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 Resources about Korean History

디지털의 옷을 입은 역사자료. 이제 史料는 공유되어야 한다.

VIEW

삼국유사 | 三國遺事

고려시대 일연에 의해 작성된 한국 고대 문화사의 최고 원천.

GO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고등학교 7차 교육과정 국사교과서

MORE

History through images & Photos, Maps

이미지와 사진, 그리고 지도로 본 역사

VIEW

오늘:
15
어제:
47
전체:
1,252,078

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첨부파일은 hwp, zip, jpg, gif 만 가능합니다.
게시물 혹은 댓글을 남기실때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시기 바랍니다.
비속어, 욕설, 반말 등을 사용하면, 본 사이트의 방침과 맞지 않으므로 글을 삭제하겠습니다.

새 역사스페셜을 보고 - 고조선 부분

고구려사 조회 수 2293 추천 수 203 2005.06.07 19:56:42
一道安士 *.232.248.32
수많은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을 바탕으로 진행되던 교양프로그램인 역사스페셜(이하 역스)이 다시 돌아왔다. 진행자가 유인촌씨로부터 고두심씨로 바뀌었다. 우리 국민은 남자와 여자로 구성되어 있고 남자만 역사에 관심을 가지만 법은 없으므로 진행자를 여자로 바꾼 것은 바람직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지난 두어번에 걸쳐 고조선시대가 끝나고 다음 주부터는 삼국시대로 들어간다. 나는 고조선편을 보았지만 완전히 납득하지는 않는다. 과연 어디까지가 정확한 묘사인지 항상 궁금하다.

역스가 한국사 전체를 꿰뚫는다고 하는데 역스에서 보이는 것은 소위 통설이다. 통설이란 그 시대의 주도적인 학설이란 뜻이지 진실이라는 뜻은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누구도 진실은 모른다. 우리는 단지 진실에 조금이라도 접근하고 싶을 따름이다.

나는 한 단면을 잘라 전체를 유추해본다. 내가 1-4세기 삼국시대 전기사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 부분이 한국사의 허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허리를 통하지 못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는 지난 역스에서 삼국시대 전기사에 관한 설명이,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는, 수없이 틀린 것을 보았다. 특히 문제는 가야사였다. 가야사가 엉망이 되는 것을 보았다. 허리가 이렇게 틀린다면 역스가 보여준 그 이전의 고조선사 역시 엉망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다.

나는 고조선 시대에 관해서는 많은 공부를 못하여 잘 모르지만, 고대 어느 순간에 조선이란 이름은 부여가 아니라 기준과 위만의 나라를 나타내는 명칭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부여가 BC 4-5세기 사이에 조선(단군조선) 대신 부여로 국호를 변경함으로써, 중국왕조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던 기준과 위만의 나라가 조선을 대표하게 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기준의 조선은 세형동검으로 나타내지는 마한조선이 되었고, 위만의 조선은 전한과 전쟁하다 멸망하였다.

광개토왕비문에는 조선은 없고 부여만 있다. 왜 일까?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를 계승한 나라이고, 마한과 낙랑은 기준과 위만의 조선을 계승한 나라다. 따라서 고구려 입장에서 기준과 위만의 조선을 언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광개토왕비문은 고구려가 부여를 계승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백제(비문왜+백잔)가 아니라 고구려가 계승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광개토왕비에 나오는 부여가 단군조선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단군조선(부여)은 전한과의 전쟁에서 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체되어 고구려와 백제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백제는 다시 왜국(일본)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1세기 초에 단군조선과 마한조선이 한반도에서 맞붙었다. 처음에는 소수였던 단군조선 세력이 다수였던 마한조선에 복속하여 그 일부가 되었으나, 곧 마한조선을 무너뜨리고 마한이란 국호마져 접수한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역사서는 마한조선이 아니라 단군조선(부여)이 정통이다.

댓글 '1'

흥무대왕

2021.10.09 22:19:45
*.133.93.27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다만 세형동검이 bc 300~0년으로 추정되니, 기준이 평양으로 오기 100년전부터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혹시 세형동검인들이 원 한반도인이 아닐까요?

