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 Resources about Korean History

디지털의 옷을 입은 역사자료. 이제 史料는 공유되어야 한다.

VIEW

삼국유사 | 三國遺事

고려시대 일연에 의해 작성된 한국 고대 문화사의 최고 원천.

GO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고등학교 7차 교육과정 국사교과서

MORE

History through images & Photos, Maps

이미지와 사진, 그리고 지도로 본 역사

VIEW

오늘:
218
어제:
398
전체:
1,225,512

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첨부파일은 hwp, zip, jpg, gif 만 가능합니다.
게시물 혹은 댓글을 남기실때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시기 바랍니다.
비속어, 욕설, 반말 등을 사용하면, 본 사이트의 방침과 맞지 않으므로 글을 삭제하겠습니다.

일도안사 님께서 “어떻게 해서 미추홀의 발음이 한자로 목지국으로 표시되는지를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제 생각을 올립니다.


저도 목지국은 마한 영역 -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금강 유역 - 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관우 선생님(이하 존칭 생략)이 “목지국이란 미추홀의 한자표기”라고 주장하신 것은 옛 말(고대어)을 연구하셨기 때문이고요.


무슨 말이냐 하면 두 낱말의 발음이 비슷하고, 목지국이라는 말 자체가 이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한번 따져봅시다. ‘목지국’의 ‘목’은 ‘미추홀’의 ‘미’에 해당됩니다. 신채호 선생(이하 존칭 생략)에 따르면, ‘평양(平壤)’은 “벌판이나 들판을 가리키는 ‘펴라’라는 말의 음역”이었고, 고대에는 이런 식으로 말의 받침을 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죠. 이 추측에 따라 ‘목’에서 ‘ㄱ’받침을 빼면 ‘모’가 되는데, 이 ‘모’가 ‘미’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그리고 목지국의 ‘지’는 미추홀의 ‘추’에 해당되는데, 제가 학교에서 배운 바에 따르면 고대나 중세(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임진왜란 이전)에는 우리말에 거센소리나 된소리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고대에는 ‘추’도 ‘주’로 읽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죠. 그 법칙에 따라 ‘추’를 ‘주’로 읽으면 역시 ‘지’와 비슷한 발음이 됩니다.


문제는 바로 ‘국’인데요, 저는 이것을 ‘홀’과 같은 말로 봅니다.『만주원류고』에는 “국어(만주어)와 몽골어에서 모두 군장君長을 ‘汗’이라 하는데, ‘韓’과 ‘汗’의 음이 서로 비슷하므로….”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말은 몽골어인 ‘칸’과 만주어인 ‘한’이 원래는 비슷한 말이었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홀’은 ‘골’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골’은 ‘골짜기’를 줄인 말이지만, ‘고을’을 줄인 말이기도 합니다. 또 보기에 따라서는 ‘성곽’을 뜻하는 고구려 말인 ‘구루’를 줄인 말로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 사서는 ‘홀’의 뜻을 취해 한자인 ‘국國’을 집어넣은 것이지요(만주어로 ‘나라’를 ‘구룬’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국國은 성읍이라는 뜻과 나라라는 뜻을 모두 갖고 있는 한자입니다).


정리하자면 목지국은 미추홀과 같은 말이라는 겁니다(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천관우가 옳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데, 중국 사서는 어째서 삼한백제의 진왕이 곰나루(웅진)가 아니라 미추홀(목지국)에 살고 있다고 한 것일까요? 확실하진 않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후한서』가 다루는 시대(후한시대 전기~중기)에는 삼한백제의 도읍이 미추홀에 있었기 때문에, 이를 본 중국의 사신이 있는 그대로 보고했을 것입니다. 후한이 망하고 나서 일어난 일들을 담은『삼국지』에 진왕의 도읍에 대한 언급이 안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중국 사서는 삼한백제의 천도(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추홀 - 목지국 -에서 곰나루 - 웅진 - 로의 천도)는 따로 다루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그러나 광개토왕 비문에 ‘고모나라’라는 성이 나오고,『삼국사기』「백제본기」에 웅진이 문주왕이 내려오기 전부터 “궁성”이 있었던 곳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에, 삼한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원래는 천도한 사실이 적혀져 있었는데, 기록을 모으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라고 여겨 빼 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저는 개인적으로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 모자라는 글이 도움이 되었기를 빕니다.


