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이라는 뜻은 지역적으로는 한반도 중남부를 표현하는 뜻이기도 하지만 광의로 보면 신라는 물론 고구려도 포함합니다. 단 제가 삼한사의 재조명에서 다루었던 삼한은 4세기 이전의 진왕 즉 백제왕이 통치하는 영역입니다.

광개토왕비를 포함한 당시의 고구려인이 남긴 기록을 보면 고구려왕을 天帝之子라 했습니다. 백제인이 남긴 당시의 기록 있다면 백제왕 역시 어떤 수식어를 가지고 불렀을 것입니다. 다행히 한반도에서 백제 진왕으로 즉위한 인물 중 단 1명의 당대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일본서기 응신천황 서문: "처음에 그가 태중에 있을 때 하늘과 땅의 신은 그에게 삼한을 주었다.(初天皇在孕而 天神地祇授三韓)" 즉 백제왕은 삼한의 지배자를 칭했습니다. 천제의 아들이라는 고구려왕의 모습이 명분을 중요시하는 추상적 의미라면, 삼한의 지배자라는 백제왕의 모습은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입니다.

위-고구려 전쟁 직후의 대동강 평양지역에서 만들어진 이른바 낙랑벽비는 당시 낙랑인들이 기록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노태돈 선생님은 만일 이 벽비가 진품이라면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무슨 말인고 하니 삼국사기가 말한 동천왕이 종묘사직을 옮기는 등 임시천도를 한 평양이 지금의 평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후 벌어진 삼국사기의 평양지역에 대한 기록이 일관성을 가지고 모두 맞는 것이 됩니다. 삼국사기의 승리입니다.

또 4세기에 미천왕이 몰아낸 낙랑군은 자연히 요동의 낙랑이 되는 것입니다. 부여와 낙랑군의 접촉 등 기존에 이해하기 어려웠던 기록들이 모두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313년에 고구려가 중국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냈다는 내용은 낙랑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낸 것이 아니고 요동에서 몰아낸 것으로 수정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중국세력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낸 시기를 245년(위-고구려 전쟁)이라고 하면 맞는가 하는 데에는 제 생각이 다릅니다. 저는 위를 완전히 몰아낸 것은 기리영 전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위가 패배함으로써 한반도에 낙랑을 재건하려던 시도가 물거품이 되었고, 동아시아 무역의 주도권이 고구려-백제로 넘어갔습니다.

동천왕이 247년에 천도한 평양을 요서의 심양지역이라고 하고 또 고국원왕대까지 무려 백년이나 심양에 고구려 수도가 있었다고 하는 의견은 고고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백년동안 단순히 고구려 영토이면 고구려 유물이 안 나올 수도 있으나, 백년동안 고구려 수도였으면 반드시 지배층과 관련된 유물이 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심양에서 고구려 왕족과 관련된 수도 입증 유물이 나왔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북한학계가 동천왕이 천도한 평양을 지금의 평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만한 고고학적 유물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고학에서 3세기는 그리 먼 과거가 아닙니다. 저는 낙랑벽비는 앞으로 북한지역에서 쏟아져나올 유물의 시초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일까지는 안 되어도 자유왕래에 의한 연구가 본격화되면 엄청난 유물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담인이라는 필명을 쓰시는 분은 제 책 '삼한사의 재조명'을 읽어보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 연구는 독자적인 것입니다. 담인님의 낙랑 연구는 고조선사의 연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낙랑에 대한 해석 중 일부가 저와 일치하는 것일 뿐 잘 보면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무명이라는 필명을 쓰시는 분이나 담인이라는 필명을 쓰시는 분이나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시고, 또 역사 공부를 시작한 것이, 제가 인터넷에 나타나기 전부터 있던 분들이므로, 10년이 훨씬 넘는 분들입니다. 사학과 학부 4년에 석사과정 2년을 합해 6년 공부했다고 해서 이런 분들을 우습게 보다가는 큰 코 다칩니다. '네티즌 고대사'에는 무명님 글이 한 편 있고, '삼한사의 재조명'에는 담인님 글이 한 편 있습니다. 앞으로 '네티즌 고대사' 개정판을 내게 되면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무명님 글은 뺄 것입니다.







>화랑세기의 주인공 상당수는 삼국통일 전후시기의 신라인입니다..
>특히 문노, 김춘추,김유신 등은 삼국통일에 혁혁한 공이 있다고 나옵니다..
>심국통일은 표현 방식이  삼한일통, 삼한대업, 삼한통합으로.....
>
>화랑세기에서 김대문의 아버지 오기는  문무왕 말년, 신문왕 즉위년에 김흠돌의 난을
>진압한 화랑으로 소개됩니다..
>따라서 김대문도 통일신라 초기의 지식인이며  이시기 사람들은 삼국통일을 삼한일통
>삼한 통합으로 표현한것으로 보여집니다
>
> 김상교수님께서는 삼한을 한성백제가 아닌 광개토왕비문의 왜와 한예로
>정의하시고 삼한백제사를 저술하실걸로 압니다...
>
>삼한일통, 삼한통합, 삼한대업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감상입니다...
>
>ㅇ 신라도 삼한의 일원
>ㅇ 삼한은 백제만을 의미하지 않은 더욱 큰 개념
>ㅇ 삼한에 고구려도 포함될수 있다는 추론
>
>여기 게시판이 너무나 조용합니다..
>역사 21에서는 낙랑의 위치비정 등 논객들의 논쟁이 뜨겁더군요..
>특히 담인님의 초기백제와 말갈, 낙랑의 위치문제등의 주장은 일도안사님의
>논리와 비슷합니다...
>역사21의 낙랑,초기백제,평양의 위치비정 논쟁에 일도안사님이 안보이시니 궁금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