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네티즌 고대사와 삼한사의 재조명1을 읽고 궁금한 점이 있어 문의 드립니다.
(일종의 독자 질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상기 2권의 책을 읽고, 한성백제와 삼한백제 그리고 왜 와의 관계를 아래와 같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1) 한성백제는 韓이라고 불리 우는,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던 국가의 담로국이었다
(2) 韓은 과거 고구려로부터 남하한 비류가 당시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던 최대세력이었던 마한을 물리치고 건국한 나라다...
(3) 韓은 백제, 한예 또는 왜(신라본기의 왜가 아닌, 백제본기 또는 광개토대왕 비문 왜)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4) 고구려 고국원왕은 요서지역에서 삼한백제와의 갈등 또는 배신감(섭섭함?) 때문에 한반도 남부 한성백제 본토를 공격하다가 당시 삼한백제 연합군을 이끌던 한성백제 근초고왕 및 그 아들 근구수의 군대에 대패하고 본인마저도 목숨을 잃었다.
(5) 韓의 중심지는 지금의 충청도 금강 유역이었다
(6) 일본 천황 중 숭신에서 신공황후까지는 큐슈에 있던 야마토국의 왕이며, 응신이후부터가 본토 왜의 왕이다.
- 본토는 응신이 최초 개척했으며 그 이전까지 본토는 한반도에서 선이주한 사람들과 일본 본토 원주민 등이 형성한 소규모 세력들이 난립되어 있었다.
여기서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상기 기재된 저의 이해 내용이 일도안사님이 책을 통해 알리고자 하는 내용과 같은 것인가요? 즉, 제가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2) 광개토대왕의 잔국 토벌시, 한성백제 땅을 일부(18개 성) 점령한 뒤, 갑자기 한강유역을 건너뛰어 금강유역으로 쳐들어가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 어차피 한성백제도 韓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한성백제 먼저 치고 순차적으로 금강유역까지 정벌하는 게 군사적으로 더 합리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아울러 한성백제는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근초고왕의 나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정벌할 명분이 더 큰 것 같습니다.
(3) 광개토대왕 비문 중,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 來渡海, 破百殘☐☐☐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利殘國에 대한 해석을 부탁드립니다.
- 상기 문구의 해석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지만, 왜가 바다를 건너왔다는 부분만큼은 공통된 의견인 것 같은데요 그럼 여기서 바다를 건너온 왜는 어떤 존재인가요? 신묘년이면 응신2년인데요 일도안사님 책에 의하면 그때 당시 응신은 삼한백제의 왕으로서 한반도에 거주 중이었고 왜국이 건국된 것은 397년이기 때문에 신묘년 기사에 나온 왜는 응신의 왜는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당시 큐슈지역은 어떤 정권이 다스리고 있었나요?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하여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부족한 부분을 본 페이지를 통해 질문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 한성백제는 韓이라고 불리 우는,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던 국가의 담로국이었다.
一道安士: 4세기말 광개토왕 전쟁 이전까지 그랬습니다.
(2) 韓은 과거 고구려로부터 남하한 비류가 당시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던 최대세력이었던 마한을 물리치고 건국한 나라다.
一道安士: 온조와 비류가 함께 마한을 멸망시켰습니다.
(3) 韓은 백제, 한예 또는 왜(신라본기의 왜가 아닌, 백제본기 또는 광개토대왕 비문 왜)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一道安士: 백제-스스로의 호칭, 한예-중국사서의 호칭, 왜-왜가 된 후 5세기 고구려인의 호칭.
(4) 고구려 고국원왕은 요서지역에서 삼한백제와의 갈등 또는 배신감(섭섭함?) 때문에 한반도 남부 한성백제 본토를 공격하다가 당시 삼한백제 연합군을 이끌던 한성백제 근초고왕 및 그 아들 근구수의 군대에 대패하고 본인마저도 목숨을 잃었다.
一道安士: 아닙니다. 여기가 앞으로 나올 <삼한사의 재조명2: 진왕제 연구>에서 설명할 내용입니다. 아래의 제목을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고국원왕의 백제 공격 이유 1. 문제 一道安士
http://www.histopia.net/zbxe/859782009.01.02 00:13:08 (*.68.174.111) 25680고구려사
새해를 신선한 문제로 신선하게 시작하는 것이 역사학도의 길이지요. 고구려사에서 잘 아는 것으로 하나 골랐습니다. 고국원왕조입니다.
*고국원왕 25년: 12월, 사신을 연나라에 보내 포로로 잡혀갔던 왕모 주씨를 귀국시킴. 연왕이 왕을 정동대장군 영주자사 낙랑공왕으로 봉함.
*고국원왕 39년: 9월, 왕은 군사 2만명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백제를 쳐 치양에서 싸웠으나 패하였다.
*고국원왕 40년: 진의 왕맹이 연을 쳐부수자 연의 태부 모용평이 도망해왔다. 왕은 그를 잡아 진으로 보냈다.
*고국원왕 41년: 10월, 왕이 백제와 전투하다 전사함.