사족 1 :

 
저를 의심하시는 분들을 위해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지방에 따라서는 ‘물’을 ‘밀’이나 ‘미’라고 부른 곳도 있습니다(한 예로, ‘낚시바늘’을 뜻하는 ‘미늘’은 ‘물 바늘’을 줄인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과 ‘미’가 같은 말이라는 가설의 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 우리말의 흔적을 잘 보존하고 있는 일본어에서 ‘물’을 ‘미즈’라고 부르는데, 저는 이걸 보고 ‘아! 미추홀은 어쩌면 “물의 나라”, “물의 도성”이라는 뜻인지도 모르겠구나!’라고 생각했죠. 우선 ‘미추’와 ‘미즈’의 발음이 같고, 일본어가 백제어에서 갈라져 나온 말이기 때문에 과거 남쪽으로 내려온 부여 사람들[마한인/졸본부여인]이 미추홀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추측한 것입니다. 미추홀은 항구고, 말 그대로 큰 ‘물’인 바다를 끼고 있는 성이니 딱 들어맞는 해석인 셈이죠.

사족 2 :

글을 쓰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제 생각이 너무 단순했습니다. 원래는 '침채(沈菜)'라는 한잣말을 '딤채'라고 읽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원래의 발음이 바뀌어 '짐치'가 되었고(전라도와 경상도의 노인들은 '김치'를 '짐치'라고 부릅니다), 그 말이 다시 '김치'로 바뀌었던 것처럼, '모지(목지)'가 발음이 바뀌어 '미주'가 되고 그 말이 다시 '미추'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지요. 물론 전 '모지'를 일본어 '미즈'와 마찬가지로 '물'이라는 뜻으로 봅니다.

사족 3 : 

서기전 9년 이후로 해양국가가 되었던 삼한백제가 도읍을 항구인 미추홀로 정한 건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아도, 해양국가는 물(바다나 강)을 낀 곳에서 세워지고 그곳을 중심지로 삼아 나라를 꾸려가기 때문입니다. 무역이나 식민을 하려면 내륙에 있는 도시보다는 배로 사람과 물자를 한꺼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항구가 훨씬 유리합니다. 페니키아(레바논)의 중심지였던 도시들도 다 항구였고 고대 헬라스(그리스)의 도시국가들도 - 스파르타는 빼고 - 대부분 무역항이었습니다. 로마도 티베르 강을 끼고 있는 도시여서 무역에 유리했기 때문에 로마의 수도가 된 것입니다. 훨씬 훗날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남송(南宋)의 수도도 바다를 끼고 있는 무역항이었습니다. 문제는 삼한백제가 왜 웅진으로 천도했냐는 것인데, 이걸 알려면 미추홀을 포기하고 내륙으로 좀 더 들어갈 필요가 있는 상황이 펼쳐진 시기(정치적으로건 군사적으로건)가 언제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직 속단을 하면 안 되지만, 저는 삼한백제가 복속시킨 담로의 수가 늘어나고 나라가 커짐에 따라 새로 얻은 땅을 관리/감시/감독하기 위해 천도한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댓글 '1'

一道安士

2010.03.19 21:40:31
*.147.80.208

잘 읽었습니다. 저는 최근에야 그런 것을 보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신기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비류에서 시작하는 삼한백제가 어느 시기엔가 지금의 아산만 인주부근으로 추정되는 미추홀에서 웅진으로 옮겼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 같습니다. 근초고왕대에 한성백제가 도읍을 한산으로 옮긴 것처럼 삼한백제도 수도를 웅진으로 옮긴 시기를 추정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공지 Q&A 새한국고대사 포럼 안내 주성지 2006-08-08 63886

백제사 칠지도 제작년대 논쟁 [4]

  • 2010-03-27
  • 조회 수 2127

며칠전 칠지도 제작년대와 관련해서 '역사21'사이트에 livermini라는 분께서 올리신 글을 보았습니다... 요지는 칠지도의 명문에 제작년도가 태화4년 5월15일 혹은 11월 15일 병오라고 새겨져 있는데 태화 4년은 서기 230년이 될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주장...

