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o Korean History+새한국고대사
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첨부파일은 hwp, zip, jpg, gif 만 가능합니다.
※첨부파일은 hwp, zip, jpg, gif 만 가능합니다.
글수 941
19
2007.04
2007.04
박창화 백제왕기의 비류왕과 온조왕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9149 2007.04.19 10:21:42 (*.232.248.181) 백제사0 Comments 669 Views 17 Voted / 0 Devoted
화랑세기 필사본으로 유명한 박창화는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일본 왕실도서관에서 근무한 사람이다. 그는 역사에 관한 많은 글들을 남겼는데 읽어볼 때 마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놀라운 부분이 많다. 아무리 천재라 할지라도 이를 단지 상상력으로 치부하기에는 무리다.
나는 박창화의 역사소설이 단순힌 소설이 아니라 어떤 책을 참조하면서 썼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박창화가 참조한 책은 역사소설일 수도 있고 역사책일수도 있지만 우리가 보지 않은 어떤 것을 보았을 것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어느 부분이 그가 사서를 필사한 것이고 또 어느 부분이 자신의 생각인지 그 경계를 분명히 하지 않아 그의 저술을 사료로서 취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앞으로 시간이 나면 그의 저작을 하나씩 소개할 텐데 우선 백제의 건국자와 관련된 부분이다.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40.pdf
박창화는 온라인으로 모든 자료가 공용되는 오늘에도 천재소리를 들을 정도로 삼국사기 정도는 훤히 알고 있는 역사에 박식한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百濟王記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왕력과 거의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약간씩 다르다. 이것이 단순히 그의 상상력인지 아니면 어떤 책에 그렇게 되어있어서 그랬는지는 앞으로 더 생각해 볼 일이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건국자를 온조왕이라 하였다. 그리고 異說로 비류설을 적고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온조왕은 46년을 재위한다. 그런데 박창화의 백제왕기는 온조왕조의 기록을 2번에 걸쳐 쓰고 있다. 처음은 삼국사기와 같고 두번째는 다른데, 두번째는 건국자가 비류왕이고 온조왕은 비류왕의 동생으로서 30년을 재위하였다.
두번째 왕력에서 박창화는 백제의 건국자를 온조왕이 아닌 비류왕으로 하였는데, 그의 아버지를 삼국사기를 보면 優台(우태)라 하였으나 박창화는 優臺(우대)라 하여 다른 글자를 썼다. 삼국사기에 어떻게 기록되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박창화는 온조 46의 재위기간을 온조 17년의 사당을 세워 왕모를 제사지낸 기록을 기준으로 둘로 나누어, 앞의 17년은 비류왕이 뒤의 30년은 온조왕이 통치한 것으로 기록했다. 즉, 박창화의 온조 1년은 김부식의 온조 17년에 해당한다. 따라서 백제왕기에는 온조가 46년을 재위한 것이 아니라 30년을 재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박창화에 따르면 온조왕 8년조에 나오는 낙랑태수에게 하였다는 “요새를 설치하여 나라를 지키는 것은 고금에 떳떳한 일인데 어찌 이것으로써 화친과 우호에 변함이 있을 수 있으랴? ...”나 온조왕 13년조에 나오는 왕이 첫 번째 천도 후 천도원인을 설명한, “나라의 동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이 있어서 변경을 침공하기 때문에 편안한 날이 적으며...” 는 모두 비류왕의 말이다.
더욱이 둘로 나누는 기준을 왕모의 제사시점으로 잡았다는 것은 이 때부터 백제가 나뉘었다는 뜻인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같은 온조 17년의 일인데도 낙랑이 위례성을 불사른 것은 비류왕조에, 왕모의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낸 것은 온조왕조에 기록하고 있다. 이로부터 3년 후인 온조왕 20년조를 보면 건국 후 최초로 왕이 큰 제단을 설치하고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데, 삼국사기를 보면 왜 건국초에 있을법한 일이 하필 이때인지 알기 어려우나 박창화의 기록을 보면 이 무렵에 온조왕이 분가하였기 때문에 제2의 건국이 되는 것이다.
참고로 온조와 비류의 나이를 추정해보면 삼국사기에 온조왕의 말씀으로 기록된 것은 그이 나이에 비해 너무 어른스럽다.
