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 Resources about Korean History

디지털의 옷을 입은 역사자료. 이제 史料는 공유되어야 한다.

VIEW

삼국유사 | 三國遺事

고려시대 일연에 의해 작성된 한국 고대 문화사의 최고 원천.

GO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고등학교 7차 교육과정 국사교과서

MORE

History through images & Photos, Maps

이미지와 사진, 그리고 지도로 본 역사

VIEW

오늘:
490
어제:
420
전체:
1,226,524

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첨부파일은 hwp, zip, jpg, gif 만 가능합니다.
게시물 혹은 댓글을 남기실때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시기 바랍니다.
비속어, 욕설, 반말 등을 사용하면, 본 사이트의 방침과 맞지 않으므로 글을 삭제하겠습니다.

남당유고를 취하기 어려운 이유

기타 조회 수 3492 추천 수 0 2010.03.01 01:18:49
一道安士 *.147.80.208

남당은 한국 고대사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화랑세기를 제외하고는 학계에서 인정을 못받고 있다. 기성학계에 계신 분들에게 남당유고 이야기를 하면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한다. 사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화랑세기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분들은 편견에만 사로잡혀있어서 그렇까? 그분들은 현대식 교육을 받으셨고 나름대로 평생을 역사연구에 바치신 분들이다. 편견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으나 대부분 합리적인 사고로 무장되어있다.

나는 남당이 100% 조작을 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무엇인가 자료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남당유고의 편찬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화랑세기를 진서로 믿는 나의 입장에서는 그가 화랑세기를 보았다면 일본왕실도서관에는 화랑세기외에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무엇인가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하나도 안 발견되었지만, 앞으로 고고학적 증거와 관련하여 맞는 것이 하나라도 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고구려사초나 고구려사략같은 자료는 일본왕실도서관에 본래 없었고, 남당이 여러 기록들을 짜집기하고 상상력을 더해서 만든 것이라고 판단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딱 3가지만 들라면 다음을 들겠다. 기본적으로 남당유고는 일반사서로서의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1. 저자가 없다.

남당은 화랑세기 필사본은 저자가 김대문이라고 밝혔지만 다른 남당사서를 보면 <<저자가 없다>>. 저자란 책의 내용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저자가 없다는 것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만일 어떤 사료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면 화랑세기에서 보여준 것처럼 저자도 그대도 옮겨 적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남당이 그대로 필사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 많은 내용을 치밀하게 필사했다면 왜 정작 가장 중요한 저자 이름은 빠뜨리고 필사하지 않았을까? 어느 특정 저자가 혼자서 집필한 것이 아니고 어느 기관에서 단체로 편찬한 것이라서 저자가 없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면 대표저자라도, 아니면 그 편찬한 기관이름이라도 적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한마디로 '믿거나 말거나'이다

저자가 없다고 하면 또 이렇게 이렇게 반론할 수도 있다. 구약성경을 보아라. 저자가 없지 않는냐? 저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 세계 기독교 교회에서는 구약을 역사로서 가르치지 않느냐?
 
구약이 전혀 무근거한 이야기를 연결해 놓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절대자가 이 세상을 1주일만에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나, 처음에 빛이 있으라고 했고(빅뱅), 마지막에 인간에 창조되는 등, 그 순서에는 나름대로 과학적인 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구약 그 자체를 사서로 보기보다는 종교의 경전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 남당사서에 저자가 없는 이유는 저자가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2. 자국 역사를 쓰는데 남의 나라 기록으로 채웠다.

