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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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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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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
2007.04
이중천황의 자립위왕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9139 2007.04.12 14:56:03 (*.232.248.181) 백제사0 Comments 592 Views 30 Voted / 0 Devoted
履中天皇은 '거래수별천황'이라고도 하는데 대초료천황(인덕)의 태자다. 어머니는 磐之媛命인데 葛城襲津彦의 딸이다.
인덕 87년; 태자는 천황의 장례를 끝내고 우전실대숙녜의 딸인 흑원을 비로 하려고 하였다.... 주길중황자를 보내 길일을 고하게 하였다. 주길중황자는 태자라 속이고 흑원을 범하였다. ... 주길중황자는 몰래 군사를 일으켜 태자궁을 에워쌌다. 아지왕(아지사주)이 태자를 일으켜 말에 태워 피신시켰다.... 서치별황자(아지왕)는 척령건을 시켜 주길중황자를 죽였다.... (서치별황자가 내란을 진압하였다.)
이중 원년; 봄 2월, 황태자는 반여치앵궁에서 즉위하였다. [왜왕 珍(아지)이 전권을 장악하고 왜왕 彌(이중)를 즉위시킴: 一道安士] 가을 7월, 위전숙녜의 딸 흑원을 황비로 하였다.
이중 2년: 서치별황자(왜왕 진=아지왕, 훗날의 반정천황)를 후계자로 하였다.
일본서기는 천황가의 신성함을 과장하기 위하여 편찬된 책으로 아는데 여기 왕비 세우는 것을 보면 일반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진왕제란 담로제가 발전하여 왕실의 제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일본서기 기록은 담로제를 모르면 이해할 수 없다. 전 왕이 죽으면 새 왕이 들어서면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새 왕후를 세우는 일이다. 당시 이중천황에게 흑원 외에는 마땅한 왕비 후보가 없었던 것이다.
중앙관료인 각료인 우전실대숙녜의 딸을 왕후로 세울 수는 없다. 일본서기는 흑원을 황비라 하여 황후보다 한 단계 낮은 단계로 기록하고 있는데, 강력한 소국출신이 아니고 중앙 각료의 딸인 경우에는 왕후가 되지 못하고 왕비가 되는 것이다.
이로부터 진왕제 하에서 때로는 왕후가 아니라 왕비로도 자립위왕이 가능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실권은 모두 서치별이 장악하고 이중은 허수아비 왕이었다. 마치 근초고왕과 진정의 관계, 혹은 흘해이사금과 급리의 관계와 같다. 송서 왜국전을 보면 인덕(찬) 다음에 이중이 생략되고 바로 반정(진)이 오는데 이는 정확한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왕은 풍신수길이었지만 당시에도 명목상의 군주로 천황은 존재하였다.
이중 5년; 가을 9월, 천황이 담로도에서 사냥을 하였다(황비와 연관된 괴이한 이야기가 나옴). 사자가 와서 황비가 죽었다고 알려왔다. 겨울 10월, 황비를 장사지냈다.
이중 6년; 봄 정월, 초향번사황녀를 황후로 세웠다. 봄 3월, 천황이 몸에 병이 나 죽었다.
이중이 사냥을 나간 동안에 황비가 갑자기 죽자 돌아와 새 황후를 세우는데 그 상황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일본서기에는 피냄새 이야기가 나오고, 하늘에서 황비를 부른다는 등 기이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 그것이 자연사가 아니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이중은 허수아비 왕의 위치가 싫어서 정식 황후를 세우고 실권을 행사하고 싶었던 것이다.
권력을 위하여 부인을 죽이는 것은 현대에 새로 생긴 것이 아니다. 당시 이중의 연극에 이용된 희생자는 또 누구였을까? 하지만 권력을 위하여 자신의 아내를 죽여야 할 정도라면 그 권력이 오래갈 수 없다. 그 역시 황후 세운 지 2달 만에 갑자기 죽고 실권자이던 서치별이 반정천황으로 즉위한다.
이중천황이 흑원이 죽자 황후로 세웠다는 초향번사황녀는 자신의 누이(인덕의 딸)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사정상 황후의 출신을 명기하기 어렵다는 뜻이고, 실제로는 백제왕실에서 응신 39년(407년)에 신제도원과 함께 온 여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5세기 일본서기는 왜국의 권력자들이 백제 왕실의 여인들을 한 명씩 차지하고 서로 왕이 되려고 싸우는 모습니다.
