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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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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
2007.02
여몽 연합군의 1차 일본 원정 이후, 고려에 복수하려고 했던 일본...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9081 2007.02.03 23:09:01 (*.50.139.177) 기타0 Comments 796 Views 57 Voted / 0 Devoted
1274년 10월 20일, 여몽 연합군의 제 1차 일본 원정이 감행되었던 이후, 간신히 태풍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긴 했지만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가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여태껏 외국의 대대적인 침략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던 일본은 여몽 연합군의 침공으로 일본도 언제든지 외국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가마쿠라 막부는 여몽 연합군의 출정 기지가 되고 일본에서 가까웠던 고려에 대한 반격전을 감행하려는 이른바 이국출격계획(異國出擊計劃)을 세웠습니다.
가마쿠라 막부는 1차 여몽 연합군의 침입이 있은 지 2년 후인 1276년 3월경에 고려 공격을 위해 선박과 뱃사공, 노꾼에 대한 징용제도의 정비를 명령하고, 그 비용의 부과·징수를 봉서행정(鎭西奉行)의 관직을 지내고 있던 쇼니 츠네쓰케(少貳經資)에게 지령했습니다.
고려로 출정하는 원정군의 본영은 하카타에 설치되었고, 총사령관에는 쇼니 츠네쓰케가 임명되었습니다. 출격에 필요한 선박과 무사들은 규슈 영내에서 조달하지만, 부족분은 주고쿠와 시고쿠에서 보충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 실시 계획에 따라 가마쿠라 막부는 같은 해 12월8일, 안예국(安藝國)의 수호(守護) 다케다 노부토키에게 『안예국의 해변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 자는 지두(地頭)와 어가인(御家人)을 불문하고 뱃사공과 노꾼을 소집하여 두고 츠네쓰케로부터 연락을 받으면 즉시 이들을 하카타에 보내도록 하라」고 지령했습니다.
이에 따라 어가인(御家人: 고케닌)들도 영지의 현상을 보고하고 가마쿠라 막부의 동원령에 대비하고 있었지만, 이 이국출격계획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중지되었던 것일까요? 당시 일본의 실력으로는 전혀 무모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국인 고려의 내부 사정이 일본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1271년, 고려의 삼별초가 보내온 서신조차 그 핵심내용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해 삼별초의 협력 및 구원 요청에도 가마쿠라 막부는 전혀 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국제정세에 어두웠다는 얘기이죠.
그렇다고 해도 만약에 이국출격계획이 실행에 옮겨졌더라면 그 결과는 참담한 패전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가마쿠라 막부하의 일본이 고려를 공격하려면 우선 병력과 군수물자를 수송할 대선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13세기 말, 당시 일본의 선박 제조 수준은 아직도 준구조선(準構造船)을 건조하는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준구조선으로도 치고 빠지는 왜구 수준의 약탈은 가능하겠지만, 해전은 물론 병참선 유지가 불가능했습니다. 설사 육상부대를 고려에 상륙시켰더라도 그것의 전멸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로부터 300여 년 후의 임진왜란에서도 입증된 사실입니다. 일본 해군은 수적으로 훨씬 많은 함대를 보유했으나 이순신 함대에 모두 참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조선의 주력함인 판옥선이 일본의 주력선인 안택선(安宅船: 아다케)를 압도했기 때문입니다.
가마쿠라 시대의 일본은 농업을 주체로 한 농본국가이고 농업 이외의 상업·금융·운수 등의 산업 및 해민은 철저히 탄압되고 소외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일본에 군선은 거의 없었고, 해민은 해적으로 단속되는 형편이었습니다.
일본 함선의 왜소성은 여몽 연합군의 일본 침입을 다룬 화첩인 몽고습래회사(蒙古襲來繪詞)를 보아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하카타 만에서 연합군의 함대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일본 측 배는 농사용 배를 방패로 가린 것인데, 적함에서 날아오는 화살이나 투석같은 공격에 노잡이 등 선원에 대해서는 전혀 무방비 상태입니다. 그것은 고려에서 제작한 연합군 측의 대형 함선과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결국, 이국출격계획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함을 가마쿠라 막부가 스스로 깨달아 중지되었던 것입니다.
