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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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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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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백제 시조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9117 2007.04.02 10:22:57 (*.232.248.181) 백제사0 Comments 646 Views 34 Voted / 0 Devoted
> 백제의 시조 仇台는 대방에 건국을 하였고 소서노와 결혼후 죽었습니다.
제 설명에 약간의 혼란이 있었습니다. 백제 시조는 김부식도 혼란스럽다고 한 어려운 문제입니다. 지난 설명을 버리고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아래의 글 '동명왕=시조왕'의 백제 부분도 약간 고쳤습니다.
백제 시조는 다음처럼 고구려 동명왕의 두 아들입니다.
1) 장자 비류 - 母는 소서노 生父는 부여인 우태로 추정
2) 차자 온조 - 母는 소서노 生父는 동명왕으로 추정
북사 백제전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동명의 후손에 仇台가 있으니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처음으로 대방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국가 발전 중에) 한의 요동태수 공손도의 딸과 혼인하였다. (훗날) 동이강국이 되었다.
이 구태는 비류와 온조 중 한명인데 비류입니다. 그 이유는 국가를 세울 무렵에는 형인 비류가 왕이었고, 훗날 담로제에 의하여 공손도와 혼인 한 것이 비류가 세운 삼한백제이기 때문입니다. 요서군을 설치하는 등 동이강국이 된 것도 삼한백제입니다.
온조가 왕이 된 것은 한반도에 들어와 형제가 분립한 이후입니다. 구체적으로 왕모가 죽던 온조 13년에 두 형제는 완전히 나누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왕모인 소서노는 동생인 온조가 분립하는데 반대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2. 그 시조 구태의 사당도 도성 안에 건립해 놓고 네 차례씩 제사를 지낸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5세기 이후의 시조제사가 없습니다. 이는 삼한백제 기록이 탈락할 때 함께 탈락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5세기 이후에 백제가 모신 시조는 동명(고구려)-온조 계열이 될 수 없고 우태(부여)-비류 계열이 될 것입니다. 우태나 구태나 발음이 비슷하여 어렵지만 북사의 구태는 비류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 그 후 비류가 고구려로 부터 도망쳐 백제를 건국하는데 최초의 건국지는 대방이 아닐까요?
> 대방에서 건국하지 않았더라도 나중에는 대방을 차지 한 것 같습니다.
> 그런데 대방의 위치는 어디인가요?
> 일도안사님은 황해도 지역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 그러나 저는 소서노의 친정인 졸본과 가까운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어쩌면 낙랑군 근처이며 요서지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정확한 대방군의 위치는 어디인가요?
제 설명에 약간의 혼란이 있었습니다. 백제 시조는 김부식도 혼란스럽다고 한 어려운 문제입니다. 지난 설명을 버리고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아래의 글 '동명왕=시조왕'의 백제 부분도 약간 고쳤습니다.
백제 시조는 다음처럼 고구려 동명왕의 두 아들입니다.
1) 장자 비류 - 母는 소서노 生父는 부여인 우태로 추정
2) 차자 온조 - 母는 소서노 生父는 동명왕으로 추정
북사 백제전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동명의 후손에 仇台가 있으니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처음으로 대방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국가 발전 중에) 한의 요동태수 공손도의 딸과 혼인하였다. (훗날) 동이강국이 되었다.
이 구태는 비류와 온조 중 한명인데 비류입니다. 그 이유는 국가를 세울 무렵에는 형인 비류가 왕이었고, 훗날 담로제에 의하여 공손도와 혼인 한 것이 비류가 세운 삼한백제이기 때문입니다. 요서군을 설치하는 등 동이강국이 된 것도 삼한백제입니다.
온조가 왕이 된 것은 한반도에 들어와 형제가 분립한 이후입니다. 구체적으로 왕모가 죽던 온조 13년에 두 형제는 완전히 나누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왕모인 소서노는 동생인 온조가 분립하는데 반대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2. 그 시조 구태의 사당도 도성 안에 건립해 놓고 네 차례씩 제사를 지낸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5세기 이후의 시조제사가 없습니다. 이는 삼한백제 기록이 탈락할 때 함께 탈락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5세기 이후에 백제가 모신 시조는 동명(고구려)-온조 계열이 될 수 없고 우태(부여)-비류 계열이 될 것입니다. 우태나 구태나 발음이 비슷하여 어렵지만 북사의 구태는 비류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 그 후 비류가 고구려로 부터 도망쳐 백제를 건국하는데 최초의 건국지는 대방이 아닐까요?
> 대방에서 건국하지 않았더라도 나중에는 대방을 차지 한 것 같습니다.
> 그런데 대방의 위치는 어디인가요?
> 일도안사님은 황해도 지역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 그러나 저는 소서노의 친정인 졸본과 가까운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어쩌면 낙랑군 근처이며 요서지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정확한 대방군의 위치는 어디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