[문제] 고구려가 고국원왕 39년에 백제를 공격하기 시작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고국원왕 38년도 아니고 40년도 아니고 39년에 백제를 공격하기 시작하였습니까? 치양은 황해도로 추정되는데 황해도가 언제부터 백제 영토가 되었습니까?
(5) 韓의 중심지는 지금의 충청도 금강 유역이었다.
一道安士: 그렇습니다. 아산만 인주 밀두리에서 건국하여 웅진 거발성에서 망했습니다.
(6) 일본 천황 중 숭신에서 신공황후까지는 큐슈에 있던 야마토국의 왕이며, 응신이후부터가 본토 왜의 왕이다.
- 본토는 응신이 최초 개척했으며 그 이전까지 본토는 한반도에서 선이주한 사람들과 일본 본토 원주민 등이 형성한 소규모 세력들이 난립되어 있었다.
一道安士: 응신이 도착해보니 지방세력이 난립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상기 기재된 저의 이해 내용이 일도안사님이 책을 통해 알리고자 하는 내용과 같은 것인가요? 즉, 제가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一道安士: 가장 중요한 진왕제만 빼고는 맞습니다. 고국원왕의 백제 공격이유와 광개토왕의 백제 공격이유가 틀렷습니다. 사실은 제가 과거에 틀린 것이지요.
(2) 광개토대왕의 잔국 토벌시, 한성백제 땅을 일부(18개 성) 점령한 뒤, 갑자기 한강유역을 건너뛰어 금강유역으로 쳐들어가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 어차피 한성백제도 韓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한성백제 먼저 치고 순차적으로 금강유역까지 정벌하는 게 군사적으로 더 합리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아울러 한성백제는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근초고왕의 나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정벌할 명분이 더 큰 것 같습니다.
一道安士: 처음에는 전방인 한강유역부터 공격하여 금강유역까지 남하할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군력으로 아예 목적지인 배후를 친 것이지요. 광개토왕이 공격한 이유는 응신의 자립위왕 때문이었습니다. 응신이 자립위왕 하자 주변소국이 모두 그의 신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나올 책에서 설명합니다. '삼한사의 재조명'까지는 이것에 관한 설명이 없습니다.
(3) 광개토대왕 비문 중,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 來渡海, 破百殘☐☐☐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利殘國에 대한 해석을 부탁드립니다.
- 상기 문구의 해석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지만, 왜가 바다를 건너왔다는 부분만큼은 공통된 의견인 것 같은데요 그럼 여기서 바다를 건너온 왜는 어떤 존재인가요? 신묘년이면 응신2년인데요 일도안사님 책에 의하면 그때 당시 응신은 삼한백제의 왕으로서 한반도에 거주 중이었고 왜국이 건국된 것은 397년이기 때문에 신묘년 기사에 나온 왜는 응신의 왜는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당시 큐슈지역은 어떤 정권이 다스리고 있었나요?
一道安士: 말씀하신 부분은 광개토왕비문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이 부분이 <삼한사의 재조명2: 진왕제 연구>에 새로 나옵니다. 고국원왕이 백제를 공격한 이유와 광개토왕이 백제를 공격한 이유가 동일합니다. 391년 신묘년에 진왕 응신이 자립위왕에 성공함으로써 그 이전까지 고구려와 친하게 지내던 나라들이 일제히 응신의 신민이 된 것입니다. 응신의 나라는 해양국입니다. 391년에 응신의 자립위왕을 알리는 사자가 해로로 백제권 전역에 달려갔을 것입니다. 응신천황의 자립위왕을 검색하여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삼국사기 바꿔읽기 一道安士
http://www.histopia.net/zbxe/87522006.02.03 23:36:30 (*.231.163.178) 1668269 / 0 0기타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우리는 어떤 역사책을 읽을 때 한국인이라는 선입견 아닌 선입견 위에 발을 붙이고 있다. 일본인도 중국인도, 서양인도 동양인도 실은 다 마찬가지이다.
4세기 후반~5세기 초의 삼국사기를 읽는데 국명을 다음처럼 바꾸어서 읽어보자. 그리고 느낌이 어떤지 알아보자.
삼국사기의 백제 -> 말갈
삼국사기의 신라 -> 선비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왜 -> 백제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왜 -> 가야
우선 워밍업으로 광개토왕비문의 가장 난해하다는 영락 6년조 전쟁명분 구절을 읽자. 참고로 광개토왕비문의 왜는 백제본기의 왜이고, 백잔은 삼국사기의 백제이다. 임나가야는 가야의 일파이므로 그대로 두겠다.
1. “말갈 선비 구시속민 유래조공”
2. “而 백제 신묘년 래도해 파 말갈 임나 선비 이위신민”
3. “以 (영락) 6년 왕솔수군 토벌백제”
자, 느낌이 어떤가? 비문에 논리가 이상한 곳이 있는가? 1->2->3으로 아주 자연스럽지 않은가?
만일 만주벌판에서 5세기 초에 고구려가 세운 비문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1.번 구절이 써 있다면 너무도 당연하다고 하여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2.번을 보면 고구려는 임나가 백제의 영향권인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말갈과 선비가 백제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그래서 3.번처럼 백제를 토벌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바꾸어 읽는가? 그것은 이것이 당시(4말5초)의 실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