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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941
08
2004.03
2004.03
▩「신라본기」가 입증하는 태기왕 이야기의 정확성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7647 2004.03.08 02:09:58 (*.153.157.95) 신라사0 Comments 1063 Views 162 Voted / 0 Devoted
강원도 횡성군에 사는 사람들은 진한(:진)의 마지막 임금인 태기왕이 덕고산(태기산의 옛 이름. 덕고산은 태기왕이 죽은 곳이라고 해서 ‘태기산’으로도 불리웠고, 지금은 ‘태기산’이라는 이름이 정식 명칭으로 굳어진 상태다)에 4년 동안 머무르다가 신라 혁거세왕(혁거세거서간)에게 들켰다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일까, 아니면 역사적인 사실일까? 그리고 만약 이 이야기가 실화라면, 진한은 언제 망했을까?
지금까지는 이 의문을 제대로 풀지 못했기에 태기왕 이야기를 단순한 흥밋거리로만 여겨야 했다.
그런데『삼국사기』를 읽어보면 태기왕 이야기가 전하는 태기왕의 은둔기간과 너무나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기사가 나와 어쩌면 횡성군 주민들이 기억하는 태기왕 이야기가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도대체 어떤 기록이 태기왕의 죽음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우리는 우선 진한(辰韓)의 멸망을 다룬 기사부터 읽어야 한다.
“봄 2월에 호공(瓠公)을 보내어, 예를 갖추어 마한(馬韓)을 찾아가게 했다. 호공은 마한 왕이 ‘진한과 변한은 우리의 속국인데 … 공물을 바치지 않는다. 큰 나라를 섬기는 예의가 어찌 이러냐?’고 꾸짖자, ‘… <진한유민(辰韓遺民)>으로부터 변한(卞韓)/낙랑(樂浪)/왜인(倭人 : 나중에 가야제국이 된 세력?)들까지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삼국사기』「신라본기」시조 혁거세거서간 38년 조 (서기전 20년)
서나벌이 마한에 보낸 사신(나는 그가 호공이 아닌 다른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신라본기」에는 호공이 “바다에서 건너왔다.”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또『삼국유사』<탈해왕>조도 그가 해상세력인 석탈해와 싸우다가 집을 빼앗겼다고 적혀있는 만큼, 그가 박씨족보다는 석씨족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여기는 것이다. 다만 서나벌이 서기전 20년, 마한 왕에게 사신을 보낸 일만큼은 사실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이 마한 왕에게 제 나라가 “진한 유민”의 두려움을 산다고 자랑한다. 그렇다면 진한이 서기전 20년 이전에 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서기전 20년 이전에 일어난 일을 살펴보자. 혁거세왕이 수도를 짓는 기사가 실려있다.
“서울에 성을 쌓고, 그 이름을 금성(金城)으로 지었다.”
―「신라본기」혁거세거서간 21년 조 (서기전 37년)
그런데 그 기사 바로 위에 난데없이 변한(卞韓)이 서나벌에 항복하는 기사가 나온다.
“변한(卞韓)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왔다.”
― 혁거세거서간 19년 조 (서기전 39년)
두 기사대로라면 혁거세거서간은 (원래 요령성 일대에 있다가 경기도나 강원도 일대로 밀려내려온) 변한의 항복을 받아들인 지 세 해 만에 수도를 세웠다는 얘긴데,「신라본기」에는 변한이 항복한 까닭이 나오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다.
(우산국, 이서국, 실직곡국, 감문국, 압독국, 가야 제국은 신라와 싸우다가 힘에 부쳐 무릎꿇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최소한 흡수된 과정을 이해할 순 있음)
이는 신라가 변한이 항복하기 전, 변한이 놀랄 만큼 큰 일을 벌였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키는데, 그럼 서나벌은 무슨 일을 했으며 왜 그 일을「신라본기」에 적지 못하고 얼버무려야 했을까? 연대를 세어보면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실마리가 나온다.
혁거세거서간 21년 - 혁거세거서간 19년 = 3년(만으로는 2년)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변한은 혁거세거서간이 수도를 만들기 3년 전에 항복하므로, 그 이전에 ‘어떤 일’이 벌어졌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국가의 멸망이나 전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신라본기」에도 실직곡국이 무너진 뒤 압독국이 그 꼴이 될까 두려워 스스로 항복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아울러 도시 건설이나 궁궐을 짓는 일은 전쟁이 안 일어날 때나 전쟁이 끝난 뒤에야 할 수 있으므로, 혁거세거서간 19년 조의 기록을 ‘전쟁이 끝난 증거’로 받아들일 것이다.
