, jpg, gif 만 가능합니다.
게시물 혹은 댓글을 남기실때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시기 바랍니다.
비속어, 욕설, 반말 등을 사용하면, 본 사이트의 방침과 맞지 않으므로 글을 삭제하겠습니다.

▩[답변]무왕에 대한 고찰

백제사 조회 수 2068 추천 수 0 2010.03.26 14:15:09
▩조약돌 *.165.204.40

*서기 2009년 7월 24일에 정리한 내용을 올립니다 : 조약돌

 

 

KBS <역사추적>(프로그램 제목은「2부작 대발견! 미륵사 사리장엄 - 백제판 사랑과 전쟁. 서동, 선화공주를 버렸나?」임)에서 무왕이 살던 곳에 금이 많이 났으며, 그곳은 수십 년 전만 해도 금광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서동(백제 무왕)은『삼국유사』에 나오는 대로 왕이 되기 전에 금을 모았음이 확실하다. 단,『삼국유사』의 기록과는 달리, 서동은 자신이 모은 금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고, 선화의 집안(백제 안의 ‘신라 호족’)에 청혼할 때 자신이 왕족이라는 사실과, 재산이 많다는 점을 강조했을 가능성이 크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무왕은 가난한 과부가 용(龍)과 교접하여 태어난 사람이라고 한다. 용은 동아시아 사회에서 군주나 왕족을 상징하는 짐승이었으므로, 이 기록은 서동(무왕)이 몰락한 왕족이거나 서열이 낮은 왕족임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 고려나 조선시대에 비록 아버지가 양인(良人 : 평민)이라도 어머니가 노비라면 그들의 아이는 노비로 분류한다는 법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 그는 왕족은 왕족이되 별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가 왕이 된 까닭은, 백제 안에서 왕위쟁탈전이 일어나 왕이 될 만한 왕족은 모조리 죽고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아니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해외 담로로 쫓겨난 왕족들은 본국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었고, 야심만만한 - 그리고 힘이 있고 서열이 높은 - 왕족들이 서로 왕위를 노리며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왕이 전제정치를 펼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힘 없는 몰락 왕족인 서동을 왕으로 뽑았다고 말이다).

 

 

무왕(武王)은 조선의 철종(哲宗)처럼, 몰락한 왕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이 된 사람이다. 그의 생물학적인 아버지는『삼국사기』에 나오는 왕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선왕(先王)을 양아버지로 모신다는 조건으로 왕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사택적덕의 딸은 무왕이 두 번째로 맞은 부인일 것이며, 이는 그가 왕이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일일 것이다(이 때문에 조강지처인 선화공주와 사이가 멀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인덕 - 궁월군 여찬 - 이 백제 진왕이 되려고 어쩔 수 없이 고위 귀족의 딸을 새 황후로 맞아들이자, 조강지처와의 사이가 험악하게 틀어진 일과 비슷하다. 무왕이 자신의 맏아들인 부여의자 - 의자왕은 시호가 없어 그냥 이름 뒤에 왕王을 붙임 - 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으려고 했던 까닭도 이와 관련이 있음이 분명하다).

 

아마 남부여(백제)의 왕족과 귀족은 “적국인 신라에서 온 여자(선화공주)는 왕후가 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며, 무왕에게 새 왕후를 맞아들이라고 강요했을 것이다. 그들이 고른 상대는 ‘사택(’사탁‘이나 ’사달‘이라고도 쓴다. 줄여서 “사 沙” 씨다)’이라는 백제 명문가의 딸이었다. 이로써 선화공주는 왕후보다 낮은 등급의 아내를 가리키는 ‘부인’으로 굴러떨어졌고, 무왕은 백제 왕족과 귀족들의 요구를 따름으로써(그러니까 신라를 줄기차게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출신 성분’을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백제 주류사회로 편입되려고 한 게 아닌가 한다(무왕과 선화공주의 아들인 의자왕도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또한 왕이 되고 난 뒤 신라를 여러 번 쳤으니까!).


댓글 '3'

一道安士

2010.03.27 09:33:48
*.179.164.205

사택왕후의 출현시기를 보는 시각이 저와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1. 사택왕후가 낳은 아들이 일본서기에 나오는 교기왕자입니다. 그는 의자왕자와의 권력다툼에서 밀려나 왜국으로 망명한 후 아이를 낳습니다. 교기가 아버지 된 것이 일본서기에 나올 정도이면 왕자를 낳은 것이 당시 왜국에서 큰 화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즉 망명할 때 나이가 20대 정도의 젊은 나이였다는 것입니다. 사택왕후가 들어온 직후 교기왕자를 낳았다고 보면 무왕의 40년 재위기간 중 초반이 아니라 중반기에 해당합니다.

2. 무왕은 재위 후반기에 익산에 미륵사와 왕궁리를 건설하며 천도를 시도하였습니다. 그가 익산으로 천도를 추진한 것은 부여귀족에게 눌려있어서 왕권이 약했다는 반증인 동시에 후반기에는 그래도 천도를 추진할 정도의 권력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손을 잡은 것이 익산지역의 대 귀족 세력으로 추정되는 사택가문입니다. 즉위초기에 일찍 사택가문의 여인을 왕후로 들였다면 천도를 꿈꿀 시기도 빨라졌을 것이라고 봅니다.

