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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우의 목지국의 위치

백제사 조회 수 2577 추천 수 0 2010.03.18 22:46:26
一道安士 *.147.80.208
목지국(월지국)은 삼한을 통치하던 진왕의 직할지이다. 그런데 그 목지국의 위치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목지국을 마한영역에서 찾으며 대부분의 학자들은 천안과 익산사이의 금강유역으로 본다. 다만 고고학자인 최몽룡 선생님은 영산강유역으로 본다.

최몽룡 선생님이 영산강유역으로 보는 이유는 이 지역이 마한지역에서 고고학적으로 가장 웅장한 유적(고분군)이 펼쳐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선생님 견해에는 심각한 결점이 있다. 시기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진왕이란 삼한을 존재를 전제로 성립하는데 영산강유역이 웅장한 고분군을 이룩한 것은 후한서와 삼국지와 진서의 시대인 4세기 이전이 아니라 삼한이 사라진 5세기 이후라는 것이 문제이다.

목지국에 대한 내 견해는 광개토왕이 영락 6년에 토벌한 금강유역의 중심인 웅진지역이다. 삼한백제가 비류시기에는 인주지역 미추홀에 자리를 잡았다가 아무리 늦어도 2세기 이후에는 웅진으로 옮겨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주장은 천관우 선생의 견해다. 그는 목지국이란 미추홀의 한자표기라는 것이다. 놀라운 식견이 아닐 수 없다.

千寬宇, 1979, <目支國考> <<韓國史硏究>> 24, p. 28.

 
어떻게 해서 미추홀의 발음이 한자로 목지국으로 표시되는 지를 모르겠다. 한 번 찾아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댓글 '3'

불사조

2010.03.18 23:29:29
*.176.8.227

저도 목지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청당동 유적-청동제 곡봉형 대구와 금박 유리구슬, 성남 화성리-청자 반구호(盤口壺), 성남 용원리-여러 점의 환두대도, 금동관모 등 으로 목지국이 천안 성남면에 있었을 거라는 추측하는 중앙일보 조한필기자의 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삼한에 대해 좀 더 많이 알 수 있다면 우리의 고대사를 좀 더 잘 알 수 있을텐데 너무 아쉽습니다. 

kbongso

2019.08.15 18:03:43
*.205.189.201

目支國의 원래 발음은 [mok:zhi] 목지라 발음하는 것이 아니고, [mu:zhi] 무지라고 발음하여야 합니다. [mu:zhi] 무지를 한사군 관리가 音借 표기한 것입니다. 예로 조그만 중학생녀석이 자기보다 큰 고등학생 형들을 팔씨름해서 모두 이겼어 아! 조그만놈이 팔힘이 무지하게 쎄구나에서 쓰이는 무지입니다. Latin語로 MAXIMUS입니다. 월지국은 라틴어로 변환하면, MAXIMUS의 뜻이 나오지 않아서 기록 오류입니다. 무지무지한 권력, 무지하게 높으신 분에 쓰입니다. 무지는 일본의 천황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삼한에서 가장 높으신 분입니다. 臣智는 [sin:zhi] 신지라고 발음한 것이 아니고, 삼한 시대에서는
[sen:zhi] 센지라고 발음하였습니다. 풀이하면 臣은 (힘)센이며, 智 지는 벼슬아치에서 쓰이는 치 즉 존칭접미사입니다. 한자로 쓰면 强者라고 표현하면 맞습니다. 音借 표기입니다.
사람을 가르키는 존칭접미사 치, 지가 고려시대 원나라 영향으로 고려에 전해졌다는 이론은 틀린 것입니다. 오래전
한반도에서도 쓰여 왔습니다. 邑借(읍차)는 마한,변한에서 쓰이던 지도자 호칭입니다. 訓借 표기와 音借 표기가 병행해서 기록하여 그동안 해석하는데 어려웠습니다. 즉 邑은 고을, 골을 나타내는 訓借 표기이며, 나중에 시대가 흐르면서 된음으로 발음되어 꼴이라 발음하게 되었습니다. 借 (차)는 音借 표기입니다. 발음은 [zhi, 또는 gie ] [지, 찌에,찌] 비슷하게 발음됩니다. 둘을 연결하며 邑借 읍차 발음이 고을지, 나중에 꼴찌로 발음됩니다. 지금도 발음이 살아 있는 단어입니다. 서열에서 맨 나중을 꼴찌라합니다. 꼴찌를 한사군 관리가 훈차, 음차 병행해서 邑借라 기록한 것입니다.
고로 邑借(읍차)는 꼴찌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마한에서 고을 지도자는 제일 높은 호칭이 목지 (무지) ..한반도에서 오직 한사람. 臣智(신지) 센지 또는 쎈치 그리고 마지막 서열이 邑借 꼴찌입니다. 무지, 센지,꼴찌

kbongso

2019.08.15 18:29:01
*.205.189.201

목지국의 위치는 경기도 남부를 벗어나면 안됩니다. 온조 일행이 목지국 무지를 만나서 살 곳을 청하자, 목지국에 동북 백여리 떨어진 곳에 살라고 하여 그 곳의 땅을 떼어 주었습니다. 그 받은 땅이 지금의 송파구 일대입니다. 그 기록은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편에 있는 기록입니다. 동북 백여리 떨어진 곳에 살게 하였다는 기록은 중요합니다. 역으로 풀어서 해석하면, 송파구에서 남서부에 백여리 떨어진 곳에 목지국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편 기록을 신뢰하면, 목지국의 위치는 경기도 남서부에 있게 되며, 고로 직산,천안설은 송파구에서 백여리가 넘으므로 위치가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목지국의 위치에는 근처에 바다 갯벌이 있어야 삼국사기 온조왕편에 서술된 비류의 고생한 이야기에 일치합니다. 즉 짠물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말은 바닷가 갯벌 지역을 말합니다. 고로 직산,천안설은 바닷가에서 너무 멀어서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목지국 근처에 바다 갯벌이있던가 큰하천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하천과 바닷물이 교차되는 지역이여야 합니다. 목지국은 교통이 사통팔달과 해운, 육운 , 하상운 모두 교차하는 지역에 있을 것입니다.
농산물과 해산물이 교역되기 쉬운 지역에 있을 것입니다. 필수적으로 포구가 근처에 있어야 합니다. 너무 내륙에 있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아산설, 목천설,익산설,금강유역설은 송파에서 너무 멀어서 기록에 벗어나 있습니다. . 목지국은 경기도 남부에 있어야 삼국사기 기록에 일치합니다. 目支는 두가지 뜻으로 쓰였는데, 하나는 통치자 호칭이고, 하나는 나라 이름입니다. 마치 왕검과 왕검성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미추홀 위치는 목지국 위치만 판별되면 오류를 잡을 수 있습니다. 미와 무, 추와 지 또는 치 사이의 발음 관계는 ? 무지, 무치 = 미추, 홀은 고을, 골의 중국식 음차입니다. 미추홀과 목지국은 동일 장소로 추정합니다. 미추, 목지 서로 음차의 차이라고 추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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