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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고대사를 읽고 궁금한 점(독자 질문)

Q&A 조회 수 2129 추천 수 0 2009.09.04 17:13:16
방카이 *.196.54.78

안녕하세요

네티즌 고대사와 삼한사의 재조명1 읽고 궁금한 점이 있어 문의 드립니다.

(
일종의 독자 질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저는 상기 2권의 책을 읽고, 한성백제와 삼한백제 그리고 왜 와의 관계를 아래와 같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

(1)
한성백제는 韓이라고 불리 우는,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던 국가의 담로국이었다


(2)
韓은 과거 고구려로부터 남하한 비류가 당시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던 최대세력이었던 마한을 물리치고 건국한 나라다...

(3)
韓은 백제, 한예 또는 왜(신라본기의 왜가 아닌, 백제본기 또는 광개토대왕 비문 왜)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

(4)
고구려 고국원왕은 요서지역에서 삼한백제와의 갈등 또는 배신감(섭섭함?) 때문에 한반도 남부 한성백제 본토를 공격하다가 당시 삼한백제 연합군을 이끌던 한성백제 근초고왕 및 그 아들 근구수의 군대에 대패하고 본인마저도 목숨을 잃었다
.

(5)
韓의 중심지는 지금의 충청도 금강 유역이었다


(6)
일본 천황 중 숭신에서 신공황후까지는 큐슈에 있던 야마토국의 왕이며, 응신이후부터가 본토 왜의 왕이다.
  -
본토는 응신이 최초 개척했으며 그 이전까지 본토는 한반도에서 선이주한 사람들과 일본 본토 원주민 등이 형성한 소규모 세력들이 난립되어 있었다
.


여기서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상기 기재된 저의 이해 내용이 일도안사님이 책을 통해 알리고자 하는 내용과 같은 것인가요? , 제가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2) 광개토대왕의 잔국 토벌시, 한성백제 땅을 일부(18개 성) 점령한 뒤, 갑자기 한강유역을 건너뛰어 금강유역으로 쳐들어가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 어차피 한성백제도 韓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한성백제 먼저 치고 순차적으로 금강유역까지 정벌하는 게 군사적으로 더 합리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아울러 한성백제는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근초고왕의 나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정벌할 명분이 더 큰 것 같습니다.

 


(3)
광개토대왕 비문 중,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 來渡海, 破百殘☐☐☐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利殘國에 대한 해석을 부탁드립니다.


-
상기 문구의 해석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지만, 왜가 바다를 건너왔다는 부분만큼은 공통된 의견인 것 같은데요 그럼 여기서 바다를 건너온 왜는 어떤 존재인가요? 신묘년이면 응신2년인데요 일도안사님 책에 의하면 그때 당시 응신은 삼한백제의 왕으로서 한반도에 거주 중이었고 왜국이 건국된 것은 397년이기 때문에 신묘년 기사에 나온 왜는 응신의 왜는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당시 큐슈지역은 어떤 정권이 다스리고 있었나요?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하여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부족한 부분을 본 페이지를 통해 질문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5'

一道安士

2009.09.08 23:18:02
*.232.248.181

 

(1) 한성백제는 韓이라고 불리 우는,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던 국가의 담로국이었다.


一道安士: 4세기말 광개토왕 전쟁 이전까지 그랬습니다.


(2) 韓은 과거 고구려로부터 남하한 비류가 당시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던 최대세력이었던 마한을 물리치고 건국한 나라다.


一道安士: 온조와 비류가 함께 마한을 멸망시켰습니다.


(3) 韓은 백제, 한예 또는 왜(신라본기의 왜가 아닌, 백제본기 또는 광개토대왕 비문 왜)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一道安士: 백제-스스로의 호칭, 한예-중국사서의 호칭, 왜-왜가 된 후 5세기 고구려인의 호칭.


(4) 고구려 고국원왕은 요서지역에서 삼한백제와의 갈등 또는 배신감(섭섭함?) 때문에 한반도 남부 한성백제 본토를 공격하다가 당시 삼한백제 연합군을 이끌던 한성백제 근초고왕 및 그 아들 근구수의 군대에 대패하고 본인마저도 목숨을 잃었다.