변한이 항복한지 3년만에 수도를 만들었다면 못해도 수도를 만들기 4~5년 전에 누군가와 전쟁을 치렀다는 얘긴데, 그럼 이 추리만으로 서나벌과 싸운 상대가 누군지를 알아낼 수 있을까?
횡성군 전설은 그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한다. 횡성군 전설은 태기왕이 삼랑진(三浪津) 전투에서 진 뒤 덕고산으로 쫓겨내려와 “4년” 동안 산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고 전하는데, 이 사실은 위에서 제기한 가설(혁거세왕이 수도를 정하기 4~5년 전에 누군가와 싸웠고, 그래서 변한이 싸움에서 이긴 서나벌에 항복했다는 가설)과 딱부러지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변한은 이웃인 진(:진한)이 서나벌에 무너지자 자신도 당할까봐 스스로 투항한 듯하며, 혁거세왕이 전투에서 이긴 지 네 해(:4 년)가 흐르고 나서야 도읍을 정한 까닭도 이 무렵 태기왕을 죽이고 진을 완전히 무너뜨렸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진한의 계승자’라고 떠든 신라 왕실은 진한인의 반발을 살까 두려워 일부러 사실을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며, 대신 전쟁의 ‘결과’인 변한의 항복과 수도 건설을 적어 그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 혁거세거서간은 서기전 40년에 서른 살(그가 태어난 해는 서기전 69년이고, 즉위한 해는 서기전 57년임)이라 몸소 군사를 지휘할 수 있으니, 그가 태기왕과 싸웠다고 가정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도 이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
정리하자면 이렇다. 진의 군주인 태기왕은 서기전 40년, 삼랑진(三浪津)에서 혁거세거서간이 이끄는 서나벌군과 싸웠으나 처참하게 깨졌고(:삼랑진 전투), 변한은 전투에서 이긴 서나벌에 항복했다. 태기왕은 덕고산으로 달아나 서기전 37년까지 숨어 살며 복수할 기회를 노렸고, 서나벌군은 강원도까지 쫓아와 그를 죽여 진(辰)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버린다(:나는 이 전투를 ‘덕고산 전투’로 부르자고 제안하는 바이다).
이후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사실을 확인한 혁거세거서간은 강원도에 수도를 세웠고, 진의 유민들은 서나벌의 지배를 받거나 경상도로 달아난다.
따라서「신라본기」혁거세거서간 21년 조의 기록은 진(:진한)의 멸망 시기와 서나벌이 강원도로 옮겨간 시기를 말해 주는 중요한 기록으로 대접받아야 할 것이며, 횡성군 전설은 ‘역사’로 복권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 교과서는 진한의 멸망을 서기전 37년으로 적어야 할 것이다.
Read : 57, IP : 218.153.157.246
2003/11/03 Mon 00:43:06 → 2003/11/03 Mon 00:47:58
이 이야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일까, 아니면 역사적인 사실일까? 그리고 만약 이 이야기가 실화라면, 진한은 언제 망했을까?
지금까지는 이 의문을 제대로 풀지 못했기에 태기왕 이야기를 단순한 흥밋거리로만 여겨야 했다.
그런데『삼국사기』를 읽어보면 태기왕 이야기가 전하는 태기왕의 은둔기간과 너무나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기사가 나와 어쩌면 횡성군 주민들이 기억하는 태기왕 이야기가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도대체 어떤 기록이 태기왕의 죽음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우리는 우선 진한(辰韓)의 멸망을 다룬 기사부터 읽어야 한다.
“봄 2월에 호공(瓠公)을 보내어, 예를 갖추어 마한(馬韓)을 찾아가게 했다. 호공은 마한 왕이 ‘진한과 변한은 우리의 속국인데 … 공물을 바치지 않는다. 큰 나라를 섬기는 예의가 어찌 이러냐?’고 꾸짖자, ‘… <진한유민(辰韓遺民)>으로부터 변한(卞韓)/낙랑(樂浪)/왜인(倭人 : 나중에 가야제국이 된 세력?)들까지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삼국사기』「신라본기」시조 혁거세거서간 38년 조 (서기전 20년)
서나벌이 마한에 보낸 사신(나는 그가 호공이 아닌 다른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신라본기」에는 호공이 “바다에서 건너왔다.”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또『삼국유사』<탈해왕>조도 그가 해상세력인 석탈해와 싸우다가 집을 빼앗겼다고 적혀있는 만큼, 그가 박씨족보다는 석씨족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여기는 것이다. 다만 서나벌이 서기전 20년, 마한 왕에게 사신을 보낸 일만큼은 사실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이 마한 왕에게 제 나라가 “진한 유민”의 두려움을 산다고 자랑한다. 그렇다면 진한이 서기전 20년 이전에 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서기전 20년 이전에 일어난 일을 살펴보자. 혁거세왕이 수도를 짓는 기사가 실려있다.
