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지국(월지국)은 삼한을 통치하던 진왕의 직할지이다. 그런데 그 목지국의 위치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목지국을 마한영역에서 찾으며 대부분의 학자들은 천안과 익산사이의 금강유역으로 본다. 다만 고고학자인 최몽룡 선생님은 영산강유역으로 본다.
최몽룡 선생님이 영산강유역으로 보는 이유는 이 지역이 마한지역에서 고고학적으로 가장 웅장한 유적(고분군)이 펼쳐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선생님 견해에는 심각한 결점이 있다. 시기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진왕이란 삼한을 존재를 전제로 성립하는데 영산강유역이 웅장한 고분군을 이룩한 것은 후한서와 삼국지와 진서의 시대인 4세기 이전이 아니라 삼한이 사라진 5세기 이후라는 것이 문제이다.
목지국에 대한 내 견해는 광개토왕이 영락 6년에 토벌한 금강유역의 중심인 웅진지역이다. 삼한백제가 비류시기에는 인주지역 미추홀에 자리를 잡았다가 아무리 늦어도 2세기 이후에는 웅진으로 옮겨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주장은 천관우 선생의 견해다. 그는 목지국이란 미추홀의 한자표기라는 것이다. 놀라운 식견이 아닐 수 없다.
千寬宇, 1979, <目支國考> <<韓國史硏究>> 24, p. 28.
어떻게 해서 미추홀의 발음이 한자로 목지국으로 표시되는 지를 모르겠다. 한 번 찾아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