<< 초기왕들의 생몰연도 추정>>
BC 67 소서노 출생(0세)
BC 59 소서노(8세) 주몽 출생(0세)
BC 45 소서노(22세) 비류 출생 추정(0세)
BC 38 주몽 부여탈출(21세)
BC 37 고구려건국, 주몽(22세)
BC 36 온조 출생 추정(0세), 비류(9세)
BC 19 주몽 사망(40세) 소서노 출국(48세)
BC 18 백제건국 온조(18세), 비류(27세)
BC 11 낙랑과의 분쟁 온조(25세), 비류(34세)
BC 9 백제 한반도 도착 온조(27세), 비류(36세), 다루 출생 추정(0세)
BC 6 소서노 사망(61세) 온조(30세)
BC 2 낙랑이 위례성을 불사름
======================== 박창화의 구분선 ===============
BC 2 왕모의 사당을 설치하고 제사
AD 2 제단을 설치하고 천지신명에게 제사
AD 10 다루 태자책봉 및 병마담당(19세)
AD 28 온조 사망(64세) 다루 즉위(37세)
AD 77 다루 사망(86세)
*(비번변경)
나는 박창화의 역사소설이 단순힌 소설이 아니라 어떤 책을 참조하면서 썼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박창화가 참조한 책은 역사소설일 수도 있고 역사책일수도 있지만 우리가 보지 않은 어떤 것을 보았을 것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어느 부분이 그가 사서를 필사한 것이고 또 어느 부분이 자신의 생각인지 그 경계를 분명히 하지 않아 그의 저술을 사료로서 취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앞으로 시간이 나면 그의 저작을 하나씩 소개할 텐데 우선 백제의 건국자와 관련된 부분이다.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40.pdf
박창화는 온라인으로 모든 자료가 공용되는 오늘에도 천재소리를 들을 정도로 삼국사기 정도는 훤히 알고 있는 역사에 박식한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百濟王記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왕력과 거의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약간씩 다르다. 이것이 단순히 그의 상상력인지 아니면 어떤 책에 그렇게 되어있어서 그랬는지는 앞으로 더 생각해 볼 일이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건국자를 온조왕이라 하였다. 그리고 異說로 비류설을 적고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온조왕은 46년을 재위한다. 그런데 박창화의 백제왕기는 온조왕조의 기록을 2번에 걸쳐 쓰고 있다. 처음은 삼국사기와 같고 두번째는 다른데, 두번째는 건국자가 비류왕이고 온조왕은 비류왕의 동생으로서 30년을 재위하였다.
두번째 왕력에서 박창화는 백제의 건국자를 온조왕이 아닌 비류왕으로 하였는데, 그의 아버지를 삼국사기를 보면 優台(우태)라 하였으나 박창화는 優臺(우대)라 하여 다른 글자를 썼다. 삼국사기에 어떻게 기록되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박창화는 온조 46의 재위기간을 온조 17년의 사당을 세워 왕모를 제사지낸 기록을 기준으로 둘로 나누어, 앞의 17년은 비류왕이 뒤의 30년은 온조왕이 통치한 것으로 기록했다. 즉, 박창화의 온조 1년은 김부식의 온조 17년에 해당한다. 따라서 백제왕기에는 온조가 46년을 재위한 것이 아니라 30년을 재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박창화에 따르면 온조왕 8년조에 나오는 낙랑태수에게 하였다는 “요새를 설치하여 나라를 지키는 것은 고금에 떳떳한 일인데 어찌 이것으로써 화친과 우호에 변함이 있을 수 있으랴? ...”나 온조왕 13년조에 나오는 왕이 첫 번째 천도 후 천도원인을 설명한, “나라의 동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이 있어서 변경을 침공하기 때문에 편안한 날이 적으며...” 는 모두 비류왕의 말이다.
더욱이 둘로 나누는 기준을 왕모의 제사시점으로 잡았다는 것은 이 때부터 백제가 나뉘었다는 뜻인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같은 온조 17년의 일인데도 낙랑이 위례성을 불사른 것은 비류왕조에, 왕모의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낸 것은 온조왕조에 기록하고 있다. 이로부터 3년 후인 온조왕 20년조를 보면 건국 후 최초로 왕이 큰 제단을 설치하고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데, 삼국사기를 보면 왜 건국초에 있을법한 일이 하필 이때인지 알기 어려우나 박창화의 기록을 보면 이 무렵에 온조왕이 분가하였기 때문에 제2의 건국이 되는 것이다.
참고로 온조와 비류의 나이를 추정해보면 삼국사기에 온조왕의 말씀으로 기록된 것은 그이 나이에 비해 너무 어른스럽다.
<< 초기왕들의 생몰연도 추정>>
BC 67 소서노 출생(0세)
BC 59 소서노(8세) 주몽 출생(0세)
BC 45 소서노(22세) 비류 출생 추정(0세)
BC 38 주몽 부여탈출(21세)
BC 37 고구려건국, 주몽(22세)
BC 36 온조 출생 추정(0세), 비류(9세)
BC 19 주몽 사망(40세) 소서노 출국(48세)
BC 18 백제건국 온조(18세), 비류(27세)
BC 11 낙랑과의 분쟁 온조(25세), 비류(34세)
BC 9 백제 한반도 도착 온조(27세), 비류(36세), 다루 출생 추정(0세)
BC 6 소서노 사망(61세) 온조(30세)
BC 2 낙랑이 위례성을 불사름
======================== 박창화의 구분선 ===============
BC 2 왕모의 사당을 설치하고 제사
AD 2 제단을 설치하고 천지신명에게 제사
AD 10 다루 태자책봉 및 병마담당(19세)
AD 28 온조 사망(64세) 다루 즉위(37세)
AD 77 다루 사망(86세)
*(비번변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