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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에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

Q&A 조회 수 2703 추천 수 0 2009.08.12 17:22:22
방카이 *.196.54.160
네티즌 고대사를 읽고 갑자기 고대사에 관심이 많아진 사람입니다.

우연히 신찬성씨록이라는 걸 어떤 사이트에서 봤는데요...(http://homepage1.nifty.com/k-kitagawa/data/shoji03.html)

다음과 같이 좀 특이한 사항을 발견해서 질문 드립니다.

(1) 出自百済国朝鮮王淮也
      - 온조에 의해 멸망당한 준왕의 조선은 백제 또는 마한내 제후국 또는 담로가 된 것일까요?

(2) 出自謚敏達孫百済王也
      - 삼한사의 재조명을 보면 서명천황은 백제의 무왕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은데요...
        민달 천황은 백제왕가와 무슨 관계였을까요?
        일본 서기에는 민달천황과 서명천황은 백제궁을 지어서 살았다던데..

(3) 出自百済国都慕王十八世孫武寧王也
     - 비록 그 뿌리는 같으나, 주몽은 엄연히 고구려왕인데 백제국왕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만약 주몽을 백제의 1대왕으로 가정한다면 무령왕이 과연 18대가 될 수 있는 걸까요??

아직 내공이 미약하여 이 곳 사이트에 어울리는 질문 수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3'

라디오

2009.08.20 23:19:41
*.142.218.59

出自百済国都慕王十八世孫武寧王也

속일본기에서도 본 구절같군요.

보통의 족보책이라든지.. 왕계를 얘기할 때, 代수보다는 世수를 말합니다.

도모왕의 18세손이 무녕왕이란 뜻인데요.

특히, 도모왕은 고구려 추모왕이 맞다고 봅니다.
통설이 그렇게 되어 있으며, 저도 이 설을 지지합니다.

다음 한자사전의 풀이를 보면..

鄒= 일정(一定)한 경계(境界) 안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을' 또는 '읍(邑)'을 나타낸 글자. 사람이 사는 곳이나 지명(地名)을 나타냄. 의미(意味) 요소(要素)로 쓰임
都= 일정(一定)한 경계(境界) 안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을' 또는 '읍(邑)'을 나타낸 글자. 사람이 사는 곳이나 지명(地名)을 나타냄. 의미(意味) 요소(要素)로 쓰임

都와 鄒는 서로 같은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모왕= 추모왕을 의미하는거죠.

백제는 우태가 온조, 비류의 아버지라 주장하지만, 고구려측 사서에선 온조는 추모왕의 아들이라 주장합니다.

무녕왕 이전에 이미 구지왕이나 플러스 3명정도의 왕이 누락되어 있기에, 무녕왕까지 세수를 계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까지는 못 하더라도, 구지왕 이전까지의 기년은 밣혀 내야죠.

一道安士

2009.08.22 00:20:19
*.147.81.17

질문이 올라오면 실제로 그런 내용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고, 그 다음에는 그 구절의 앞뒤에 무엇이 있는가를 살핍니다. 그런데 제가 이러저러한 일들에 밀려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있었는데 라디오님이 답글을 다셨습니다.

[1] 첫번째 질문은 조선왕 준과 백제가 무슨 관계냐는 것입니다. 백제란 본래 마한과 변한과 진한으로 이루어진 나라인데 그 중에서 마한이 주도권을 행사하였고 진왕(백제왕)도 마한이 배출하였습니다. 따라서 백제는 마한과 관계를 뗄 수가 없습니다. 마한의 소국들이 백제의 담로국들입니다. 그 담로국 중에 하나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백제를 계승하고 삼국사기에 백제본기를 남겼습니다.

*<삼한사의 재조명 2>에서 나올 내용인데 중국사서를 이용하여 마한의 주도세력이 부여씨임을 밝힐 것입니다. 이는 별다른 것이 아니고 부여씨의 출신지가 주로 금강유역과 영산강유역 등 과거 마한지역에 집중됨을 보이는 것입니다.