월간조선 2004년 3월호의 내용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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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가 요즘 우산국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있는데,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고 보람도 있더군요. 지금 전체의 약 3분의 1정도를 썼는데, 올해 중반에 완결을 지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마쿠라 막부는 여몽 연합군의 출정 기지가 되고 일본에서 가까웠던 고려에 대한 반격전을 감행하려는 이른바 이국출격계획(異國出擊計劃)을 세웠습니다.
가마쿠라 막부는 1차 여몽 연합군의 침입이 있은 지 2년 후인 1276년 3월경에 고려 공격을 위해 선박과 뱃사공, 노꾼에 대한 징용제도의 정비를 명령하고, 그 비용의 부과·징수를 봉서행정(鎭西奉行)의 관직을 지내고 있던 쇼니 츠네쓰케(少貳經資)에게 지령했습니다.
고려로 출정하는 원정군의 본영은 하카타에 설치되었고, 총사령관에는 쇼니 츠네쓰케가 임명되었습니다. 출격에 필요한 선박과 무사들은 규슈 영내에서 조달하지만, 부족분은 주고쿠와 시고쿠에서 보충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 실시 계획에 따라 가마쿠라 막부는 같은 해 12월8일, 안예국(安藝國)의 수호(守護) 다케다 노부토키에게 『안예국의 해변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 자는 지두(地頭)와 어가인(御家人)을 불문하고 뱃사공과 노꾼을 소집하여 두고 츠네쓰케로부터 연락을 받으면 즉시 이들을 하카타에 보내도록 하라」고 지령했습니다.
이에 따라 어가인(御家人: 고케닌)들도 영지의 현상을 보고하고 가마쿠라 막부의 동원령에 대비하고 있었지만, 이 이국출격계획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중지되었던 것일까요? 당시 일본의 실력으로는 전혀 무모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국인 고려의 내부 사정이 일본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1271년, 고려의 삼별초가 보내온 서신조차 그 핵심내용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해 삼별초의 협력 및 구원 요청에도 가마쿠라 막부는 전혀 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국제정세에 어두웠다는 얘기이죠.
그렇다고 해도 만약에 이국출격계획이 실행에 옮겨졌더라면 그 결과는 참담한 패전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가마쿠라 막부하의 일본이 고려를 공격하려면 우선 병력과 군수물자를 수송할 대선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13세기 말, 당시 일본의 선박 제조 수준은 아직도 준구조선(準構造船)을 건조하는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준구조선으로도 치고 빠지는 왜구 수준의 약탈은 가능하겠지만, 해전은 물론 병참선 유지가 불가능했습니다. 설사 육상부대를 고려에 상륙시켰더라도 그것의 전멸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로부터 300여 년 후의 임진왜란에서도 입증된 사실입니다. 일본 해군은 수적으로 훨씬 많은 함대를 보유했으나 이순신 함대에 모두 참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조선의 주력함인 판옥선이 일본의 주력선인 안택선(安宅船: 아다케)를 압도했기 때문입니다.
가마쿠라 시대의 일본은 농업을 주체로 한 농본국가이고 농업 이외의 상업·금융·운수 등의 산업 및 해민은 철저히 탄압되고 소외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일본에 군선은 거의 없었고, 해민은 해적으로 단속되는 형편이었습니다.
일본 함선의 왜소성은 여몽 연합군의 일본 침입을 다룬 화첩인 몽고습래회사(蒙古襲來繪詞)를 보아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하카타 만에서 연합군의 함대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일본 측 배는 농사용 배를 방패로 가린 것인데, 적함에서 날아오는 화살이나 투석같은 공격에 노잡이 등 선원에 대해서는 전혀 무방비 상태입니다. 그것은 고려에서 제작한 연합군 측의 대형 함선과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결국, 이국출격계획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함을 가마쿠라 막부가 스스로 깨달아 중지되었던 것입니다.
월간조선 2004년 3월호의 내용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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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가 요즘 우산국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있는데,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고 보람도 있더군요. 지금 전체의 약 3분의 1정도를 썼는데, 올해 중반에 완결을 지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