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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941
05
2007.01
2007.01
부여 출토 정해년 사리함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9073 2007.01.05 09:23:54 (*.80.117.35) 백제사0 Comments 896 Views 64 Voted / 0 Devoted
금년이 정해년인데 정해년이라면 1995년에 부여에서 불굴된 창왕(위덕왕)명문 사리함이 생각난다. 사리감의 양쪽면에는 '百濟<昌王>十三秊太歲在 <丁亥>妹○公主供養舍利'라는 각각 10자씩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 丁亥年은 지금부터 (60년x24=)1440년 전인 서기 (2007년-1440년=)567년이다.
이 사리함을 보면 6세기 중반에 백제는 567년을 창왕 13년이라고 세고 있는데 비하여 삼국사기는 567년을 창왕 14년이라고 하여 1년의 차이가 난다. 그 이유에 대하여 여러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나는 광개토왕비문과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차이나 마찬가지로 월년제와 당년제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노무현대통령은 2002년에 당선되었으나 노무현 1년이라면 2003년을 말한다. 대통령은 당선되는 순간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취임식을 가진 다음해부터 1년으로 세는 것이다. 따라서 554년에 성왕이 죽고 왕자 여창이 왕이 되었으나 당시에는 다음해인 555년을 창왕 1년으로 셈하였다는 뜻이다. 반면에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이 부분에 당년제를 적용하여 여창이 왕이 된 554년부터를 1년으로 기록한 것이다.
참고로 일본서기는 성왕이 비극적으로 죽은 후 창왕은 불교에 귀의하였으며, 3년상이 끝나는 557년부터 왕이 되었다고 하고 있다.
*아래는 불교지 1995-11-01 호에 실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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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창왕 명문(銘文)사리감(舍利龕) 발견
백제(百濟) 사찰터로 추정돼온 부여 능산리유적 목탑터에서 백제창왕(昌王;555~598)의 이름이 새겨진 명문(銘文)이 담긴 사리감(舍利龕:사리를 모시는 감실)이 발견됐다. 이 명문(銘文)에는 사리(舍利)를 봉안한 시대(時代), 공양자(供養者), 사찰(寺刹)의 건축(建築)연대(年代)가 확실하게 밝혀져 있어 백제(百濟)불교사(佛敎史)는 물론 불교미술사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더욱이 이번에 발견된 사리감(舍利龕)은 화강석제로 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알려진 사리장치이며, 불과 20m 떨어진 곳에서 금동용봉봉래산향로가 발견된 바 있어, 능산리 사찰터가 백제사 및 불교사 연구의 보고로 떠오르게 됐다.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정양모관장은 지난 92년부터 연차적으로 발굴작업을 해온 부여 능산리 백제사찰터 목탑지에서 20글자의 명문이 새겨진 화강석제사리감(높이 74㎝, 가로·세로 각각 50㎝)과 소조불·금동 및 은제고리·유리구슬·금동방울 등 6백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고 발표했다. 특히 목탑터의 땅밑 114㎝ 아래에 묻힌 초석 상단에서 발견된 사리감의 양쪽면에는 '百濟昌王十三秊太歲在 丁亥妹○公主供養舍利'라는 각각 10자씩의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 명문(銘文)은 "백제창왕 13년에 창왕의 누이가 공양한 사리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정관장은 설명했다.(○자는 현재 해독불가)
정관장은 이번 출토(出土) 유물들의 제작연대가 6세기 중엽쯤으로 밝혀짐에 따라 그동안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던 유물들의 연대추정이 가능해져 능산리유적은 백제(百濟)미술사연구의 기준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사찰터 초석주변에서 사리감의 조성연대와 비슷한 소조불·금동제고리·금동방울·유리구슬·금실·토제인동꽃무늬장식 등 5백95점의 불교공예품과 장신구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온 것도 이번 발굴의 커다란 성과로 꼽힌다.
