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o Korean History+새한국고대사
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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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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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
2007.06
고려 시대의 인구는 과연 210만명인가?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9185 2007.06.14 03:43:47 (*.235.194.36) 기타0 Comments 688 Views 5 Voted / 0 Devoted
고려 시대 인구에 관한 기록이 송사에 남아 있다. 이 역사서에는 고려의 인구를 210만명이라고 한다. 정확히는 210만口이다. 구는 戶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잘못 전사했을 가능성도 다분히 있다.
그런데 송나라때 고려를 방문했던 화가 출신의 서긍이 기록한 고려도경에는 고려는 영토는 작지만 매우 많은 인구가 있었다란 사실이 나와 있다. 송사에 나와 있는 인구와는 대조적인 기록임에 틀림 없다.
전통적으로 보면 중국 사서에서 중국의 인구는 호와 구가 매우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어떤 군현에 몇호에 몇명이 살았는지 상세히 나와 있다. 반면에 한국의 고대 국가에 있어서는 호와 구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호만 나와 있고 구는 나와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당서에 기록된 고구려와 백제의 인구는 호수로만 나와있고 삼국유사에 나와 있는 고구려와 백제의 인구 또한 그러한 경우이며 통일 신라말에 왕경의 인구 또한 호수로만 나와 있다. 반면에 신라장적에는 호와 구가 같이 나와 있다.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한국의 고대 국가는 호만 나오고 구는 나오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봐야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송사에는 호는 나오지 않고 구만 나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는 210만구가 아니라 210만호로 봐야 맞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고려를 방문했던 서긍이 고려의 인구가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는 기록과 맞아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호당 인구를 5명으로 잡는 경향이 많은데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실제로 호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왕과 왕족,귀족과 관료 등 지배층과 노비는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군인과 상인들 또한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반면에 농민과 공장이는 여기에 포함된다. 이렇기 때문에 고대 국가에서 조사한 인구는 실제와 많은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어떤 학자들은 그 당시의 인구를 기록된 것보다 배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 예로 당서에 나온 백제의 인구는 76만호이나 부여에서 발견된 당평제비에는 24만호, 620만명이라고 나와 상당히 대조적인 면을 보인다. 특히 당평제비에 나온 호와 구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반드시 호당 5명이란 등식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때 도읍을 한 적이 있는 낙양의 경우 호당 8명으로 나오기도 하고 신라장적에는 호당 10명이 나오기 때문에 당평제비에 적힌 인구가 부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송나라때 고려를 방문했던 화가 출신의 서긍이 기록한 고려도경에는 고려는 영토는 작지만 매우 많은 인구가 있었다란 사실이 나와 있다. 송사에 나와 있는 인구와는 대조적인 기록임에 틀림 없다.
전통적으로 보면 중국 사서에서 중국의 인구는 호와 구가 매우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어떤 군현에 몇호에 몇명이 살았는지 상세히 나와 있다. 반면에 한국의 고대 국가에 있어서는 호와 구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호만 나와 있고 구는 나와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당서에 기록된 고구려와 백제의 인구는 호수로만 나와있고 삼국유사에 나와 있는 고구려와 백제의 인구 또한 그러한 경우이며 통일 신라말에 왕경의 인구 또한 호수로만 나와 있다. 반면에 신라장적에는 호와 구가 같이 나와 있다.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한국의 고대 국가는 호만 나오고 구는 나오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봐야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송사에는 호는 나오지 않고 구만 나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는 210만구가 아니라 210만호로 봐야 맞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고려를 방문했던 서긍이 고려의 인구가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는 기록과 맞아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호당 인구를 5명으로 잡는 경향이 많은데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실제로 호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왕과 왕족,귀족과 관료 등 지배층과 노비는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군인과 상인들 또한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반면에 농민과 공장이는 여기에 포함된다. 이렇기 때문에 고대 국가에서 조사한 인구는 실제와 많은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어떤 학자들은 그 당시의 인구를 기록된 것보다 배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 예로 당서에 나온 백제의 인구는 76만호이나 부여에서 발견된 당평제비에는 24만호, 620만명이라고 나와 상당히 대조적인 면을 보인다. 특히 당평제비에 나온 호와 구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반드시 호당 5명이란 등식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때 도읍을 한 적이 있는 낙양의 경우 호당 8명으로 나오기도 하고 신라장적에는 호당 10명이 나오기 때문에 당평제비에 적힌 인구가 부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