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안사님, 제 하잘것없는 물음에 정성껏 대답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 의견을 귀담아 들어주시니 그저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굳이 몇 마디만 덧붙이자면

:옥저가 본래는 난하나 요서 부근에 있었다가 민족 대이동기에 동쪽으로 이동하며 동옥저라 불리었고, 이것이 다시 남북으로 분리되어 나갔을 것입니다.

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옥저나 예, 맥, 부여, 서나벌, 용성국이 동쪽으로 간 까닭은 - 기자족처럼 - 한漢과 흉노에게 밀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군濊君 남여가 위만조선과 대립하다가 서한에 투항한 점도 그렇고, '옥저'나 '예'라는 이름이 지금의 요령성에 있었다는 기록, 그리고 용성이라는 땅 이름이 요서에 남아있었다는 점([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도 용성이 나옴)을 볼 때, 그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 나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서한과 흉노, 위만조선에게 밀렸기 때문으로 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동쪽으로 가 토착민을 정복하거나 밀어내고 자리잡았던 것입니다.

(마치 게르만/슬라브족이 훈족에게 밀려 서로마 땅으로 밀려내려왔고, 그 때문에 서로마의 숨통이 끊어지고 동로마가 남쪽으로 밀려나야 했듯이 말이죠)

제 생각입니다만 [후한서]와 [삼국지]의 <부여전>에 부여왕이 "예왕濊王의 도장"을 지니고 있고, 부여가 자리잡은 땅을 "옛 예족의 땅"이라고 말하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부여는 원래 있던 곳에서 밀려나 예족이 자리잡은 흑룡강성 일대를 차지하고 예족을 밀어낸 듯합니다. 쫓겨난 예족은 동옥저를 피해 강원도로 내려와 강원도를 놓고 맥족과 싸우죠(태기왕 전설 참고). 이런 일이 강원도뿐 아니라 삼남이나 경기도,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와 연해주에서도 똑같이 일어났을 거예요. 열국시대 초기의 역사는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낙랑/대방국의 이주도 마찬가지임).

또  

: * 동옥저왕이 '남한'이라고 한 것이 '남쪽의 한'인지 아니면 '북한'이라고 부를 곳도 있다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남한南韓"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동옥저는 마한의 북쪽에 자리잡았으므로, 자신들보다 남쪽에 있던 마한을 '남쪽의 한국'이라고 부른 게 아니냐고 여겨 편의상 전자("남쪽의 한")의 손을 들어주는 바입니다.

끝으로

:저는 진한의 태기왕을 위만조선시대 진국과 연결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태기왕의 진한(진국)은 진한인들이 모두 빠져나가서 남하하는 통에 서나벌에게 패한 것일까요?

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백제가 마한을 흡수하면서 커졌듯이, 서나벌도 진(辰)을 흡수하면서 커졌고 혁거세왕이 태기왕과 싸울 때에는 아예 서나벌이라는 나라 자체(!)가 강원도로 옮겨갔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태기왕 이야기에도 왕을 지키는 군사가 얼마 안 되었다고 한 점으로 보아 백성들(:진국辰國 사람들)을 잃어버리고 덕고산(:태기산의 옛 이름)에 갇힌 태기왕이 힘이 딸려서 졌다고 여길 수 있는거죠.

"다음 관심은 '후기진왕시대'가 아니라 '전기진왕시대'의 이전시대, 즉 진.한교체기에 북중국에서 만주로의 대 이주가 발생하는 BC 3 세기부터, 가야제국이 건국되는 AD 1세기까지의 약 4백년입니다. 저는 이번 책을 내고 문을 닫을지도 모릅니다(집사람과 약속했음). 이것은 누구 다른 분들이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료가 부족하여 전기진왕시대보다 더 어려울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만약 허락(?)하신다면 제가 감히 해보고 싶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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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21 Thu 23:3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