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보면 다루왕의 왕후기록은 없다. 삭제된 담로제의 흔적이다. 그러면 다루왕의 왕후는 누구였을까?

그는 백제왕이라 불렸던 것으로부터 강력한 소국출신의 여인을 왕후로 세우고 자립위왕 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삼국사기에 신라와 고구려만 남았으므로 신라나 고구려왕실의 여인을 왕후로 세우는 것만 알 수 있다. 하지만 고구려 같은 강력한 대국이 한성백제의 담로국이 될 수는 없으므로 결국 왕후가 신라출신이냐 아니냐만 알 수 있다.

다루왕조를 보면 신라와 사이가 안 좋다. 특히 백제왕이라 불리는 시기에도 안 좋다. 따라서 다루왕의 왕후는 신라 출신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당시는 삼한 중 마한만 백제의 통치하에 있었으므로 강력한 마한소국의 여인이 다루왕의 왕후였다고 생각한다.

다루왕조가 2명의 통치자일 가능성은 없을까?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하지만 만일 존재한다면 다루왕 21년과 28년 사이에서 통치자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루왕 21년에 흘우가 죽으니 왕이 섧게 울었다고 해서 왕의 권력이 상당부분 흘우에게 의지해 왔는데 흘우가 죽어 흔들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28년에 죄수를 재심하고 사형수들을 놓아주는데, 삼국사기는 가뭄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것이 보통 새 왕이 즉위하면 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후자가 신라본기로부터 백제왕의 호칭을 받으므로, 후자만 자립위왕하여 다루왕이라는 시호를 받은 것이고, 전자는 왕호를 받지 못하고 그 속에 묻혀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