삼국지와 후한서의 삼한전을 보면 삼한 중 최대 세력인 마한을 설명하는 구절에서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서 준왕이 한반도로 들어온 것이 마한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마한이 9대를 전한 후에 비류와 온조형제의 백제에게 망합니다. 백제가 마한전역을 통합하는 방법은 왕건이 삼한을 통합한 방법인 혼인동맹입니다. 이것이 진왕제의 탄생인데 본래 부여의 통치제도입니다. 즉, 부여왕->진왕->일본서기의 천황으로 이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일본은 부여의 후신입니다.

[2] 두번때 질문이 민달천황인데 그 출신과 배경이 상당히 모호합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삼한사의 재조명2>에는 무왕이 서명천황임을 증명하는 단원만 올라갑니다.

[3] 세번째 질문은 어떻게 백제 25대(삼국사기 백제본기 기준) 무령왕이 18대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왕통은 하도 많이 바뀌어 세를 혈통으로 셀 수 없습니다. 그냥 왕의 대수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도모왕은 통설대로 추모왕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삼국사기와 대수가 안 맞습니다.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삼한사의 재조명 1>에서  초기백제 3루왕(다루-기루-개루) 시대에 적어도 2-3명 이상의 통치자가 더 있었음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왜 3명만 백제왕으로 기록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번에 나올 <삼한사의 재조명 2>에서 그것을 설명합니다. 3루왕 시대에 백제왕이 3명뿐인 이유는 백제왕이 3명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허망한 답변이나 이것이 맞습니다. 삼국사기가 맞다는 말씀입니다. 3루왕 시대는 백제왕(진왕)이란 호칭을 사용했던 시대, 즉 진왕제를 실시한 시기입니다. 진왕제하에서는 자립위왕(강력한 소국과의 혼인동맹)에 성공한 왕에게만 백제왕의 시호와 대수를 줍니다. 자립위왕하지 못한 왕은 왕세자를 칭해야 하며, 퇴위 후에도 왕의 시호와 대수를 못 받고 그 앞이나 뒤의 자립위왕한 왕의 통치기간에 흡수되어 버립니다. 왕세자라면 3명이 떠오르지요.
1. 왜국에 칠지도를 보낸 진왕
2. 동진에 백제왕을 요구했던 진왕 여휘
3. 남조 송나라에 7국도독을 요구했던 시변압반황자 흥

이것이 3루왕 시대에 백제왕이 3명뿐인 이유입니다. 나머지는 자립위왕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서기를 보면 즉위 1년 후까지 자립위왕하지 못하면 진왕은 제대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할뿐아니라 도전받습니다.

그런데 만일 장구한 세월(예를 들면 35년)동안 자립위왕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면 진왕국가로서는 망하는 것입니다. 한성백제는 개루왕 이후에 장기간 자립위왕하지 못함에 따라 진왕국가로서의 능력을 상실하고 금강유역에 자리잡집은 백제왕(진왕)의 일개 담로국이 됩니다.

신라인 길선이 모반에 실패하여 한성백제로 도망왔다는 것은, 당시 한성백제의 통치자가 자립위왕을 노리고 신라인 길선가문 혼인하였는데, 길선의 신분이 너무 낮아 자립위왕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선을 부추켜 모반을 일으키게 했으나 그가 실패함으로써 자신은 더 이상 자립위왕할 가능성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진왕제하에서 이렇게 되면 당연히 왕은 실각하고 권력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즉 개루왕 이후 35년을 통치하였으나 백제왕의 시호왕 대수를 못받은 그 통치자는 길선의 모반이 실패하는 순간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입니다.

그 시기가 죽 계속되다 근초고왕이 자립위왕에 성공하고 백제왕을 칭하게 되는데 이것이 신 진왕제(한성백제식 진왕제)의 출현입니다. 금강유역 백제왕의 진왕제는 왜국으로 그대로 이전되는데 한성백제의 3루왕 시대의 진왕제와 합하여 이를 구 진왕제 또는 부여식 진왕제라 호칭할 것입니다.

