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전에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착상입니다. 왜 하필 신묘년인가에 대해서는 [삼한사의 재조명] 22장에 적어두었습니다.

비문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선 고구려의 건국에 대하여 죽 기술하고, 두번째로 광개토왕의 업적에 대하여 기술한 후, 마지막에 수묘인조로 매듭짓고 있습니다. 그 중에 신묘년(영락 1년, 391년)은 업적부분에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구체적으로 간지를 써서 영락 몇년 하는 것은 업적부분입니다. 따라서 신묘년이 광개토대왕 즉위 이전일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합니다.

비문을 보면 대왕이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할 때는 반드시 명분이 있습니다. 전쟁을 하면 이기든 지든 수많은 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같은 부여에서 나온 동족과의 전쟁입니다. 그러니 명분비이자 위령비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문에 광개토왕 이전의 소수림왕이나 고국양왕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로지 영락 몇년 하고만 진행됩니다.

전쟁명분이 신묘년조에 나와야 하는 이유는 삼국사기에 있습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는 것은 392년(광개토 1년, 영락 2년)부터입니다. 그리고 392년부터 396년 사이에 공취한 58성을 성을 모두 모아서 영락 6년의 잔국토벌 부분에 적고 있습니다.

자, 고구려군의 공격이 392년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면 공격명분은 언제 나와야 합니까? 392년에 공격이 시작하는데 명분이 393년쯤 나온다면 논리적으로 모순이지요. 천하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명분은 반드시 전쟁 전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391년에 왕이 되므로, 그 이전에는 쓸 수 없고, 따라서 391년 뿐입니다. 이 해가 신묘년입니다. 또 주 전쟁 대상이 왜이므로 왜가 명분을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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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락1년 신묘년해석에서 버벅거리다 이런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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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류의 백제건국을 나타내고 있는게 아닐까요?"  391(신묘년)이고  동명8년,BC29년도(신묘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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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니다. 당시 비류의 나이는 20대 초반이었고 온조는 이제 10대초반이었습니다(추측입니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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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류는 왕위계승 가능성이 없어서 미리 고구려에서 떠난듯 합니다.  그후 독자적인 세력을 키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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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19년 온조가 합류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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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장수왕시절 고구려인들이 봤을때  삼한백제(왜)는 신묘년(BC29년)에 비류가  세웠고 바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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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너와  마한을 정복한후(파)  백잔,00,신라를 신민(담로)로 삼았다는게 당시 일반적인 상식인었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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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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