▩조약돌

2010.03.27 09:54:13
*.165.204.40

말씀을 듣고 보니 제 분석이 너무 단순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 부분(사택왕후가 무왕과 혼인한 시기)은 영 자신이 없어서, 귀족들이 왕위를 보장해 주는 조건으로 혼인을 강요한 게 아니냐고 추측한 것인데, 그게 아니라 무왕의 자유의지로 사택왕후를 골랐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무왕이 익산으로 천도를 감행한 까닭이 부여(사비)의 귀족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는 말씀에 동감하는 바입니다.

백휘성

2018.03.10 02:35:30
*.44.175.28

노종국교수가 조약돌님과 거의 같은 주장을 오늘햇네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공지 Q&A 새한국고대사 포럼 안내 주성지 2006-08-08 63895

백제사 칠지도 제작년대 논쟁 [4]

  • 2010-03-27
  • 조회 수 2127

며칠전 칠지도 제작년대와 관련해서 '역사21'사이트에 livermini라는 분께서 올리신 글을 보았습니다... 요지는 칠지도의 명문에 제작년도가 태화4년 5월15일 혹은 11월 15일 병오라고 새겨져 있는데 태화 4년은 서기 230년이 될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주장...

백제사 ▩목지국과 월지국 [1]

  • 2010-03-27
  • 조회 수 2287

목지국(目支國)과 월지국(月支國)중 어느 이름이 바른 이름인가? 나는 발음을 고려해 볼 때, 당연히 전자가 옳다고 생각한다(이 게시판의 <백제사> 카테고리에 있는 글「▩[고침]목지국이라는 이름에 대한 고찰」참고). 목지국은 미추홀과 발음이 비슷하고 ‘국...

신라사 ▩[답변]선화공주의 성(姓)과 출신지에 대한 의문

  • 2010-03-26
  • 조회 수 1892

선화공주의 고향은 경주가 아니라 전라북도인 듯하다. 그리고 그녀가 ‘공주’로 불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녀의 아버지는 왕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단, 독립국가의 왕이 아니라 남부여(백제) 안의 호족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기 영지 안에서 왕처럼 살았기 ...

백제사 ▩[답변]무왕에 대한 고찰 [3]

  • 2010-03-26
  • 조회 수 2068

*서기 2009년 7월 24일에 정리한 내용을 올립니다 : 조약돌 KBS <역사추적>(프로그램 제목은「2부작 대발견! 미륵사 사리장엄 - 백제판 사랑과 전쟁. 서동, 선화공주를 버렸나?」임)에서 무왕이 살던 곳에 금이 많이 났으며, 그곳은 수십 년 전만 해도 금광이 ...

백제사 ▩[답변]무왕의 즉위에 대한 고찰

  • 2010-03-26
  • 조회 수 1858

휴정 님의 질문과 일도안사님의 대답을 읽다 보니, 아무래도 제가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판을 두드립니다. 물론 제 대답이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도움은 될 것입니다. 글이 길어서 몇 편으로 나누어서 올리려고 하니, 양해해 주세요. 무왕이...

백제사 ▩[고침]목지국이라는 이름에 대한 고찰 [1]

  • 2010-03-19
  • 조회 수 1900

일도안사 님께서 “어떻게 해서 미추홀의 발음이 한자로 목지국으로 표시되는지를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제 생각을 올립니다. 저도 목지국은 마한 영역 -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금강 유역 - 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관우 선생님(이...

백제사 천관우의 목지국의 위치 [3]

  • 2010-03-18
  • 조회 수 2603

목지국(월지국)은 삼한을 통치하던 진왕의 직할지이다. 그런데 그 목지국의 위치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목지국을 마한영역에서 찾으며 대부분의 학자들은 천안과 익산사이의 금강유역으로 본다. 다만 고고학자인 최몽룡 선생님은 영산강유역으...

고구려사 고구려본기 태조왕, 20년이 점프한 부분. file

  • 박규호
  • 2010-03-05
  • 조회 수 2207

<고구려본기 권15> 삼국사기 태조왕 재위년 1년 <再思大王 영역> AD53년 3년 AD55년 8월 國南에 蝗이 듦 => AD115년 4년 AD56년 7년 AD59년 4월 孤岸淵 물고기 잡기 => AD119년 10년 AD62년 8월 동쪽 흰사슴사냥 => AD122년 16년 AD68년 8월 曷思王 都頭 => A...

고구려사 태조왕의 남해순수2

  • 2010-03-05
  • 조회 수 2279

이제 고구려의 새 집권층이 되어 후한을 방비해야 하는 고씨 고구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동족이 마한으로 건너가 백제라는 강력한 해상국가를 건국하였다. 태조왕의 남해순수 무렵 백제본기와 신라본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백제를 건국시절부터 백년이상 ...

고구려사 태조왕의 남해순수1

  • 2010-03-05
  • 조회 수 2072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왕 62년(114); 가을 8월 왕이 남해로 순수하였다. 겨울 10월 왕이 돌아왔다. 왕이 수도를 비우고 3개월이나 먼 곳을 떠돈다는 아주 비정상적인 일이다. 뭔가 고구려에 중차대한 일이 생겼음을 직감할 수 있다. 왕이 수도를 비우고 ...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