고구려 국가기록에 고구려기록을 써야하는 것임은 당연한데도, 백제의 무슨 제도가 어떻고, 무슨 좌평은 무엇을 하고..., 신라에서는 누가 무엇으로 승진하고, 또 무슨 일이 생기고 .... 심지어 외국 왕실의 스캔들 같은 자질구레한 기록으로 자국사를 메웠다.  권위를 부여할만한 공공사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현재 우리나라 사서를 집필하는데 중국 국가주석에 누가 되었다는 정도면 충분하지 중국 어느 성에서 누가 무엇으로 승진하고... 로 채우지는 않을 것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자국과 관련된 사항이 아닌 외국기록에 관해서는 아주 중요한 일(예를 들어 혁거세조에 백제 시조인 온조가 즉위했다는 것)만 아주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중국사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서기만 조금 다르게 왜국기록이 없는 곳을 백제기록으로 메웠는데 그것은 피치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3.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궁궐의 깊은 이야기까지 상세히 나온다.

사서란 상세하고 정확히 기록하면 좋은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상세하면 오히려 의심을 받는다. 오늘같은 개방사회에서도 청와대에서 오늘 아침에 대통령이 비서나 영부인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런데 남당유고를 보면 왕궁 깊은 곳에서 나누는 밀담까지 마치 옆에서 옅들은 것처럼 아주 실감나게 기록하고 있다. 도청기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대에 야밤에 궁궐 깊은 곳에서 나눈 여인네들 이야기까지 마치 실황중계하듯 기록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만일 오늘날 어느 방송국이 김연아 금메달 연기 현장중계를 본 사람이 6,721,534명이라고 한다면 보도의 신뢰성이 높아질까?  

 

누가 누구와 밀통하여 누구를 낳고, 다시 누가 누구와 사통하여 누구를 낳고,...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알 수 있을까? 당시에 이미 유전자 검사시설이 갖추어졌었단 말인가? 반면에 삼국사기는 다음처럼 쓰고 있다. '누구는 어느 왕의 몇대손이다.' 그저 왕실의 통고일 뿐이다.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사서는 이렇게 쓰는 것이다.


궁궐속에서 몰래 나누는 밀담을 일반인들이 아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전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면 왕실의 여인네들 대화까지 나온다. 만일 천년뒤에 누가 드리마 선덕여왕 시나리오를 가지고 신라사 연구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여기에 아주 상세한 신라사 자료가 있으니 이를 참조하여 신라사를 복원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드라마 선덕여왕이 100% 무근거한 이야기는 아니다. 만일 100% 무근거하다면 역사드라마로 성립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보면 사서에 나오지 않는 여러가지 사건의 이면을 작자가 나름대로 속시원히 풀어가고 있는 점도 눈에 띤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이지 그것으로 신라사를 구성할 수는 없다. 이는 고대에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일정한 직위를 가진 여러 관리들이 참석하여 이루어지는 객관적인 어전회의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써야 믿을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또 혹시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채록한 것일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입각하여 한 나라의 역사를 구성할 수는 없다. 만일 소문의 내용이 아주 중요하여 꼭 써야 한다면 '소문에 의하면'이라는 단서를 다는 것이 사서 편찬자의 기본상식일 것이다. [예]삼국사기 신라본기 지마이사금 11년, 여름 4월: 도성 사람들이 그릇된 소문을 내서 왜병이 크게 쳐들어온다고 하니...


위에서 열거한 3가지에는 들어가지 않으나 과학적 근거에 입각하여 또 하나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천문현상은 민심과 관련되는 것으로서 예로부터 통치도구의 하나로 아주 중요한 기록대상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삼국사기나 고려사를 보면 금성이나 오로라 기록 등 오로지 삼국사기나 고려사에서만 기록된 고유의 천체현상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왜 남당유고에는 천체기록이 다른 사서에 있는 것만 있고 독자적인 것은 단 하나도 없는 것일까? 다른 나라의 시시콜콜한 사건까지 적으면서 왜 자기 나라 국왕의 통치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생길지도 모르는 천체현상은 하나도 기록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다른 것들은 짜집기에 상상력을 더하여 만들어 넣을 수 있었으나 천문학적 지식이나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술이 없었던 그는 그것만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백번 양보해서 남당기록이 어떤 초능력자가 타임머신을 타고, 공간이동에 투명인간 능력까지 갖추고,  여러나라 왕궁을 동시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기록해온 것이라 하자.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삼국사기 쓸 때부터도 이미 있었다고 가정하자. 만일 우리가 지금 20세기 현대사를 집필하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집필진이 하는 일은 대충 다음과 같다. 우선 국내외 모든 사료를 다 모은다. 그 다음에 모은 사료 각각에 대하여 사료검증, 즉 신뢰도 검사를 한다. 그래서 합격한 것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만일 부분 합격한 것이 있으면 그 부분만 취한다. 정치야사가 나오는 요즘의 일요신문 같은 주간지는 아마 버릴 것이다. 그리고 집필원칙을 정한다. 북한에 대한 호칭은 어떻게 할 것이며 ... 등등이다.

