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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
2007.03
[re] 삼국지 동이전의 ‘接’자의 사용례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9123 2007.03.29 12:18:49 (*.232.248.181) 백제사0 Comments 1040 Views 57 Voted / 0 Devoted
삼국지 동이전에 접한다는 내용이 나오면 당시의 시각으로 당시를 보아야 하므로 그 ‘접한다’는 것이 그 사서에서 어떻게 쓰였는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1) <夫餘>在長城之北, 去<玄토>千里, 南與<高句麗>, 東與<읍婁>, 西與<鮮卑> 接
'부여'는 '장성'의 북쪽에 있다. '현토'에서 천리를 간다. 남으로는 '고구려'에 접하고, 동쪽으로 '읍루'에 접하며, 서쪽으로 '선비'에 접한다.
[해설] 接자를 맨 나중에 한 번만 씁니다. 하지만 뜻은 각 방위에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나온 중국정사조선전 역주시리즈에서도 같습니다.
2) <高句麗>在<遼東>之東千里, 南與<朝鮮>·<濊貊>, 東與<沃沮>, 北與<夫餘> 接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에 있다. 남쪽은 '조선'과 '예맥'에 접하고, 동쪽은 '옥저'에 접하며, 북쪽은 '부여'에 접한다.
[해설] 역시 接자는 맨 나중에 한 번만 쓰지만 다 들어가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나라치고 접하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조선은 낙랑국입니다. 중국사서는 삼국사기의 낙랑군이나 낙랑국이나 모두 낙랑군으로 호칭하지만 낙랑국에 대하서만은 3세기까지 조선으로도 호칭합니다. 이 조선(낙랑국)이 고구려 영토에 완전히 귀속되는 것은 삼국사기는 관구검전쟁을 통해서라고 하고 있습니다. 대방국은 3세기 후반에 고구려에 귀속되는데 이는 고고학적 사실과도 일치합니다. 4세기 초에 대방국 자리인 황해도 북쪽에 고구려의 남평양이 건설되기 때문입니다.
3) <東沃沮>在 高句麗 蓋馬大山之東 濱大海而居. 其地形東北狹 西南長 可千里, 北與<읍婁>·<夫餘>, 南與<濊貊> 接.
'동옥저'는 '고구려'의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다. 큰 바다에 임하여 거한다. 그 땅의 형태는 동북간은 좁고 서남간은 길어서 가히 천리이다. 북쪽으로 '읍루'와 '부여'에 접하고, 남쪽으로 '예맥'에 접한다.
[해설] 사람들이 살만하여 정치세력이 존재하는 북쪽과 남쪽에 대해서만 접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동옥저와 접하는 존재인 읍루, 또는 예맥과의 사이에는 다른 특이할만한 정치세력이 없습니다.
4) <宮>奔<北沃沮>. <北沃沮>一名<置溝婁>, 去<南沃沮>八百餘里, 其俗南北皆同, 與<읍婁> 接.
(관구검 침공시) '궁'이 '북옥저'로 달아났는데, '북옥저'는 일명 '치구루'이다. '남옥저'에서 팔백여리를 간다. 그 풍속은 남북이 모두 같다. '읍루'에 접해 있다. '
[해설] 북옥저 근처에 존재하는 정치세력은 동계인 남옥저 외에는 읍루뿐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두 정치 세력 사이에 기록할만한 다른 정치세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5) <읍婁>在<夫餘>東千餘里 濱大海, 南與<北沃沮> 接, 未知其北所極
'읍루'는 '부여' 동쪽 천여리에 있으며 큰 바다에 닿는다. 남쪽은 '북옥저'에 접하고, 그 북쪽의 끝은 알지 못한다.
[해설] 읍루 주변의 정치세력은 남쪽의 북옥저뿐입니다. 읍루의 북쪽은 모른다고 하였는데 만일 북쪽에 어떤 정치세력이 존재하면 역시 접한다고 할 것입니다. 천 여리 떨어진 부여에 대해서는 접한다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천여리는 당시 기준으로 자주 교류하는 거리의 한계일 것입니다. 읍루와 북옥저 사이에 기록할만한 다른 정치세력은 없습니다.
6) <濊>南與<辰韓>, 北與<高句麗>·<沃沮> 接,
'예'는 남쪽으로는 '진한'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옥저'에 접한다.
[해설] 주변에 존재하는 것은 곧 접하는 것입니다. 예에서 볼 때 진한, 고구려, 옥저가 천여리 이내에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예와 고구려, 또는 예와 옥저 사이에 다른 특기할만한 정치세력은 없습니다.
7)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 接, 方可四千里.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 동쪽과 서쪽으로 바다를 한계로 한다. 남쪽은 '왜'와 접하며, 사방 사천리이다.
[해설] 바다로 막혀 정치세력이 없는 동쪽과 서쪽에 대해서는 접한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단 남쪽에는 정치세력이 존재하는데 그게 왜입니다. 한과 왜 사이에 다른 정치세력은 없습니다.
