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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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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
2007.03
[re] 동명왕=시조왕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9107 2007.03.15 14:16:19 (*.232.248.181) 고구려사0 Comments 831 Views 55 Voted / 0 Devoted
건국자는 항상 미화되기 마련이라 진실을 찾기 어렵고, 더우기 건국자의 출생은 신비주의가 덧칠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현대의 우리는 그저 상식적인 선에서 추측하는 것이지요.
우선 동명이란 (새벽에) 동쪽에 볓이 든다는 말로서 새나라의 건국을 의미합니다. 백제의 동명왕은 비류와 온조이며 신라의 동명왕은 혁거세입니다. 태조나 성종의 아들이 누구냐고 물으면 답변하기가 어렵습니다. 고려에도 태조와 성종이 있고 조선에도 태조와 성종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여의 시조는 부여의 동명왕이며 고구려의 시조는 고구려의 동명왕입니다. 그런데 고구려의 동명왕은 추모 혹은 주몽으로서, 고려의 동명왕 왕건이나 조선의 동명왕 이성계처럼 이름을 알 수 있으나, 부여의 동명왕은 정확히 이름을 모릅니다. 그저 해씨일 것이라는 정도의 추정이지요.
고구려 동명왕인 주몽이 동부여 출신(삼국사기)이냐 북부여 출신(광개토왕비문)이냐는 광개토왕비문을 따라 북부여 출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북이나 동은 상대적인 방위 개념으로서, 북도 서쪽에서 보면 동이고, 동도 남쪽에서 보면 북입니다. 북부여인들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동부여라 칭했다 하더라도, 이들이 본래 북부여인들이었으므로 그냥 북부여라고 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더구나 고구려는 북부여가 동쪽으로 이동한 다음에는 사이가 안 좋지요.
고구려본기는 고구려 동명왕의 아버지를 금와가 아닌 그 윗대의 해부루-해모수에게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부여의 금와왕이나 대소왕과의 관계를 피하고자 하는데서 온 것으로 봅니다만 그가 금와의 친아들이 아닐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부인의 아버지 때문입니다.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주몽은 금와왕이 이미 자식있는 여자와 혼인하여 자연스럽게 양자가 된 아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혼인한 여자와 결혼한 것은 금와 외에도 주몽왕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권력의 유지에 신부측의 세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몽왕의 외할아버지인 하백이 선박동원능력을 가진 강변의 대세력가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신빙성이 있습니다.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후 소서노와 결혼하여 비류와 온조의 두 아들을 두었는데 비류는 이전 남편인 우태 소생이고 온조는 주몽왕 소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비류가 건국한 삼한백제는 비류의 아버지인 우태 혹은 비류를 제사지내고, 온조가 건국한 한성백제는 온조의 아버지인 동명을 제사지냅니다. 하지만 5세기 비유왕 이후 삼한백제 출신인 부여씨가 한성백제의 정권을 잡자 한성백제에서 동명조 제사가 사라지고 삼한백제의 구태조로 통합되어 제사지내게 된 것이지요.
백제의 건국은 고구려 동명왕(주몽)의 사당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다음 약 1년 동안의 연속적인 사건 속에 주몽왕이 세상을 떠납니다.
BC 19; 4월, 유리왕자의 고구려 도착
BC 19, 10월, 주몽왕이 만 40세에 죽음
BC 18, 5월, 백제 건국
백제는 건국이 고구려 동명왕의 사당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정작 동명왕을 이은 고구려의 유리왕은 동명왕의 사당을 세우지 않으며, 참배 역시 신대왕 때 처음입니다. 따라서 다음처럼 추정합니다.
주몽왕은 건국에 공이 큰 소서노의 아들들인 비류나 온조를 후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북부여에서 함께 남하한 오이, 마리, 협보 등 여러 세력가들이 이에 반대하였습니다. 그리고 북부여에서 유리왕자를 데려다 후계로 옹립하려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구려에 대란이 벌어졌고 그 와중에 주몽왕이 돌아가십니다.
대란의 결과 북부여 출신들이 승리하여 유리왕자가 후계자가 되고, 패배한 비류와 온조 세력은 어머니인 소서노와 함께 백성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떠났습니다. 유리왕이 말갈군을 이용하여 고구려를 떠난 비류와 온조세력들을 바다에 쓸어넣으려고 하자, 이들이 배를 타고 대거 한반도로 탈출하여 동아시아에 백제라는 해상국가가 탄생하였습니다.
핵심은 동명이란 시조를 뜻하는 용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국가는 시조왕, 즉 동명왕이 있습니다.
>북부여왕 '해부루'는 동명왕에게 쫓겨 가섭원으로 나라를 옮겨 동부여를 건국합니다.
>북부여 출신 '추모'는 고구려를 건국하고 동부여를 멸망시킵니다.
>그러면 동명왕은 누구입니까?
>추모인가요? 해모수인가요? 아니면 탁리국 출신의 '누구'인가요?
>'추모'는 절대 불가능하겠죠? 만약 추모가 동명왕이라면 북부여는 고구려고 해부루는 태어나지도 않은 '추모'를 피해 가섭원으로 도망친 셈이죠.(물론 삼국유사는 이런 말도 않되는 소리를 정설로 적어놓았습니다.)
>그러면 해모수인가요? 아니면 '누구'인가요?
>그리고 해부루의 조상(원 북부여의 시조)은 누구인가요? 해모수? 혹은 '제 삼의 누구'?
