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만조선이 한무제와 전쟁한 후 약 60년이 지난 즈음의 대동강유역의 모습을 보여주는 목간이 출토되었는데 드디어 해석이 된 모양입니다. 목간은 2005년 평양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BC 45년은 전한 말기이자 삼국의 건국무렵입니다. 신라는 이미 건국되었고, 고구려는 이 무렵에 건국되며, 백제는 이로부터 약 20년 뒤에 건국됩니다. 백제는 낙랑군의 서쪽에서 건국하였습니다. 반면에 신라는 낙랑국 바로 남쪽에서 건국하였습니다. 첨부한 지도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2천년 전 목간의 지명을 보고 오늘날의 지명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어떻게 한두개도 아닌 많은 지도의 지명을 정확히 찾았는지 궁금합니다. 학회는 지명비정한 방법을 공개해야 할 것입니다. 일단 지명비정을 믿는다면 백제 건국시 춘천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안 나올 것 같습니다.
전한시대에 대동강유역에 이미 대규모 군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에 대동강유역에서는 이에 걸맞는 전한유물이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전한시대 유물은 별로 없고 대부분이 후한시대 유물입니다. 이 부분은 아직도 해결해야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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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사 전문가인 윤용구 인천도시개발공사 문화재과장(전 인천시립박물관 학예실장)은 12일 - “기원전 45년 낙랑군 소속 25개 현의 가구(
戶)와 인구 수, 전년 대비 가구 수 증감률이 기록된 공문서 목간 3점의 사진을 입수해 원문을 판독한 결과 평양,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에 걸친 낙랑군 현들의 정확한 위치를 밝힐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목간 사진은 지난해 11월 북한 사회과학원이 펴낸 자료에 수록돼 있다. 이 목간의 존재 사실과 일부 내용은 2007년 윤 과장이 북한 사학자의 글을 통해 국내에 알린 바 있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원문을 모두 판독했다.
이 목간은 ‘
樂浪郡初元四年縣別戶口多少□
簿(낙랑군초원4년현별호구다소□부·□는 판독 불가)라는 제목으로 인구센서스 결과를 약 710자로 적었다. 한국목간학회(회장 주보돈 경북대 교수)는 11일 10여 명의 학자가 모인 가운데 비공개 판독회를 열어 이 목간의 내용을 검증했다.
목간에 따르면 기원전 45년 낙랑군의 가구는 4만3845호, 인구는 28만4261명이었다. 목간에는 평양, 평안남도, 황해도, 함경남도, 강원도 지역에 해당하는 낙랑군의 25개 현의 지명이 모두 기록돼 있다.
사랑하는 호동왕자를 위해 자명고를 찢은 낙랑공주가 살았던 낙랑국으로 알려진 낙랑군 소속 부조(
夫租) 현(현재 함경남도 함흥시)에는 당시 1150가구(인구수 8000여 명·‘8천(
千)’자만 판독 가능)가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25개 현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살았던 조선(
朝鮮) 현(옛 고조선의 중심 지역)은 현재의 평양으로 5만6890명(9678가구)이 산 것으로 집계됐다. 인구수가 가장 적은 현은 현재의 황해북도 인산군 지역인 제해(
提奚) 현으로 1303명(173가구)에 그쳤다.

교수님 이론에 맞으려면 낙랑군이 아니고 낙랑국으로 나와야 하는것 아닌가요?
낙랑,대방군은 요동 내지는 요서지역, 낙랑군과 대방군 출신이 한반도에 세운 나라가 낙랑국,대방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