김부식을 비롯한 삼국사기 집필진은 유교적 합리주위로 무장한 유학자들이었다. 만일 그들이 남당의 고구려사초나 사략을 보았다면 삼국사기 집필을 위한 선택했을까? 그들은 아마 사료검증절차에서 과학적 합리성 부족으로 바로 탈락시켰을 것이다. 설령 당시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 당시 유학자들에게도 정사를 구성하는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댓글 '4'

▩조약돌

2010.03.01 23:59:38
*.165.204.7

그렇군요. 듣고 보니 남당 선생이 남긴 글이라고 해서 다 정확한 건 아니라는 걸 알겠습니다. 의문을 풀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허허

2010.03.02 07:53:18
*.72.71.205

그런데 그런 모순투성인 남당의 고구려사초를 기준으로 그것에 반하면 다 조작했다느니 뭐니하고 떠들고 다니는 어떤 어리석은 골통이 있으니 정말 너무 웃깁니다.  어떻게 그런 골통이 있나 한심하기도 합니다.

과객

2010.03.02 20:57:07
*.202.192.78

남당 저작 중 화랑세기가 그나마 학계 쪽에서나 인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셨는데...
몇년 전부터 화랑세기는 더 이상 인용되지 않는 듯하네요..

몇년 전 박남수 선생의 글 이후 진위여부가 더 이상 왈가왈부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 글에서 화랑세기 혹은 잔본의 필사년도가 어떻든..
남당의 다른 글에서 화랑세기는 지금 남아있지 않다고 했던 내용이 있다네요...
뭐 결국 화랑세기 역시 박창화 작이 되어버린 거죠...

라디오

2010.03.04 10:56:30
*.88.40.139

흠.. 학자들이 거의 다 부정적이라..
그런 학자들을 직접적으로 만나 보고 싶군요.
금년에는 만나 볼 작정입니다.

직접 두 귀로 들어 보고 싶군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공지 Q&A 새한국고대사 포럼 안내 주성지 2006-08-08 63895

고구려사 乙弗大王傳(을불대왕전) 같이 한자 입력하실 분 찾습니다. [1]

  • 박규호
  • 2010-03-04
  • 조회 수 2372

以雉葛王九年金神之九月 爲新王之元年 大赦天下 放民二十已下赴役男女及其兄弟父子者三分之二 擇其壯丁之自願修宮者千人 營之 民多不歸而留之曰 爲吾君營室 新王命皆厚餽而勞之 以尙遒妻梨氏爲仙方子槨妻 雉葛王(치갈왕, 烽上王) 9년, 金神(금신, 庚申, AD300...

기타 남당유고를 취하기 어려운 이유 [4]

  • 2010-03-01
  • 조회 수 3492

남당은 한국 고대사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화랑세기를 제외하고는 학계에서 인정을 못받고 있다. 기성학계에 계신 분들에게 남당유고 이야기를 하면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한다. 사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화랑세기에 대해서도 그렇게 ...

신라사 파사이사금 17년, 南鄙(남비) 문제. 통설 자체가 바껴야 한다.