一道安士: 아닙니다. 여기가 앞으로 나올 <삼한사의 재조명2: 진왕제 연구>에서 설명할 내용입니다.  아래의 제목을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고국원왕의 백제 공격 이유 1. 문제 一道安士
http://www.histopia.net/zbxe/859782009.01.02 00:13:08 (*.68.174.111) 25680고구려사 

새해를 신선한 문제로 신선하게 시작하는 것이 역사학도의 길이지요. 고구려사에서 잘 아는 것으로 하나 골랐습니다. 고국원왕조입니다.


 *고국원왕 25년: 12월, 사신을 연나라에 보내 포로로 잡혀갔던 왕모 주씨를 귀국시킴. 연왕이 왕을 정동대장군 영주자사 낙랑공왕으로 봉함.

*고국원왕 39년: 9월, 왕은 군사 2만명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백제를 쳐 치양에서 싸웠으나 패하였다.

*고국원왕 40년: 진의 왕맹이 연을 쳐부수자 연의 태부 모용평이 도망해왔다. 왕은 그를 잡아 진으로 보냈다.

*고국원왕 41년: 10월, 왕이 백제와 전투하다 전사함.

[문제] 고구려가 고국원왕 39년에 백제를 공격하기 시작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고국원왕 38년도 아니고 40년도 아니고 39년에 백제를 공격하기 시작하였습니까? 치양은 황해도로 추정되는데 황해도가 언제부터 백제 영토가 되었습니까?


(5) 韓의 중심지는 지금의 충청도 금강 유역이었다.


一道安士: 그렇습니다. 아산만 인주 밀두리에서 건국하여 웅진 거발성에서 망했습니다.


(6) 일본 천황 중 숭신에서 신공황후까지는 큐슈에 있던 야마토국의 왕이며, 응신이후부터가 본토 왜의 왕이다.

  - 본토는 응신이 최초 개척했으며 그 이전까지 본토는 한반도에서 선이주한 사람들과 일본 본토 원주민 등이 형성한 소규모 세력들이 난립되어 있었다.


一道安士: 응신이 도착해보니 지방세력이 난립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상기 기재된 저의 이해 내용이 일도안사님이 책을 통해 알리고자 하는 내용과 같은 것인가요? 즉, 제가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一道安士: 가장 중요한 진왕제만 빼고는 맞습니다. 고국원왕의 백제 공격이유와 광개토왕의 백제 공격이유가 틀렷습니다. 사실은 제가 과거에 틀린 것이지요.


(2) 광개토대왕의 잔국 토벌시, 한성백제 땅을 일부(18개 성) 점령한 뒤, 갑자기 한강유역을 건너뛰어 금강유역으로 쳐들어가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 어차피 한성백제도 韓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한성백제 먼저 치고 순차적으로 금강유역까지 정벌하는 게 군사적으로 더 합리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아울러 한성백제는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근초고왕의 나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정벌할 명분이 더 큰 것 같습니다.


一道安士: 처음에는 전방인 한강유역부터 공격하여 금강유역까지 남하할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군력으로 아예 목적지인 배후를 친 것이지요. 광개토왕이 공격한 이유는 응신의 자립위왕 때문이었습니다. 응신이 자립위왕 하자 주변소국이 모두 그의 신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나올 책에서 설명합니다. '삼한사의 재조명'까지는 이것에 관한 설명이 없습니다.


(3) 광개토대왕 비문 중,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 來渡海, 破百殘☐☐☐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利殘國에 대한 해석을 부탁드립니다.



- 상기 문구의 해석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지만, 왜가 바다를 건너왔다는 부분만큼은 공통된 의견인 것 같은데요 그럼 여기서 바다를 건너온 왜는 어떤 존재인가요? 신묘년이면 응신2년인데요 일도안사님 책에 의하면 그때 당시 응신은 삼한백제의 왕으로서 한반도에 거주 중이었고 왜국이 건국된 것은 397년이기 때문에 신묘년 기사에 나온 왜는 응신의 왜는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당시 큐슈지역은 어떤 정권이 다스리고 있었나요?


