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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
2007.06
이종욱의 화랑세기 한-한 대역본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9179 2007.06.12 10:12:07 (*.232.248.181) 신라사0 Comments 685 Views 6 Voted / 0 Devoted
화랑세기 연구서를 낸 바 있는 이종욱 선생님께서 한자-한글 대역본을 새로 출간하셨다(소나무, 2005년). 왼쪽에 한자 원문, 오른쪽에 한글 해석을 두어 공부하기에 아주 좋다. 아직도 진위논쟁이 끝나지 않은 이 남당 박창화의 필사본에 대하여 이종욱 선생님은 서문에서 다음 두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1) 더 이상 진위논쟁은 하지 않겠다.
-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하여 나설 필요가 없고, 이제는 화랑세기로 신라사회를 이해하는 단계이지 진위를 따질 단계는 지났다는 뜻이다.
2) 화랑세기 필사본은 신라사 이해의 핵심이다.
- 이 필사본을 박창화의 창작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6-7세기 신라사 이해로부터 점점 멀어져갈 것이라고 하였다. 즉, 후대인의 저술이나 남의 저술이 아닌, 당대에 당사자의 저술인 화랑세기를 통해 본 신라가 본 모습에 가장 가까운 신라라는 뜻이다.
나는 첫 번째는 완전히 동의하지 않지만 두 번째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이는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창작이 아니라 실제로 일본 왕실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필사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창화의 문집은 앞으로 모두 번역되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연구될 필요가 있다.
박창화 문집에 대하여 아직 확신은 못하나 느낌은 다음과 같다. 우선 그는 천재는 아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모르는 내용은 그대로 필사하고(화랑세기의 경우), 좀 아는 내용이 나오면 여기저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록들을 가져다 연결시켰다. 그러면서 자신의 견해가 들어갔다고 본다. 물론 도서관에는 사료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가 본 것이 역사서일수도 있고, 역사소설일 수도 있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모은 민화집일 수도 있다.
나는 신라사를 전-중-후 3기로 나눈다면, 중기는 4세기 내물왕부터 7세기 문무왕까지로 분류한다. 또 중기에서도 아직 대형고분을 쓰고 유목민족적 풍습으로 신라를 통치하던 6세기의 지증왕까지는 중기 전반부, 제도를 농경민족의 것으로 바꾸고 불교를 공인한 법흥왕부터는 전기 후반부로 나눈다. 그러면 화랑세기는 6-7세기 중기 신라 후반부의 기록이다.
화랑세기를 보면 이 시기의 신라는 아직도 유목민족적 풍습을 보인다. 그런데 이종욱 선생님은 왜 그런지에 대해서, 즉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못하고 있다. 단지 책에 써 있는 당시의 현상만 진실로 받아드릴 뿐이지, 신라에 언제부터 이런 풍습이 있었는지, 그러면 그 풍습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등등은 모른다. 이런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답을 하게 된다면 필사본의 진위논쟁에 대하여 보다 확실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 더 이상 진위논쟁은 하지 않겠다.
-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하여 나설 필요가 없고, 이제는 화랑세기로 신라사회를 이해하는 단계이지 진위를 따질 단계는 지났다는 뜻이다.
2) 화랑세기 필사본은 신라사 이해의 핵심이다.
- 이 필사본을 박창화의 창작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6-7세기 신라사 이해로부터 점점 멀어져갈 것이라고 하였다. 즉, 후대인의 저술이나 남의 저술이 아닌, 당대에 당사자의 저술인 화랑세기를 통해 본 신라가 본 모습에 가장 가까운 신라라는 뜻이다.
나는 첫 번째는 완전히 동의하지 않지만 두 번째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이는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창작이 아니라 실제로 일본 왕실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필사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창화의 문집은 앞으로 모두 번역되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연구될 필요가 있다.
박창화 문집에 대하여 아직 확신은 못하나 느낌은 다음과 같다. 우선 그는 천재는 아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모르는 내용은 그대로 필사하고(화랑세기의 경우), 좀 아는 내용이 나오면 여기저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록들을 가져다 연결시켰다. 그러면서 자신의 견해가 들어갔다고 본다. 물론 도서관에는 사료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가 본 것이 역사서일수도 있고, 역사소설일 수도 있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모은 민화집일 수도 있다.
나는 신라사를 전-중-후 3기로 나눈다면, 중기는 4세기 내물왕부터 7세기 문무왕까지로 분류한다. 또 중기에서도 아직 대형고분을 쓰고 유목민족적 풍습으로 신라를 통치하던 6세기의 지증왕까지는 중기 전반부, 제도를 농경민족의 것으로 바꾸고 불교를 공인한 법흥왕부터는 전기 후반부로 나눈다. 그러면 화랑세기는 6-7세기 중기 신라 후반부의 기록이다.
화랑세기를 보면 이 시기의 신라는 아직도 유목민족적 풍습을 보인다. 그런데 이종욱 선생님은 왜 그런지에 대해서, 즉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못하고 있다. 단지 책에 써 있는 당시의 현상만 진실로 받아드릴 뿐이지, 신라에 언제부터 이런 풍습이 있었는지, 그러면 그 풍습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등등은 모른다. 이런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답을 하게 된다면 필사본의 진위논쟁에 대하여 보다 확실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