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 실린 4세기 이전 대방과 백제관련 기록은 아주 간단하다. 고이왕의 아들인 책계왕의 부인이 대방공주 寶菓라는 것이다. 기리고 이후 백제왕들이 중원정권으로부터 대방군왕 혹은 대방왕의 시호를 받고 있어서 백제는 대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삼한사의 재조명'에서 이 대방국사를 요약하였다. 3세기 초 공손탁 말기에 공손강에 의해 요동반도에 대방군이 설치되자, 그 유민들이 한반도로 들어와 황해도에 대방국을 세웠다고 했고, 중국사료는 이 대방국도 대방군으로 호칭하였다고 했다.

낙랑군과 낙랑국의 시작은 고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 기본 시각은 다음과 같다. BC 2세기에 요서의 능하-요하 유역에 위만의 조선이, 대동강 북쪽유역에 준왕의 조선이 있었다. 위만의 조선은 그의 손자 때 한무제와 싸운 조선이고, 준왕의 조선은 세형동검으로 대표되는 마한조선이다. 이 마한조선이 낙랑유민들에게 대동강유역을 내주고 한강유역으로 남하하였다가, 역시 요서에서 바다를 건너온 백제에게 1세기에 정복된다.

따라서 최초의 낙랑군은 요서에서 시작되었다가, 고구려가 동진함에 따라 이들도 요동으로 가고, 다시 고구려가 서진하자 요서로 건너온 후, 나중에 난하를 건너 유주로 가서 사라진다. 대동강유역의 낙랑국을 삼국사기는 낙랑국으로 불렀지만, 중국사서는 조선으로 부르기도 하고 낙랑군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삼국사기에서 신라와 낙랑은 (한반도에)南-北으로 있고, 백제와 낙랑은 (요하유역에) 西-東으로 있어서, 백제와 신라의 낙랑기록이 겹치는 기록이 하나도 없는데 이는 당연하다.

낙랑태수는 요동에 있으면서 문서(봉니)를 통하여 낙랑국을 통치했다고 본다. 그래서 봉니를 보낸 요동이 아니라 봉니를 받은 대동강유역에 봉니가 모여있다고 생각한다. 요동의 낙랑군이 고구려에 밀려 요서로 건너가는 것은 4세기 초이다. 그리고 이 낙랑군의 서진 기록은 중국사서에도 나온다.

미천왕 14년(313); 겨울 10월, 낙랑군을 침공하여 남녀 2천여 명을 사로잡아왔다.
미천왕 15년(314); 가을 9월, 남쪽으로 대방군을 침공하였다.
미천왕 16년(315); 봄 2월, 현토성을 깨뜨렸는데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아주 많았다.

고구려중심에서 보면 요동반도는 남쪽이다. 그리고 15년조의 남쪽은 낙랑군의 남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고구려 중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나란히 있었던 요동의 낙랑군이고, 다음이 낙랑의 남쪽인 요동반도이고, 가장 먼 것이 현토성이다. 따라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점차 먼 곳으로 공격해 가는 과정이 아주 자연스럽다.

삼국사기가 기록한 고구려의 대동강유역 정복과정은 다음과 같은데 3세기로, 4세기의 요동보다 먼저인데 역시 자연스럽다.

동천왕 19(245), 겨울 10월, 위군이 낙랑으로부터 물러갔다. (위군 잔병이 신라 땅으로 도망쳐 이들을 추격하여) 신라 국경을 넘었다. *동천왕 20년은 19년의 오기임.

조분이사금 16년(245), 겨울 10월, (위군 잔병을 추격하여 내려오던)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여 우로가 군사를 이끌고 막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위군과 고구려군이 신라 땅으로 몰려들어오고 가야 땅으로까지 내려갔다.)

첨해이사금 2년(248), 1월, (위군 잔병출신인) 이찬 장훤을 서불한으로 삼아 정사에 참여하게 하였다. 2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위군 잔병출신을 서불한에 임명한 것에 대하여) 화의를 청했다.

책계왕 원년(286) 고구려가 대방을 치매 대방이 우리에게 구원을 청했다. 이에 앞서 왕이 대방왕의 딸 보과에게 장가를 들어 부인을 삼았기 때문에 왕이 말하기를, “대방은 우리와 사돈이 되는 나라이다. 그들의 청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기림이사금 3년(300) 3월, 낙랑과 대방의 두 나라가 귀순하여왔다.

최근에 공개된 관구검 전쟁 직후에 만들어진 낙랑벽비는 아직 진품여부가 확실하지 않으나 당시 대동강유역이 고구려영토임을 보여준다. 관구검 전쟁이 끝난 2년 후인 동천왕 21년에 종묘사직을 옮기는 평양은 지금의 평양이다.  

이처럼 3세기 중후반에 고구려가 한반도에서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남쪽으로 점차 영토를 넓혀가는 과정이 아주 자연스럽다. 따라서 여기에 나오는 보과는 황해도 유역의 대방국 공주 '보과'여야 합당하다. 그런데 박창화의 백제왕기를 보면 대방왕은 3세기 요동의 송손씨이고, 보과공주는 그 공손씨의 딸이다. 이해하기 어렵다.