8) <弁辰>與<辰韓>雜居, 亦有城郭 衣服居處與<辰韓>同. 言語法俗相似 祠祭鬼神有異, 施 皆在戶西. 其<瀆盧國>與<倭> 接界.
'변진'은 '진한'과 섞여 산다. 역시 성곽이 있으며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같다. 언어와 법과 풍속은 서로 유사함이 있으나 귀신에 제사함은 다른데, 부엌 신을 문에서 서쪽에 두는 것이다. '독노국'은 '왜'와 접해 있다.
[해설] 변진의 여러 나라들 중에 왜와 가장 가까운 지역에 있는 나라가 독로국입니다. 독로국과 왜 사이에 뚜렷한 다른 정치세력은 없습니다.
황하유역 같은 농경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땅을 나누어 가지고 경계를 그어야 혼란이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과 사람이 접하고 사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북방사회는 빈 땅이 많아 반드시 경계를 그을 필요는 없지만, 중국인 눈으로는 천리 떨어진 거리에 존재하더라도 사람들이 왕래하기만 하면 접하는 것입니다.
10세기에 기록된 구당서는 백제에 대하여 南渡海之倭國이라 하여 삼국지의 韓이 南與倭接보다 훨씬 구체적인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사서마다 당시의 표현양식이 있으므로 10세기의 방식으로 3세기의 기록인 삼국지를 읽으면 안 되고, 3세기의 방식으로 3세기의 삼국지를 읽어야 할 것입니다.
3세기의 삼국지의 접한다는 표현은 21세기의 아세안이나 유럽 경제공동체, 또는 북아메리카 경제공동체 정도의 교역이 이루어지는 거리에 있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 기록할만한 제3의 다른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을 때 접한다고 했을 뿐입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왜는 일본열도의 왜입니다. 2-3세기의 왜는 가야계가 건너가 만든 가야사회입니다. 1세기 중반에 가야가 건국되고 이로부터 다시 약 반세기가 지난 후 일본열도에 국가가 들어서게 됩니다. 이것이 숭신의 야마대(倭面土: 왜인들의 땅)국 건국입니다. 남왕 다섯이 약 170년 통치하다(AD 100~ AD 173) 비미호라는 여왕에게 나라가 넘어갑니다.
>일도안사님의 글을 잘 보고있습니다.
>특히나 광개토대왕 비문의 왜가 곧 백제이며 삼한이라는 설명에 동의 합니다.
>그런데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왜는 삼한과 접하였다고 나오지 않는가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왜'는 어떤 존재인가요?
1) <夫餘>在長城之北, 去<玄토>千里, 南與<高句麗>, 東與<읍婁>, 西與<鮮卑> 接
'부여'는 '장성'의 북쪽에 있다. '현토'에서 천리를 간다. 남으로는 '고구려'에 접하고, 동쪽으로 '읍루'에 접하며, 서쪽으로 '선비'에 접한다.
[해설] 接자를 맨 나중에 한 번만 씁니다. 하지만 뜻은 각 방위에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나온 중국정사조선전 역주시리즈에서도 같습니다.
2) <高句麗>在<遼東>之東千里, 南與<朝鮮>·<濊貊>, 東與<沃沮>, 北與<夫餘> 接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에 있다. 남쪽은 '조선'과 '예맥'에 접하고, 동쪽은 '옥저'에 접하며, 북쪽은 '부여'에 접한다.
[해설] 역시 接자는 맨 나중에 한 번만 쓰지만 다 들어가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나라치고 접하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조선은 낙랑국입니다. 중국사서는 삼국사기의 낙랑군이나 낙랑국이나 모두 낙랑군으로 호칭하지만 낙랑국에 대하서만은 3세기까지 조선으로도 호칭합니다. 이 조선(낙랑국)이 고구려 영토에 완전히 귀속되는 것은 삼국사기는 관구검전쟁을 통해서라고 하고 있습니다. 대방국은 3세기 후반에 고구려에 귀속되는데 이는 고고학적 사실과도 일치합니다. 4세기 초에 대방국 자리인 황해도 북쪽에 고구려의 남평양이 건설되기 때문입니다.
3) <東沃沮>在 高句麗 蓋馬大山之東 濱大海而居. 其地形東北狹 西南長 可千里, 北與<읍婁>·<夫餘>, 南與<濊貊> 接.
'동옥저'는 '고구려'의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다. 큰 바다에 임하여 거한다. 그 땅의 형태는 동북간은 좁고 서남간은 길어서 가히 천리이다. 북쪽으로 '읍루'와 '부여'에 접하고, 남쪽으로 '예맥'에 접한다.
[해설] 사람들이 살만하여 정치세력이 존재하는 북쪽과 남쪽에 대해서만 접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동옥저와 접하는 존재인 읍루, 또는 예맥과의 사이에는 다른 특이할만한 정치세력이 없습니다.