백제사 ▩목지국과 월지국 [1]

  • 2010-03-27
  • 조회 수 2287

목지국(目支國)과 월지국(月支國)중 어느 이름이 바른 이름인가? 나는 발음을 고려해 볼 때, 당연히 전자가 옳다고 생각한다(이 게시판의 <백제사> 카테고리에 있는 글「▩[고침]목지국이라는 이름에 대한 고찰」참고). 목지국은 미추홀과 발음이 비슷하고 ‘국...

신라사 ▩[답변]선화공주의 성(姓)과 출신지에 대한 의문

  • 2010-03-26
  • 조회 수 1892

선화공주의 고향은 경주가 아니라 전라북도인 듯하다. 그리고 그녀가 ‘공주’로 불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녀의 아버지는 왕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단, 독립국가의 왕이 아니라 남부여(백제) 안의 호족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기 영지 안에서 왕처럼 살았기 ...

백제사 ▩[답변]무왕에 대한 고찰 [3]

  • 2010-03-26
  • 조회 수 2068

*서기 2009년 7월 24일에 정리한 내용을 올립니다 : 조약돌 KBS <역사추적>(프로그램 제목은「2부작 대발견! 미륵사 사리장엄 - 백제판 사랑과 전쟁. 서동, 선화공주를 버렸나?」임)에서 무왕이 살던 곳에 금이 많이 났으며, 그곳은 수십 년 전만 해도 금광이 ...

백제사 ▩[답변]무왕의 즉위에 대한 고찰

  • 2010-03-26
  • 조회 수 1858

휴정 님의 질문과 일도안사님의 대답을 읽다 보니, 아무래도 제가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판을 두드립니다. 물론 제 대답이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도움은 될 것입니다. 글이 길어서 몇 편으로 나누어서 올리려고 하니, 양해해 주세요. 무왕이...

백제사 ▩[고침]목지국이라는 이름에 대한 고찰 [1]

  • 2010-03-19
  • 조회 수 1900

일도안사 님께서 “어떻게 해서 미추홀의 발음이 한자로 목지국으로 표시되는지를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제 생각을 올립니다. 저도 목지국은 마한 영역 -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금강 유역 - 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관우 선생님(이...

백제사 천관우의 목지국의 위치 [3]

  • 2010-03-18
  • 조회 수 2602

목지국(월지국)은 삼한을 통치하던 진왕의 직할지이다. 그런데 그 목지국의 위치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목지국을 마한영역에서 찾으며 대부분의 학자들은 천안과 익산사이의 금강유역으로 본다. 다만 고고학자인 최몽룡 선생님은 영산강유역으...

고구려사 고구려본기 태조왕, 20년이 점프한 부분. file

  • 박규호
  • 2010-03-05
  • 조회 수 2207

<고구려본기 권15> 삼국사기 태조왕 재위년 1년 <再思大王 영역> AD53년 3년 AD55년 8월 國南에 蝗이 듦 => AD115년 4년 AD56년 7년 AD59년 4월 孤岸淵 물고기 잡기 => AD119년 10년 AD62년 8월 동쪽 흰사슴사냥 => AD122년 16년 AD68년 8월 曷思王 都頭 => A...

고구려사 태조왕의 남해순수2

  • 2010-03-05
  • 조회 수 2279

이제 고구려의 새 집권층이 되어 후한을 방비해야 하는 고씨 고구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동족이 마한으로 건너가 백제라는 강력한 해상국가를 건국하였다. 태조왕의 남해순수 무렵 백제본기와 신라본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백제를 건국시절부터 백년이상 ...

고구려사 태조왕의 남해순수1

  • 2010-03-05
  • 조회 수 2072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왕 62년(114); 가을 8월 왕이 남해로 순수하였다. 겨울 10월 왕이 돌아왔다. 왕이 수도를 비우고 3개월이나 먼 곳을 떠돈다는 아주 비정상적인 일이다. 뭔가 고구려에 중차대한 일이 생겼음을 직감할 수 있다. 왕이 수도를 비우고 ...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