>제가 알고싶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1. (해부루의 조상인) 북부여의 시조는?
>2. 해부루를 몰아내고 북부여를 차지한 사람은?
>3. '추모'는 누구의 아들인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우선 동명이란 (새벽에) 동쪽에 볓이 든다는 말로서 새나라의 건국을 의미합니다. 백제의 동명왕은 비류와 온조이며 신라의 동명왕은 혁거세입니다. 태조나 성종의 아들이 누구냐고 물으면 답변하기가 어렵습니다. 고려에도 태조와 성종이 있고 조선에도 태조와 성종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여의 시조는 부여의 동명왕이며 고구려의 시조는 고구려의 동명왕입니다. 그런데 고구려의 동명왕은 추모 혹은 주몽으로서, 고려의 동명왕 왕건이나 조선의 동명왕 이성계처럼 이름을 알 수 있으나, 부여의 동명왕은 정확히 이름을 모릅니다. 그저 해씨일 것이라는 정도의 추정이지요.
고구려 동명왕인 주몽이 동부여 출신(삼국사기)이냐 북부여 출신(광개토왕비문)이냐는 광개토왕비문을 따라 북부여 출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북이나 동은 상대적인 방위 개념으로서, 북도 서쪽에서 보면 동이고, 동도 남쪽에서 보면 북입니다. 북부여인들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동부여라 칭했다 하더라도, 이들이 본래 북부여인들이었으므로 그냥 북부여라고 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더구나 고구려는 북부여가 동쪽으로 이동한 다음에는 사이가 안 좋지요.
고구려본기는 고구려 동명왕의 아버지를 금와가 아닌 그 윗대의 해부루-해모수에게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부여의 금와왕이나 대소왕과의 관계를 피하고자 하는데서 온 것으로 봅니다만 그가 금와의 친아들이 아닐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부인의 아버지 때문입니다.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주몽은 금와왕이 이미 자식있는 여자와 혼인하여 자연스럽게 양자가 된 아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혼인한 여자와 결혼한 것은 금와 외에도 주몽왕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권력의 유지에 신부측의 세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몽왕의 외할아버지인 하백이 선박동원능력을 가진 강변의 대세력가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신빙성이 있습니다.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후 소서노와 결혼하여 비류와 온조의 두 아들을 두었는데 비류는 이전 남편인 우태 소생이고 온조는 주몽왕 소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비류가 건국한 삼한백제는 비류의 아버지인 우태 혹은 비류를 제사지내고, 온조가 건국한 한성백제는 온조의 아버지인 동명을 제사지냅니다. 하지만 5세기 비유왕 이후 삼한백제 출신인 부여씨가 한성백제의 정권을 잡자 한성백제에서 동명조 제사가 사라지고 삼한백제의 구태조로 통합되어 제사지내게 된 것이지요.
백제의 건국은 고구려 동명왕(주몽)의 사당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다음 약 1년 동안의 연속적인 사건 속에 주몽왕이 세상을 떠납니다.
BC 19; 4월, 유리왕자의 고구려 도착
BC 19, 10월, 주몽왕이 만 40세에 죽음
BC 18, 5월, 백제 건국
백제는 건국이 고구려 동명왕의 사당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정작 동명왕을 이은 고구려의 유리왕은 동명왕의 사당을 세우지 않으며, 참배 역시 신대왕 때 처음입니다. 따라서 다음처럼 추정합니다.
주몽왕은 건국에 공이 큰 소서노의 아들들인 비류나 온조를 후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북부여에서 함께 남하한 오이, 마리, 협보 등 여러 세력가들이 이에 반대하였습니다. 그리고 북부여에서 유리왕자를 데려다 후계로 옹립하려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구려에 대란이 벌어졌고 그 와중에 주몽왕이 돌아가십니다.
대란의 결과 북부여 출신들이 승리하여 유리왕자가 후계자가 되고, 패배한 비류와 온조 세력은 어머니인 소서노와 함께 백성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떠났습니다. 유리왕이 말갈군을 이용하여 고구려를 떠난 비류와 온조세력들을 바다에 쓸어넣으려고 하자, 이들이 배를 타고 대거 한반도로 탈출하여 동아시아에 백제라는 해상국가가 탄생하였습니다.
핵심은 동명이란 시조를 뜻하는 용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국가는 시조왕, 즉 동명왕이 있습니다.
>북부여왕 '해부루'는 동명왕에게 쫓겨 가섭원으로 나라를 옮겨 동부여를 건국합니다.
>북부여 출신 '추모'는 고구려를 건국하고 동부여를 멸망시킵니다.
>그러면 동명왕은 누구입니까?
>추모인가요? 해모수인가요? 아니면 탁리국 출신의 '누구'인가요?
>'추모'는 절대 불가능하겠죠? 만약 추모가 동명왕이라면 북부여는 고구려고 해부루는 태어나지도 않은 '추모'를 피해 가섭원으로 도망친 셈이죠.(물론 삼국유사는 이런 말도 않되는 소리를 정설로 적어놓았습니다.)
>그러면 해모수인가요? 아니면 '누구'인가요?
>그리고 해부루의 조상(원 북부여의 시조)은 누구인가요? 해모수? 혹은 '제 삼의 누구'?
>제가 알고싶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1. (해부루의 조상인) 북부여의 시조는?
>2. 해부루를 몰아내고 북부여를 차지한 사람은?
>3. '추모'는 누구의 아들인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