4) <宮>奔<北沃沮>. <北沃沮>一名<置溝婁>, 去<南沃沮>八百餘里, 其俗南北皆同, 與<읍婁> 接.
(관구검 침공시) '궁'이 '북옥저'로 달아났는데, '북옥저'는 일명 '치구루'이다. '남옥저'에서 팔백여리를 간다. 그 풍속은 남북이 모두 같다. '읍루'에 접해 있다. '
[해설] 북옥저 근처에 존재하는 정치세력은 동계인 남옥저 외에는 읍루뿐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두 정치 세력 사이에 기록할만한 다른 정치세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5) <읍婁>在<夫餘>東千餘里 濱大海, 南與<北沃沮> 接, 未知其北所極
'읍루'는 '부여' 동쪽 천여리에 있으며 큰 바다에 닿는다. 남쪽은 '북옥저'에 접하고, 그 북쪽의 끝은 알지 못한다.
[해설] 읍루 주변의 정치세력은 남쪽의 북옥저뿐입니다. 읍루의 북쪽은 모른다고 하였는데 만일 북쪽에 어떤 정치세력이 존재하면 역시 접한다고 할 것입니다. 천 여리 떨어진 부여에 대해서는 접한다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천여리는 당시 기준으로 자주 교류하는 거리의 한계일 것입니다. 읍루와 북옥저 사이에 기록할만한 다른 정치세력은 없습니다.
6) <濊>南與<辰韓>, 北與<高句麗>·<沃沮> 接,
'예'는 남쪽으로는 '진한'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옥저'에 접한다.
[해설] 주변에 존재하는 것은 곧 접하는 것입니다. 예에서 볼 때 진한, 고구려, 옥저가 천여리 이내에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예와 고구려, 또는 예와 옥저 사이에 다른 특기할만한 정치세력은 없습니다.
7)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 接, 方可四千里.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 동쪽과 서쪽으로 바다를 한계로 한다. 남쪽은 '왜'와 접하며, 사방 사천리이다.
[해설] 바다로 막혀 정치세력이 없는 동쪽과 서쪽에 대해서는 접한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단 남쪽에는 정치세력이 존재하는데 그게 왜입니다. 한과 왜 사이에 다른 정치세력은 없습니다.
8) <弁辰>與<辰韓>雜居, 亦有城郭 衣服居處與<辰韓>同. 言語法俗相似 祠祭鬼神有異, 施 皆在戶西. 其<瀆盧國>與<倭> 接界.
'변진'은 '진한'과 섞여 산다. 역시 성곽이 있으며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같다. 언어와 법과 풍속은 서로 유사함이 있으나 귀신에 제사함은 다른데, 부엌 신을 문에서 서쪽에 두는 것이다. '독노국'은 '왜'와 접해 있다.
[해설] 변진의 여러 나라들 중에 왜와 가장 가까운 지역에 있는 나라가 독로국입니다. 독로국과 왜 사이에 뚜렷한 다른 정치세력은 없습니다.
황하유역 같은 농경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땅을 나누어 가지고 경계를 그어야 혼란이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과 사람이 접하고 사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북방사회는 빈 땅이 많아 반드시 경계를 그을 필요는 없지만, 중국인 눈으로는 천리 떨어진 거리에 존재하더라도 사람들이 왕래하기만 하면 접하는 것입니다.
10세기에 기록된 구당서는 백제에 대하여 南渡海之倭國이라 하여 삼국지의 韓이 南與倭接보다 훨씬 구체적인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사서마다 당시의 표현양식이 있으므로 10세기의 방식으로 3세기의 기록인 삼국지를 읽으면 안 되고, 3세기의 방식으로 3세기의 삼국지를 읽어야 할 것입니다.
3세기의 삼국지의 접한다는 표현은 21세기의 아세안이나 유럽 경제공동체, 또는 북아메리카 경제공동체 정도의 교역이 이루어지는 거리에 있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 기록할만한 제3의 다른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을 때 접한다고 했을 뿐입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왜는 일본열도의 왜입니다. 2-3세기의 왜는 가야계가 건너가 만든 가야사회입니다. 1세기 중반에 가야가 건국되고 이로부터 다시 약 반세기가 지난 후 일본열도에 국가가 들어서게 됩니다. 이것이 숭신의 야마대(倭面土: 왜인들의 땅)국 건국입니다. 남왕 다섯이 약 170년 통치하다(AD 100~ AD 173) 비미호라는 여왕에게 나라가 넘어갑니다.
>일도안사님의 글을 잘 보고있습니다.
>특히나 광개토대왕 비문의 왜가 곧 백제이며 삼한이라는 설명에 동의 합니다.
>그런데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왜는 삼한과 접하였다고 나오지 않는가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왜'는 어떤 존재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