정관장은 또 93년 말에 이 절터에서 출토돼 고고학 발굴사상 최고의 공예품으로 손꼽혀온 금동용봉봉래산향로도 왕실 기원사찰의 불교의식(佛敎儀式)과 관련 깊은 유물임이 명확해졌다고 덧붙였다. 동국대(東國大)문명대교수(불교미술문화재연구소장)는 "이번 발굴로 백제불교사와 불교미술사연구가 커다란 전기(前期)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사리함을 보면 6세기 중반에 백제는 567년을 창왕 13년이라고 세고 있는데 비하여 삼국사기는 567년을 창왕 14년이라고 하여 1년의 차이가 난다. 그 이유에 대하여 여러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나는 광개토왕비문과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차이나 마찬가지로 월년제와 당년제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노무현대통령은 2002년에 당선되었으나 노무현 1년이라면 2003년을 말한다. 대통령은 당선되는 순간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취임식을 가진 다음해부터 1년으로 세는 것이다. 따라서 554년에 성왕이 죽고 왕자 여창이 왕이 되었으나 당시에는 다음해인 555년을 창왕 1년으로 셈하였다는 뜻이다. 반면에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이 부분에 당년제를 적용하여 여창이 왕이 된 554년부터를 1년으로 기록한 것이다.
참고로 일본서기는 성왕이 비극적으로 죽은 후 창왕은 불교에 귀의하였으며, 3년상이 끝나는 557년부터 왕이 되었다고 하고 있다.
*아래는 불교지 1995-11-01 호에 실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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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창왕 명문(銘文)사리감(舍利龕) 발견
백제(百濟) 사찰터로 추정돼온 부여 능산리유적 목탑터에서 백제창왕(昌王;555~598)의 이름이 새겨진 명문(銘文)이 담긴 사리감(舍利龕:사리를 모시는 감실)이 발견됐다. 이 명문(銘文)에는 사리(舍利)를 봉안한 시대(時代), 공양자(供養者), 사찰(寺刹)의 건축(建築)연대(年代)가 확실하게 밝혀져 있어 백제(百濟)불교사(佛敎史)는 물론 불교미술사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더욱이 이번에 발견된 사리감(舍利龕)은 화강석제로 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알려진 사리장치이며, 불과 20m 떨어진 곳에서 금동용봉봉래산향로가 발견된 바 있어, 능산리 사찰터가 백제사 및 불교사 연구의 보고로 떠오르게 됐다.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정양모관장은 지난 92년부터 연차적으로 발굴작업을 해온 부여 능산리 백제사찰터 목탑지에서 20글자의 명문이 새겨진 화강석제사리감(높이 74㎝, 가로·세로 각각 50㎝)과 소조불·금동 및 은제고리·유리구슬·금동방울 등 6백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고 발표했다. 특히 목탑터의 땅밑 114㎝ 아래에 묻힌 초석 상단에서 발견된 사리감의 양쪽면에는 '百濟昌王十三秊太歲在 丁亥妹○公主供養舍利'라는 각각 10자씩의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 명문(銘文)은 "백제창왕 13년에 창왕의 누이가 공양한 사리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정관장은 설명했다.(○자는 현재 해독불가)
정관장은 이번 출토(出土) 유물들의 제작연대가 6세기 중엽쯤으로 밝혀짐에 따라 그동안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던 유물들의 연대추정이 가능해져 능산리유적은 백제(百濟)미술사연구의 기준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사찰터 초석주변에서 사리감의 조성연대와 비슷한 소조불·금동제고리·금동방울·유리구슬·금실·토제인동꽃무늬장식 등 5백95점의 불교공예품과 장신구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온 것도 이번 발굴의 커다란 성과로 꼽힌다.
정관장은 또 93년 말에 이 절터에서 출토돼 고고학 발굴사상 최고의 공예품으로 손꼽혀온 금동용봉봉래산향로도 왕실 기원사찰의 불교의식(佛敎儀式)과 관련 깊은 유물임이 명확해졌다고 덧붙였다. 동국대(東國大)문명대교수(불교미술문화재연구소장)는 "이번 발굴로 백제불교사와 불교미술사연구가 커다란 전기(前期)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