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 Resources about Korean History

디지털의 옷을 입은 역사자료. 이제 史料는 공유되어야 한다.

VIEW

삼국유사 | 三國遺事

고려시대 일연에 의해 작성된 한국 고대 문화사의 최고 원천.

GO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고등학교 7차 교육과정 국사교과서

MORE

History through images & Photos, Maps

이미지와 사진, 그리고 지도로 본 역사

VIEW

오늘:
221
어제:
398
전체:
1,225,515

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첨부파일은 hwp, zip, jpg, gif 만 가능합니다.
게시물 혹은 댓글을 남기실때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시기 바랍니다.
비속어, 욕설, 반말 등을 사용하면, 본 사이트의 방침과 맞지 않으므로 글을 삭제하겠습니다.

태조왕의 남해순수1

고구려사 조회 수 2072 추천 수 0 2010.03.05 01:00:06
一道安士 *.147.80.208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왕 62년(114); 가을 8월 왕이 남해로 순수하였다. 겨울 10월 왕이 돌아왔다.

 

왕이 수도를 비우고 3개월이나 먼 곳을 떠돈다는 아주 비정상적인 일이다. 뭔가 고구려에 중차대한 일이 생겼음을 직감할 수 있다. 왕이 수도를 비우고 장시간 떠돈 기록은 위나라와 전쟁하였던 동천왕이나 연나라와 전쟁하였던 고국원왕, 그리고 백제와 전쟁하였던 광개토왕정도가 있다. 모두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중대한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태조왕의 3개월 남해순수에 대하여 남당은 삼국사기에 추수기인 8월에 메뚜기떼가 창궐한 기록이 여러 개 있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메뚜기떼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누가 보더라도 남당의 이 해석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러면 삼국사기는 이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태조왕이 3개월이나 남쪽 바다에 다녀온 이 사건도 앞뒤를 살펴보면 삼국사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야기는 북부여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1세기에 북부여에서 왕자들 사이에 권력다툼이 벌어졌다. 여기서 패한 왕자가 자신을 따르던 무리를 이끌고 졸본부여로 가서 졸본부여를 점령하고 새 나라를 세우니 이것이 고구려다. 북부여에서 승리한 대소왕자와 패한 주몽왕자 중에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는 사실 알 수 없다. 통상 승자를 형으로 기록하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졸본부여를 점령한 북부여인들의 대표인 주몽왕자는 졸본부여 왕녀와 혼인하여 고구려를 통치하였고 그 다음 후계로는 졸본부여 왕녀가 낳은 아들이 유력시되고 있었다.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북부여출신들은 주뭉왕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을 데려다 후계로 옹립하였고 그러자 당연히 내란이 벌어졌다.

 

여기서 패한 비류왕자와 온조왕자가 자신들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고구려를 떠나 바다를 건너(백가제해) 마한땅으로 가서 새 나라를 세우니 이것이 백제다. 부여인들이 마한땅으로 피신하여 새 국가를 건국하는 이 과정에서 부여인들은 본의 아니게 황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동아시아 최초의 해상국가를 건국하게 된 것이다.

 

백제가 고구려를 떠나 마한땅에 온 후에도 말갈군은 백제를 계속 추격하며 괴롭힌다. 백제 건국사란 고구려 탈출이후 말갈과의 투쟁사라 할 수 있다. 백제는 한반도에 들어와 1세기에 마한은 통합하였으나 말갈의 압력을 막아내기에 급급하여 변한과 진한은 통합할 수 없었다.

 

마한이란 그 주축세력이 부여족이었다. 5세기 중국사서를 보면 백제에 지방세력이 대거 출현하는데 그 대표가 왕성인 부여씨이고, 그 주요 거점이 금강유역과 영산강유역 등 과거 마한지역이다. 한마디로 마한이란 한반도로 들어온 부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최치원은 ‘마한즉고구려’라 하였는데 이는 아주 정확한 표현이다.

 

제2대 유리왕으로부터 시작된 해씨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결국 서쪽의 최대세력인 후한과 충돌하게 된다. 해씨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모본왕은 군사를 동원하여 북중국 요충지인 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을 공격하는 등 기세를 올렸으나 결국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고구려가 당면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새로운 집권세력이 등장하니 그것이 태조왕에서 시작하는 고씨고구려이다. 고씨는 자신들의 동족을 한반도 마한 땅으로 몰아낸 해씨가 아니니 과거 왕권을 두고 백제와 싸웠던 해씨만큼 큰 반감이 없었다. 후한과 맞서 싸워야 하는데 자신들이 몰아낸 동족은 마한으로 건너가 황해바다를 장악하고 해상국가를 운영하고 있었다.

 

북부여에서 밀려나 고구려를 건국한 세력은 부여를 계승하되 부여의 제도를 극복하는데 그 건국이념이 있었다고 본다. 반면에 고구려에게 밀려 한반도로 건너온 부여인들은 자신들의 제도마져 그대로 한반도에 옮겨놓았다. 즉 고구려는 부여의 극복이 건국이념이었다면 백제는 부여의 계승이 건국이념이었다는 것이다.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부여왕의 계승자인 진왕이 존재하고, 각 지방의 최대세력이 진왕과 혼인을 맺고 그 권력을 대신 행사하는 정치체제인데 이것이 바로 담로제도이다. 백제의 지방 최대세력이 한강유역에 자리 잡았던 한성백제로서 그들은 자립위왕을 하고 백제왕을 칭하기도 하였다. 온조왕 이후 초기 통치자들 가운데 오로지 3명만이 자립위왕이 성공하였다.