“서울에 성을 쌓고, 그 이름을 금성(金城)으로 지었다.”
―「신라본기」혁거세거서간 21년 조 (서기전 37년)
그런데 그 기사 바로 위에 난데없이 변한(卞韓)이 서나벌에 항복하는 기사가 나온다.
“변한(卞韓)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왔다.”
― 혁거세거서간 19년 조 (서기전 39년)
두 기사대로라면 혁거세거서간은 (원래 요령성 일대에 있다가 경기도나 강원도 일대로 밀려내려온) 변한의 항복을 받아들인 지 세 해 만에 수도를 세웠다는 얘긴데,「신라본기」에는 변한이 항복한 까닭이 나오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다.
(우산국, 이서국, 실직곡국, 감문국, 압독국, 가야 제국은 신라와 싸우다가 힘에 부쳐 무릎꿇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최소한 흡수된 과정을 이해할 순 있음)
이는 신라가 변한이 항복하기 전, 변한이 놀랄 만큼 큰 일을 벌였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키는데, 그럼 서나벌은 무슨 일을 했으며 왜 그 일을「신라본기」에 적지 못하고 얼버무려야 했을까? 연대를 세어보면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실마리가 나온다.
혁거세거서간 21년 - 혁거세거서간 19년 = 3년(만으로는 2년)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변한은 혁거세거서간이 수도를 만들기 3년 전에 항복하므로, 그 이전에 ‘어떤 일’이 벌어졌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국가의 멸망이나 전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신라본기」에도 실직곡국이 무너진 뒤 압독국이 그 꼴이 될까 두려워 스스로 항복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아울러 도시 건설이나 궁궐을 짓는 일은 전쟁이 안 일어날 때나 전쟁이 끝난 뒤에야 할 수 있으므로, 혁거세거서간 19년 조의 기록을 ‘전쟁이 끝난 증거’로 받아들일 것이다.
변한이 항복한지 3년만에 수도를 만들었다면 못해도 수도를 만들기 4~5년 전에 누군가와 전쟁을 치렀다는 얘긴데, 그럼 이 추리만으로 서나벌과 싸운 상대가 누군지를 알아낼 수 있을까?
횡성군 전설은 그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한다. 횡성군 전설은 태기왕이 삼랑진(三浪津) 전투에서 진 뒤 덕고산으로 쫓겨내려와 “4년” 동안 산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고 전하는데, 이 사실은 위에서 제기한 가설(혁거세왕이 수도를 정하기 4~5년 전에 누군가와 싸웠고, 그래서 변한이 싸움에서 이긴 서나벌에 항복했다는 가설)과 딱부러지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변한은 이웃인 진(:진한)이 서나벌에 무너지자 자신도 당할까봐 스스로 투항한 듯하며, 혁거세왕이 전투에서 이긴 지 네 해(:4 년)가 흐르고 나서야 도읍을 정한 까닭도 이 무렵 태기왕을 죽이고 진을 완전히 무너뜨렸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진한의 계승자’라고 떠든 신라 왕실은 진한인의 반발을 살까 두려워 일부러 사실을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며, 대신 전쟁의 ‘결과’인 변한의 항복과 수도 건설을 적어 그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 혁거세거서간은 서기전 40년에 서른 살(그가 태어난 해는 서기전 69년이고, 즉위한 해는 서기전 57년임)이라 몸소 군사를 지휘할 수 있으니, 그가 태기왕과 싸웠다고 가정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도 이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
정리하자면 이렇다. 진의 군주인 태기왕은 서기전 40년, 삼랑진(三浪津)에서 혁거세거서간이 이끄는 서나벌군과 싸웠으나 처참하게 깨졌고(:삼랑진 전투), 변한은 전투에서 이긴 서나벌에 항복했다. 태기왕은 덕고산으로 달아나 서기전 37년까지 숨어 살며 복수할 기회를 노렸고, 서나벌군은 강원도까지 쫓아와 그를 죽여 진(辰)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버린다(:나는 이 전투를 ‘덕고산 전투’로 부르자고 제안하는 바이다).
이후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사실을 확인한 혁거세거서간은 강원도에 수도를 세웠고, 진의 유민들은 서나벌의 지배를 받거나 경상도로 달아난다.
따라서「신라본기」혁거세거서간 21년 조의 기록은 진(:진한)의 멸망 시기와 서나벌이 강원도로 옮겨간 시기를 말해 주는 중요한 기록으로 대접받아야 할 것이며, 횡성군 전설은 ‘역사’로 복권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 교과서는 진한의 멸망을 서기전 37년으로 적어야 할 것이다.
Read : 57, IP : 218.153.157.246
2003/11/03 Mon 00:43:06 → 2003/11/03 Mon 00:47: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