신라,마한,진한,변한,백제,가야 등 수많은 이주민들을 받아주던 기층민이자, 홍익인간의 정신을 실현한 진정한 고조선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공지 Q&A 새한국고대사 포럼 안내 주성지 2006-08-08 64385

기타 이순신과 서남해안 해상군벌

  • 2005-07-15
  • 조회 수 2387

불멸의 이순신을 몇차례 보았는데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그 이전에 흥행에 성공했던 장보고의 해신과 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이순신이 서남해안 해상군벌화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유교적 규범에서 보면 이순신은, 신라정...

신라사 ▩죽엽군과 죽현릉 전투

  • 2005-07-04
  • 조회 수 2169

“이서고국 (伊西古國)이 금성을 공격해 왔으므로 우리 편에서 군사를 크게 일으켜 막았으나 물리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홀연히 이상한 군사가 왔는데, 그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그 사람들은 모두 귀에 대나무 잎을 달고 있었다. 우리 군사와 함...

가야사 삼국사기의 가야사 2. [1]

  • 2005-06-18
  • 조회 수 2323

[질문] 신라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나라는 어디인가? 이런 어리석은 질문에 답하라면 다 웃을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바이킹이 안 나온다. 당연하다. 북구라파는 신라에서 아주 멀다. 마찬가지다. 신라사를 가장 잘 기록한 사서가 삼국사기이고, ...

가야사 삼국사기의 가야사 1.

  • 2005-06-18
  • 조회 수 2289

70-80년대 이후 학계의 대부분은 삼국사기 초기기록에 대하여 신뢰하는 입장이나 아직도 학계 일부에서는 이를 불신한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자신의 전공분야와도 관련이 있다. 전공별로 따지면 고구려사 전공자 가운데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신뢰하는 사람이 ...

고조선 ▩고조선의 무천과 우제점

  • 2005-06-11
  • 조회 수 2836

무천(舞天)은 예(濊)의 제천(祭天)의식으로, 전쟁을 하기 전에 소를 잡아 그 발굽의 모양으로 길흉을 점치던 우제점(牛蹄占)은 부여와 고구려의 풍습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부여는 영고(迎鼓)를, 고구려는 동맹(東盟)이라는 제천행사를 치렀다고 한다. 그런...

기타 [re] 고조선이란 뿌리의 공유

  • 2005-06-12
  • 조회 수 2945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윤내현 교수님 좋아하시겠습니다. (동)예도 부여나 마찬가지로 고조선에서 갈려나온 것입니다. 옥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부여에서 갈려나온 고구려와 백제도 올라가보면 고조선입니다. 이 문제는 다시 삼국유사의 고조선에 대한 의...

기타 고려초 진주(眞州)의 위치에 대한 추론

  • 2005-06-08
  • 조회 수 2027

고려의 眞州는 어디인가? 추정해보았습니다 -------------------------------------------------------------------- 고려 태조2년(936년), 고려와 후백제는 국운을 건 마지막 결전을 一善郡에서 벌인다. 9월 8일, 지금의 경북 구미시 지산동 일대의 발갱이들(...

고구려사 새 역사스페셜을 보고 - 고조선 부분 [1]

  • 2005-06-07
  • 조회 수 2293

수많은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을 바탕으로 진행되던 교양프로그램인 역사스페셜(이하 역스)이 다시 돌아왔다. 진행자가 유인촌씨로부터 고두심씨로 바뀌었다. 우리 국민은 남자와 여자로 구성되어 있고 남자만 역사에 관심을 가지만 법은 없으므로 진행자를 여...

기타 ▩진한 소사(小史)

  • 2005-06-02
  • 조회 수 2107

▶ 진(辰)과 진한(辰韓) 『한서』「조선전」에는 “사고(師古)는 ‘진(辰)은 진한(辰韓)의 나라라 한다.’고 말했다(師古曰辰謂辰韓之國也)”는 주석이 달려있다. 그리고『삼국지』「한전」첫머리에는 “진한은 옛 진국이다(辰韓者古之辰國也)”라는 구절이 나온다. ...

백제사 신라인이 가르쳐준 근초고왕의 잃어버린 20년

  • 2005-06-02
  • 조회 수 3075

[1] 서론 삼국사기 근초고왕조를 보면 30년 재위기간 중에 앞의 20년이 비어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따지면 2년째에 신하를 욕한 후, 기록의 공백에 계속되다 왕이 되면 하는 행위, 즉 주변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일을 21년째야 처음으로 한다. 이를 두고 근...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