 

기루왕은 49년 재위기간은 21년의 2용출현을 경계로 반신라와 친신라의 둘로 나뉜다. 즉 앞의 통치자는 자립위왕을 못하여 왕의 시호를 못 받았으나, 뒤의 통치자는 자립위왕에 성공하여 기루왕이란 시호를 받았다. 따라서 앞의 통치자는 뒤의 통치자의 재위기간에 흡수되어 버린 것인데 이것이 초기 진왕제의 기술방식이다. 일본서기는 전체가 이 방식을 따르고 있다.

 

기루왕의 자립위왕은 기루왕 29년(실제로는 뒤 통치자의 재위 9년) 무렵에 신라왕실의 여인을 왕후로 세움으로써 이루어진다.

 

*백제본기 기루왕 29년: 사신을 신라에 보내어 화친을 청하였다.

 

혼인기록은 4세기 이전 삼한사 삭제원칙에 의해 구삼국사 집필시 탈락하였다고 생각한다.[계속]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공지 Q&A 새한국고대사 포럼 안내 주성지 2006-08-08 63886

백제사 칠지도 제작년대 논쟁 [4]

  • 2010-03-27
  • 조회 수 2127

며칠전 칠지도 제작년대와 관련해서 '역사21'사이트에 livermini라는 분께서 올리신 글을 보았습니다... 요지는 칠지도의 명문에 제작년도가 태화4년 5월15일 혹은 11월 15일 병오라고 새겨져 있는데 태화 4년은 서기 230년이 될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주장...

백제사 ▩목지국과 월지국 [1]

  • 2010-03-27
  • 조회 수 2287

목지국(目支國)과 월지국(月支國)중 어느 이름이 바른 이름인가? 나는 발음을 고려해 볼 때, 당연히 전자가 옳다고 생각한다(이 게시판의 <백제사> 카테고리에 있는 글「▩[고침]목지국이라는 이름에 대한 고찰」참고). 목지국은 미추홀과 발음이 비슷하고 ‘국...

신라사 ▩[답변]선화공주의 성(姓)과 출신지에 대한 의문

  • 2010-03-26
  • 조회 수 1892

선화공주의 고향은 경주가 아니라 전라북도인 듯하다. 그리고 그녀가 ‘공주’로 불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녀의 아버지는 왕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단, 독립국가의 왕이 아니라 남부여(백제) 안의 호족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기 영지 안에서 왕처럼 살았기 ...

백제사 ▩[답변]무왕에 대한 고찰 [3]

  • 2010-03-26
  • 조회 수 2068

*서기 2009년 7월 24일에 정리한 내용을 올립니다 : 조약돌 KBS <역사추적>(프로그램 제목은「2부작 대발견! 미륵사 사리장엄 - 백제판 사랑과 전쟁. 서동, 선화공주를 버렸나?」임)에서 무왕이 살던 곳에 금이 많이 났으며, 그곳은 수십 년 전만 해도 금광이 ...

백제사 ▩[답변]무왕의 즉위에 대한 고찰

  • 2010-03-26
  • 조회 수 1858

휴정 님의 질문과 일도안사님의 대답을 읽다 보니, 아무래도 제가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판을 두드립니다. 물론 제 대답이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도움은 될 것입니다. 글이 길어서 몇 편으로 나누어서 올리려고 하니, 양해해 주세요. 무왕이...

백제사 ▩[고침]목지국이라는 이름에 대한 고찰 [1]

  • 2010-03-19
  • 조회 수 1900

일도안사 님께서 “어떻게 해서 미추홀의 발음이 한자로 목지국으로 표시되는지를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제 생각을 올립니다. 저도 목지국은 마한 영역 -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금강 유역 - 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관우 선생님(이...

백제사 천관우의 목지국의 위치 [3]

  • 2010-03-18
  • 조회 수 2602

목지국(월지국)은 삼한을 통치하던 진왕의 직할지이다. 그런데 그 목지국의 위치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목지국을 마한영역에서 찾으며 대부분의 학자들은 천안과 익산사이의 금강유역으로 본다. 다만 고고학자인 최몽룡 선생님은 영산강유역으...

고구려사 고구려본기 태조왕, 20년이 점프한 부분. file

  • 박규호
  • 2010-03-05
  • 조회 수 2207

<고구려본기 권15> 삼국사기 태조왕 재위년 1년 <再思大王 영역> AD53년 3년 AD55년 8월 國南에 蝗이 듦 => AD115년 4년 AD56년 7년 AD59년 4월 孤岸淵 물고기 잡기 => AD119년 10년 AD62년 8월 동쪽 흰사슴사냥 => AD122년 16년 AD68년 8월 曷思王 都頭 => A...

고구려사 태조왕의 남해순수2

  • 2010-03-05
  • 조회 수 2279

이제 고구려의 새 집권층이 되어 후한을 방비해야 하는 고씨 고구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동족이 마한으로 건너가 백제라는 강력한 해상국가를 건국하였다. 태조왕의 남해순수 무렵 백제본기와 신라본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백제를 건국시절부터 백년이상 ...

고구려사 태조왕의 남해순수1

  • 2010-03-05
  • 조회 수 2072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왕 62년(114); 가을 8월 왕이 남해로 순수하였다. 겨울 10월 왕이 돌아왔다. 왕이 수도를 비우고 3개월이나 먼 곳을 떠돈다는 아주 비정상적인 일이다. 뭔가 고구려에 중차대한 일이 생겼음을 직감할 수 있다. 왕이 수도를 비우고 ...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