근초고왕이 자립위왕에 성공한 것은 전연의 대군이 고구려를 공격하였기 때문입니다. 전연에게 징발되어 고구려를 공격하다 퇴로가 차단된 흉노계 선비족이 신라에 들어와 그들의 강력한 기마군단으로 신라를 왜국(변진한의 임나가야)의 담로국에서 독립시키고 변진한 연합군(왜군)을 격파합니다. 한반도내에서 신라의 군사력이 떨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근초고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혼인을 요구하고 근초고왕 23년 무진년에 신라와 혼인하여 자립위왕에 성공합니다.

근초고왕이 자립위왕에 성공하자 백제왕을 칭하게됩니다. 당연히 경기도는 물론 황해도 남쪽까지 모두 근초고왕에게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한마디로 정치적 신민이 되는 것입니다. 고구려가 이를 보고 가만 있을 수 없습니다. 황해도지역은 본래 자신들의 속민들이 살던 곳으로 고구려의 핵심부인 평양의 바로 코앞입니다. 국가안보의 위기를 느낀 고국려왕이 그 다음 해에 군사를 이끌고 남하합니다. 만일 고국원왕의 비문이 발견된다면 군사를 일으켜 황해도 치양지역을 공격한 이유를 무진년에 황해도지역이 백제의 신민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백제와 다르게 고구려는 이런 부여식 진왕제를 일찍 버렸기 때문에, 즉 혼인을 통한 권력의 내부추인과정이 없었으므로 국초부터 중국사서에 출현합니다. 반면에 백제는 이런 진왕제를 통하여 내부적으로 권력이 추인받기 때문에 국초부터 스스로 백제왕을 칭하면서도 4세기나 되어서야 중국사서에 출현하는 것입니다. 금강유역의 진왕 중에 이런 원시적인 자립위왕제도를 폐지하고 대신 중원국가와의 외교적 노력으로 왕권을 인정받으려고 노력한 사람이 진왕 여휘입니다. 여구-여휘-응신으로 이어지는 금강유역 진왕들 중에 제가 그래도 가장 높은 평가를 할 것입니다.

여휘 이후 진왕 응신이 390년에 즉위하는데 일본서기를 보면 자립위왕은 그 다음해인 391년에 성공합니다. 즉 이때 왕후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진사왕의 딸이 틀림없습니다. 응신이 391년에 자립위왕에 성공하게 되자 주변소국들인 한성백제, 임나, 신라 등이 일제히 삼한백제 응신의 신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성백제는 본래 고구려의 속민이었던 말갈족 국가이고 신라 역시 고구려의 속민출신인 선비족 국가입니다. 이들이 모두 삼한백제의 신민이 되는 것은 고구려의 안위를 위협하는 것으로서 가만있을 수 없습니다. 고구려왕이 수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소국체제였던 삼한백제(조각국가, 쪼가리 국가)를 토벌해 버립니다. 

이후 삼한백제 진왕 응신이 왜국으로 도망쳐 국가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5세기 왜5왕의 왜국입니다. 조각국가를 토벌했던 고구려왕이 죽자 그 아들이 아버지의 전공을 기리는 비문을 세웠습니다. 조각국가 토벌에 대한 전쟁명분을 쓰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진왕 응신의 자립위왕입니다. 일본서기를 보면 즉위 1년 후인 391년이 자립위왕하고 삼한의 지배자가 된 해입니다. 391년은 신묘년입니다. 결론적으로 광개토왕비문은 진왕 응신의 자립위왕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한사의 재조명 2>에서는 배경부터 시작하여 5백쪽 책 한권이 거의 다 자립위왕과 관련된 내용을 다룹니다.

라디오

2009.08.23 13:36:36
*.182.87.105

*족보책도 일종의 사서입니다.

왕의 계보를 말할 때, 代수보다는 世수를 따졌다는 것을 명심해 두시는게 좋아요.

항상 世수를 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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