一道安士: 말씀하신 부분은 광개토왕비문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이 부분이 <삼한사의 재조명2: 진왕제 연구>에 새로 나옵니다. 고국원왕이 백제를 공격한 이유와 광개토왕이 백제를 공격한 이유가 동일합니다. 391년 신묘년에 진왕 응신이 자립위왕에 성공함으로써 그 이전까지 고구려와 친하게 지내던 나라들이 일제히 응신의 신민이 된 것입니다. 응신의 나라는 해양국입니다. 391년에 응신의 자립위왕을 알리는 사자가 해로로 백제권 전역에 달려갔을 것입니다. 응신천황의 자립위왕을 검색하여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삼국사기 바꿔읽기 一道安士

http://www.histopia.net/zbxe/87522006.02.03 23:36:30 (*.231.163.178) 1668269 / 0 0기타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우리는 어떤 역사책을 읽을 때 한국인이라는 선입견 아닌 선입견 위에 발을 붙이고 있다. 일본인도 중국인도, 서양인도 동양인도 실은 다 마찬가지이다.


4세기 후반~5세기 초의 삼국사기를 읽는데 국명을 다음처럼 바꾸어서 읽어보자. 그리고 느낌이 어떤지 알아보자.

삼국사기의 백제 -> 말갈

삼국사기의 신라 -> 선비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왜 -> 백제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왜 -> 가야


우선 워밍업으로 광개토왕비문의 가장 난해하다는 영락 6년조 전쟁명분 구절을 읽자. 참고로 광개토왕비문의 왜는 백제본기의 왜이고, 백잔은 삼국사기의 백제이다. 임나가야는 가야의 일파이므로 그대로 두겠다.


1. “말갈 선비 구시속민 유래조공”

2. “而 백제 신묘년 래도해 파 말갈 임나 선비 이위신민”

3. “以 (영락) 6년 왕솔수군 토벌백제”


자, 느낌이 어떤가? 비문에 논리가 이상한 곳이 있는가? 1->2->3으로 아주 자연스럽지 않은가?


만일 만주벌판에서 5세기 초에 고구려가 세운 비문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1.번 구절이 써 있다면 너무도 당연하다고 하여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2.번을 보면 고구려는 임나가 백제의 영향권인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말갈과 선비가 백제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그래서 3.번처럼 백제를 토벌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바꾸어 읽는가? 그것은 이것이 당시(4말5초)의 실체였기 때문이다.


라디오

2009.09.09 06:23:15
*.142.218.57

391년 신묘년에 왜는 가라를 통해서, 백제로 들어 오죠.
백제는 고구려를 방어하기 위해, 왜를 끌여 들었지만, 그 결과 왜의 내정간섭을 받습니다.
이 때 왜왕은 '인덕천황' 입니다.
고구려사초 영락대제기로 확인할 수 있죠.

일본서기에선 신공황후를 강조하느라, 인덕천황은 약하게 기술이 되어 있죠.
사실과 다릅니다.
인덕천황은 강력한 군대를 가졌으며, 동아시아에서 맹위를 떨친 광개토왕에게 대적한 인물입니다.

광개토왕 vs 인덕천황 의 구도입니다.

광개토왕은 내물왕의 부탁을 받고 신라땅에 들어 온 왜를 물리치면서, 가야땅의 왜도 몰아 낼려고 했으나..
그다지 성공했다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안라인수병이 용맹한데다가.. 강력한 반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왜는 일찍이 가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일정한 세력을 이미 구축해 놓았던 것이죠.
고구려의 입장에서 안라인수병은 고구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광개토왕비문에 3번이나 반복적으로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광개토왕이 1년만 더 연장하여 남방정벌을 단행했다면..왜를 완전히 일소할 수 있었으나..
광개토왕은 그러지 못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구려 서쪽의 공손씨 세력이 강하여, 그들을 막아 내야 했기에, 남방전쟁을 오래 끌 수가 없었습니다.
고구려군이 가야에서 철수를 하자,
왜는 군사력을 보강하여, 몇년 후, 이번에는 대방을 때립니다.
대방을 통해, 평양성 진출을 시도합니다.
평양성근처에서 양측이 치열한 전투를 벌여 양측 사상자가 엄청나게 많이 발생합니다.
곧 휴전을 맺으면서 치열한 전투가 마감되지요.

초보자분들은 사서를 보지 않으니, 이런 역학 구도에 대해 무지하지요.
더구나 어디 가서 이런 얘기는 들어 보지도 못 할테지요. 그래서 저는 속으로 웃습니다. ㅎㅎㅎ

방카이

2009.09.10 14:32:35
*.196.54.160

일도안사님과 조약돌님...답변 감사드립니다.

이와 관련 일도안사님과 조약돌님께 추가적인 질문이 있어서 문의 드립니다.