인덕 87년; 태자는 천황의 장례를 끝내고 우전실대숙녜의 딸인 흑원을 비로 하려고 하였다.... 주길중황자를 보내 길일을 고하게 하였다. 주길중황자는 태자라 속이고 흑원을 범하였다. ... 주길중황자는 몰래 군사를 일으켜 태자궁을 에워쌌다. 아지왕(아지사주)이 태자를 일으켜 말에 태워 피신시켰다.... 서치별황자(아지왕)는 척령건을 시켜 주길중황자를 죽였다.... (서치별황자가 내란을 진압하였다.)
이중 원년; 봄 2월, 황태자는 반여치앵궁에서 즉위하였다. [왜왕 珍(아지)이 전권을 장악하고 왜왕 彌(이중)를 즉위시킴: 一道安士] 가을 7월, 위전숙녜의 딸 흑원을 황비로 하였다.
이중 2년: 서치별황자(왜왕 진=아지왕, 훗날의 반정천황)를 후계자로 하였다.
일본서기는 천황가의 신성함을 과장하기 위하여 편찬된 책으로 아는데 여기 왕비 세우는 것을 보면 일반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진왕제란 담로제가 발전하여 왕실의 제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일본서기 기록은 담로제를 모르면 이해할 수 없다. 전 왕이 죽으면 새 왕이 들어서면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새 왕후를 세우는 일이다. 당시 이중천황에게 흑원 외에는 마땅한 왕비 후보가 없었던 것이다.
중앙관료인 각료인 우전실대숙녜의 딸을 왕후로 세울 수는 없다. 일본서기는 흑원을 황비라 하여 황후보다 한 단계 낮은 단계로 기록하고 있는데, 강력한 소국출신이 아니고 중앙 각료의 딸인 경우에는 왕후가 되지 못하고 왕비가 되는 것이다.
이로부터 진왕제 하에서 때로는 왕후가 아니라 왕비로도 자립위왕이 가능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실권은 모두 서치별이 장악하고 이중은 허수아비 왕이었다. 마치 근초고왕과 진정의 관계, 혹은 흘해이사금과 급리의 관계와 같다. 송서 왜국전을 보면 인덕(찬) 다음에 이중이 생략되고 바로 반정(진)이 오는데 이는 정확한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왕은 풍신수길이었지만 당시에도 명목상의 군주로 천황은 존재하였다.
이중 5년; 가을 9월, 천황이 담로도에서 사냥을 하였다(황비와 연관된 괴이한 이야기가 나옴). 사자가 와서 황비가 죽었다고 알려왔다. 겨울 10월, 황비를 장사지냈다.
이중 6년; 봄 정월, 초향번사황녀를 황후로 세웠다. 봄 3월, 천황이 몸에 병이 나 죽었다.
이중이 사냥을 나간 동안에 황비가 갑자기 죽자 돌아와 새 황후를 세우는데 그 상황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일본서기에는 피냄새 이야기가 나오고, 하늘에서 황비를 부른다는 등 기이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 그것이 자연사가 아니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이중은 허수아비 왕의 위치가 싫어서 정식 황후를 세우고 실권을 행사하고 싶었던 것이다.
권력을 위하여 부인을 죽이는 것은 현대에 새로 생긴 것이 아니다. 당시 이중의 연극에 이용된 희생자는 또 누구였을까? 하지만 권력을 위하여 자신의 아내를 죽여야 할 정도라면 그 권력이 오래갈 수 없다. 그 역시 황후 세운 지 2달 만에 갑자기 죽고 실권자이던 서치별이 반정천황으로 즉위한다.
이중천황이 흑원이 죽자 황후로 세웠다는 초향번사황녀는 자신의 누이(인덕의 딸)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사정상 황후의 출신을 명기하기 어렵다는 뜻이고, 실제로는 백제왕실에서 응신 39년(407년)에 신제도원과 함께 온 여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5세기 일본서기는 왜국의 권력자들이 백제 왕실의 여인들을 한 명씩 차지하고 서로 왕이 되려고 싸우는 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