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를 읽다보면 판본에 따라 글자가 다른 경우가 있다. 2개만 보자.

예 1> 개루왕 <三十八年>, 春正月丙申晦, 日有食之. 冬十月, 新羅阿湌吉宣謀叛 事露來奔 羅王移書請之 不送. 羅王怒 出師來伐 諸城堅壁 自守不出 羅兵絶糧而歸.
38년 봄 정월 그믐 丙申일에 일식이 있었다. 겨울 10월, 신라의 아찬 길선이 반역을 도모하다가 발각되자 우리나라로 도망해왔다. 신라왕이 글을 보내 소환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그를 보내지 않았다. 신라왕이 노하여 군사를 출동시켜 공격해왔으나 모든 성이 굳게 방어하고 나아가 싸우지 않았다. 신라 군사들은 군량이 떨어져 돌아갔다.

일부 삼국사기 판본에 三十八年이 二十八年으로 된 것이 있다. 二十八年은 오류인데 9백년이나 지나는 동안 여러 번 옮겨 적다가, 혹은 활자를 파다가 실수로 획을 하나 빠뜨려 三자가 二자로 변한 것이다.


예 2> 성왕 三十二年, 秋七月, 王欲襲新羅 親帥步騎<五十> 夜至狗川, 新羅伏兵發與戰 爲亂兵所害薨. 諡曰<聖>.
32년 가을 7월, 왕이 신라를 습격하려고 친히 보.기병 5000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에 이르렀는데 신라의 복병이 일어나 함께 싸우다가 난병에게 해를 입고 돌아가셨다.- (최호 역 삼국사기, 홍신신서)

원문은 步騎<五十>이라고 하였지만 해석은 보병과 기병 5천명이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千자에서 위 삐침이 빠져 十이 된 것인데 이는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신라를 공격하러 가는데 단 50명을 이끌고 갈 수 없다. 신라본기 역시 백제왕이 군사를 이끌고 관산성을 공격해오는 것을 죽였다고 하고 있는데 50명으로 성을 공격할 수 없다.  거기에 단 50명을 두고는 '보기오십'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보병과 기병이라는 표현을 쓰려면 적어도 병력이 수천은 되어야 한다.


2가지로부터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사서가 수 백년이 지나는 동안에 이를 다시 옮겨 쓰는 과정에 실수가 발생할 때 글자의 획이 더해지는 경우보다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일을 적게 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서, 고의로 왜곡하려고 하는 경우가 아니면, 보통의 경우 획을 빠뜨리는 일이 많지 더하는 일은 잘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고의로 왜곡할 가능성이 있는 사서가 아니라면, 읽다가 이상한 글자가 나오거든 혹시 삐침이나 획이 빠진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