  • 박규호
  • 2010-02-19
  • 조회 수 2432

二十年 正月 發良爲伊伐飡 干時爲稟主 20년(AD145년) 1월, 發良(발량)을 伊伐飡(이벌찬)으로, 干時(간시)를 稟主(품주)로 삼았다. 七月 大風三日 大井南神樹自倒 命巫祓之 7월, 큰 바람이 3일 동안 불었다. 大井(대정)의 南神樹(남신수)가 스스로 넘어졌다. 무...

가야사 AD158년, 大加耶(대가야) 건국의 계기. [3]

  • 박규호
  • 2010-02-19
  • 조회 수 2959

천관우는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나오는 壬寅= AD42년을 근거로 해서, 壬寅= 42+ 120= 162년에 가야가 건국되었을거라 추정했었죠. 박창화 유고집 婆娑尼師今記(파사이사금기)를 근거로 하는 대가야의 건국년도는 AD158년이므로, 천관우가 추정했던 AD162년과...

신라사 조작된 삼국사기 于老(우로) 기사. [1]

  • 박규호
  • 2010-02-19
  • 조회 수 2432

삼국사기 권45, 석우로 열전입니다. 과거에 역사21에서 어떤 사람이 우로 열전 기사가 나이에 문제가 있으니까.. 10년이상의 내공을 자랑하니까.. 자신이 해보겠다며 도전을 했었죠. 하지만 실패를 했습니다. 왜 실패했을까요? 주변에 흩어져 있던 은유법으로...

백제사 백제 沸流(비류)의 죽음의 미스터리.

  • 박규호
  • 2010-02-19
  • 조회 수 2809

*백제왕기 시조온조왕 4년, BC2년 十七年 己未 春 樂浪來侵 焚慰禮城 四月 立廟以祠國母 4년 (BC2년) 기미 봄 낙랑이 쳐들어 와서 위례성을 불질렀다. 4월에 사당을 세우고 국모에게 제사지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7년, BC2년 十七年 春 樂浪來侵 焚...

고구려사 라디오님께: 태조왕의 남해순수와 요서10성 해석 의문 [8]

  • 2010-02-15
  • 조회 수 2738

一道安士 우선 제가 라디오님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잘못 이해했으면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남당사서; 태조왕 3년: 2월, 나라 서쪽에 10성을 쌓았다. 8월, 나라 남쪽에 큰 병충해가 들었다. 태조왕 62년: 8월, 나라 남쪽에 큰 병충...

Q&A 백제 무왕에 대한 궁금한 점입니다. [3]

  • 이원주
  • 2010-02-09
  • 조회 수 2620

요즘 이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무왕, 의자왕, 교기왕자와 관련된 내용을 보면서 궁금한 점이 있어 일도안사님과 조약돌님께 질문을 드립니다. 1. 무왕은 아무런 힘이 없는 서동의 지위에서 부여씨라는 신분을 가지고 의자왕의 모(선화공주?)를 통해 왕위에 올...

고구려사 고구려본기 태조왕 3년, 62년 기사. file [1]

  • 박규호
  • 2010-02-05
  • 조회 수 2871

본기신편열전 국조태왕기 고구려사초 太祖皇帝紀(태조황제기) *본기신편열전는 특이한 史書입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와 비슷하게 간략하면서도, 고구려사초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특이한 형식을 지니고 있죠. *본기신편열전 국조태왕기에서 국조왕 3년 ...

신라사 ▩소잔명존 : 3. 이름과 신분

  • 2010-02-02
  • 조회 수 3165

내가 지난번에 올린 글(「▩소잔명존 : 2. 근거지」)을 읽은 사람은 "『일본서기』를 읽어보라. 그 책의 내용에 따르면, 소잔명존은 자기 어머니인 이장염존(伊奘冉尊)이 보고 싶어서 울었다고 나와있지 신라로 가고 싶어서 울었다고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