억지로라도 해석하자면, 요동의 공손씨가 위나라와 고구려의 협공에 멸망당하자, 그 잔존세력이 한반도의 황해도로 몰려와 살다가, 다시 고구려에게 통합되게 생기자 그 잔존세력이 마침내 신라에 귀복하고 막을 내렸다고 해석해야 한다.

백제왕기는 개루왕-고이왕까지 삼국사기와 다른 또 하나의 별도 왕력을 준비하고 있어서 각 왕의 기록이 두개씩이다. 백제왕기 중 대방관련 기록만 몇 개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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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기사, 2월 요동태수 공손탁(도)왕이 사신을 보내어 화의를 청하니 왕 역시 동복아우 大知를 보내어 방물을 바쳤다.

190 경오, 3월 공손탁왕이 딸 宝婁(보루)를 왕에게 보내며 말하기를, “왕이 아직 室家(부인-일도안사)가 없다 하기로 감히 비천한 딸을 보내어 수발을 들게 하오니 버리지 마옵소”서 하였다. 왕이 백마 3쌍으로 폐백을 삼고 맞아들였다.

194 갑술, 9월 공손도왕이 죽으니 태가 康이 왕이 되었다. 사신을 보내 조문하였다.

197 정축, 5월(고국천왕이 죽은 시점) 고구려 연우가 그 형을 쫓아내고 형수를 빼앗으니 공손강왕이 그 죄를 묻고자하여 우리에게 출병을 요청했으나, 왕은 같은 조상의 나라(同祖之國)로 서로 죽일 수 없다 하여 거절하니 공손강왕이 불쾌해했다.

209 기축, 10월 고구려 연우가 도읍을 환도로 옮기고 자신을 낮추어 화의를 청했으나, 왕이 공손강왕을 두려워하여 감히 내놓고 접대하지 못하고 태자 苩仁으로 하여금 그 사신을 국경에서 몰래 접대하고 돌려보냈다.

217 정유, 3월 공손강왕이 대방왕이라 비로소 칭하고 다시 그 누이 宝臯(보고)를 보내자 첩을 삼았다. 이때 조정은 漢人을 많이 등용하여 요동왕(공손강)에게 많이 의지하였다. 왕은 보루와 보고를 중하게 여겼으나 자식이 없었다.

221 신축. 7월 대방왕 姜이 죽으니 동생 恭(공)이 왕이 되고, 康의 아들 晃(황)은 한나라에 인질이 되었다. 왕이 사신을 보내 조문하였다.

228 무신, 5월, 대방왕 공이 이전 왕자 淵(연)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사신을 보내어 축하하였다.

231 신해, 2월, 대방인 초미 등을 불러 옥쇄를 주조하고 병사들을 西院에 잠복시켰다.

237 정사, 5월, 대방왕 연개도가 말하기를 연이 漢兵을 大川河에서 크게 격파했다고 하자 왕이 사신을 보내 축하였다.

238 무오, 8월, 위가 연을 쳐 크게 깨뜨렸다. (대방)왕 연이 태자수우사에 이르렀다. (우리) 왕의 아우 초해가 대방왕을 위해  구원을 청하니 왕이 5천군사를 내어주었다.

239 기미, 3월, (위에게 패한) 대방인 3천여명을 나라 서쪽에 이주시켰다. 7월 왕이 서쪽으로 순시하여 패하 입구에 이르렀다.(예성강 하구에 집단 이주시켰다는 뜻인가? 이것이 황해도에 나타나는 대방의 시작이란 말인가?-일도안사)

241 신해, 1월, 대방인 공손양에게 명하여 (우리나라) 종실의 위차 공경 예의 등을 정하게 하다.

257 정축, 7월, 구궁 태후 보고부인이 죽었다. 춘추가 57세이며 공손탁왕의 둘째 딸로 경국지생의 인물과 문무지덕의 인품이 있었으며, 구지왕과 소고왕 두 임금을 모셨고, 5녀 3자를 낳았다. 이에 이르러 굴원에서 태왕을 보살피다 병을 얻어 밀실에서 죽다.

264 갑신, 6월, 구수왕이 재위 11년째에 (35세로) 죽어 태자 사반이 즉위했다. 나이가 어려 정사를 볼 수 없으므로 선왕의 아우 고이로 하여금 보좌하게 하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사반왕의 즉위는 234년으로 30년의 차이가 있다.

282 임인, 6월, 고이왕이 태자 책계를 대방왕녀 보과에게 장가들였다.

286 병오, 2월, 고구려가 대방을 쳤다. 구원을 청하자 고이왕이 명하여 태자가 구원하게 하였으나 고구려의 원망을 샀다. 위례성과 아단성과 사성을 수리하여 대비하였다. 11월, 고이왕이 죽었다. 춘추가 52세였다.(삼국사기에는 고이왕의 재위기간이 만 52년임-일도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