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무슨 용서입니까? 제 질문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저는 더욱 기쁠 뿐입니다.

또 어떤 분이 제 책이 늦게 나오는 것을 걱정하여, 만일 다른 사람의 논문이나 책에 제 설명이 먼저 나오면 어떻하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신데, 저는 먼저 나오든, 나중에 나오는, 누구의 글을 통해서 나오든 전혀 개으치 않습니다. 제가 이것으로 먹고 살 것고 아니고, 명예를 쌓을 것도 아니고,... 제 설명이 어디 나오든 그냥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담로제도의 기원을 '환경사'라기보다는 부여에서 찾습니다.  아마 부여의 통치제도가 이와 비슷하였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1단계] 고대에 국가가 성립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통치제도가 왕족이 직접 통치하는 것입니다.  소규모의 간단한 사회에서는 효과적입니다.

[2단계] 그리고 사회가 발전하고 분화하여 다양해지면 왕족만으로 국가를 유지할 수 없고, 대신에 왕족과 혼인관계를 맺은 사람이 통치하는 것입니다.  담로제도가 바로 여기입니다. 골품제도 이 범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3단계] 마지막으로 사회가 다원화되면 왕족은 오히려 통치에서 물러나고 전문화된 관료가 통치하게 됩니다. 조선시대입니다.

그런데 왜 국내담로를 넘어서 해외담로를 개척하였느냐가 조약돌님의 질문인것 같은데 이는 좀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환경사보다는 해양사와 관련이 깊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용서해 주시겠습니까(<▩가라왕 하지를 둘러싼 문답>에 일도안사님의 질문을 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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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가 백제의 해외 식민지(:담로)건설을 환경사(史)라는 관점에서 분석했는데 일도안사님이 보시기에는 이것이 어떻게 보이시는지도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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