(1) 일도안사님께..
광개토대왕 비문 신묘년 기사에 대한 답변에 대해서...
답변주신 것을 보면, 백제는 응신이전에도 현재의 일본열도에 진출해 있었다고 이해하게 되는데요...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요?

(2) 조약돌님께...
조약돌님이 써주신 답변이 일도안사님 답변에 대한 부연 설명 성격인 것인지, 아니면 일도안사님과 다른 의견을 주신 것인지 혼란스러워서 질문 올립니다. 만약 다른 관점의 답변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공부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인 것 같구요, 같은 관점하의 부연설명을 하신 거라면 제가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하여 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설명을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1. 윗글에 보면 광개토왕 vs 인덕천황의 구도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인덕이 맞나요?
일도안사님께서 정리하신 일본서기 연표를 보면, 광개토대왕 시절의 왜는 응신이 다스리던 시절이 아닌가 합니다.

2. 백제가 고구려를 방어하기 위해서 왜를 끌어들이셨다고 하셨는데요, 삼한사의 재조명을 읽고 제가 이해한 바는...
고구려는 처음부터 백제를 치려는게 아니고, 왜(삼한백제)를 치려고 했던 것 같거든요..즉, 한성백제는 애시당초 고구려의 주공격 목표가 아니었다는 것이죠...그래서 제가 본문에 일도안사님께 드린 질문은 비록 주된 공격목표는 아닐지라도, 한성백제는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나라이기 때문에 보복의 성격으로라도 공격을 할 명분이 충분히 있었을 텐데 왜 한성백제를 건너 뛰고 수군을 이용해 삼한백제를 공격했느냐이죠...

3. 왜의 내정 간섭은 아마도 진사왕을 퇴출하고 아신왕을 즉위시킨 내용을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해 저는 군사 원조의 댓가에 의한 내정 간섭이라기 보다는 진왕국과 후왕국간의 위계서열에 의한 간섭이라고 이해하고 있거든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감사합니다..

一道案士

2009.09.13 10:54:15
*.147.81.17

방카이님께:

[방카이님 질문] 광개토대왕 비문 신묘년 기사에 대한 답변에 대해서...
답변주신 것을 보면, 백제는 응신이전에도 현재의 일본열도에 진출해 있었다고 이해하게 되는데요...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요?

[一道案士 답변] 백제가 3세기초 칠지도를 보낼 무렵에는 왜국에 진출해있었던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4세기에 백제와의 관계가 단절되어 396년 9월에 백제 진왕 응신이 구주에 상륙할 때 다시 왜국에 백제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의 라디오라는 이름으로 답글을 쓰신 분은 조약돌님이 아닙니다.

방카이

2009.09.21 12:54:14
*.105.0.253

아.....라디오님과 조약돌님을 착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혹시 상기 댓글 내용을 라디오님이 보신다면 질문에 대한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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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사 북한의 삼한사 인식

  • 2009-08-07
  • 조회 수 2027

4세기 이전의 한반도를 기록한 대표적인 문헌은 삼국사기인데 한강 중류 일부와 낙동강 상류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기록의 공백지대라서 이에 대한 시각이 남북한 학계 사이에도 다르다. 과거 남한학계의 전통적인 시각은 삼...

발해사 ▩[답변]발해 왕실이 호칭에 집착한 까닭 [2]

  • 2009-07-28
  • 조회 수 2143

독도 님. 한 달 하고도 3주일 전에 저한테 질문하셨는데, 이제야 답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와 제 의견을 모아서, 님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먼저 발해의 군주를 일컫는 정식 호칭에 대해 이야...

기타 삼한사의 재조명2를 쓰며1 [2]

  • 2009-07-23
  • 조회 수 2424

내가 맨 처음 쓴 "네티즌과 함께 풀어보는 한국고대사의 수수께끼"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광개토왕비문>으로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읽는 법이다. 반면에 두번째 쓴 "삼한사의 재조명"은 서문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삼국지 동이전>으...

Q&A [답변]진흥왕의 혼인과 두 나라 사이의 맹세에 대한 견해 [2]

  • 2009-07-21
  • 조회 수 2219

휴정 님의 말씀을 듣고, 일도안사 님의 글을 읽은 뒤 여러모로 연구를 해 봤습니다. 먼저 휴정 님의 질문에 대답을 해 드려야겠지요(그 다음에는 일도안사 님의 질문에 대답해야 할 테고요). 질문의 핵심은 성왕이 왜 진흥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