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백제론이 어떻게 해도 흠잡을데 없는 해석의 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반대쪽에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 來渡海破 百殘○○○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2,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  渡海破 百殘□□新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대체적으로 1번정도로 석독한 경우가 많은것 같고,왕건군은 2번처럼

앞에다 붙여서 以辛卯年*신묘년이래로*라는 용법을 강조하였습니다.

1번처럼하면 가 주로 한국학자들에 의해 시비거리가 많은 것을

염두에 두고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위의 해석은 주로 왜가 주어냐 고구려가 주어냐,

또는 가 아니고 변조했다,

가 아니고 변조 되었다,

가 아니고 변조 되었다였는데 ,

일도안사님이 來渡海破가 맞는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어쨌거나 내 관심은,

당시 고구려가

한강백제와 가야,신라(300~340년사이),왜(?)를 부용국으로 삼고있는

담로종주국 삼한백제란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라고 보는건데요.

그런점에서 신묘년이래로 라고 하든,신묘년에 라고 하든

倭以辛卯年 來渡海破 百殘○○○羅, 以爲臣民

<왜(삼한백제)가 391년 영락1년부터 백제,신라,임나(?)를 신민으로 삼았다>로

해석한다면,

그 전에부터 벌써 담로종주국이었던걸 모르고 있었다라는 주장에 빌미를

주게 된다고 봅니다.


물론,반대로 왜(삼한백제)가 종주국임을 인식했음을 강하게 보여 주는 것은

당연히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으로,

백제를 놔두고 종주국인 殘國(삼한백제)을 수군으로 직접 공격하여 화근의

뿌리를 뽑아버린다는 입장으로 볼 수 있다는것과,


일본서기에 있다는 서기404년,응신28년,영락14년 사신방문을 통해 서기400년의 약속위반에 대하여
질책하는 장면도 殘國(일본으로 건너가서도 영향력이 있다고 본 왜)을 종주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고. 동시에 반대쪽에서 이 사건을 왜(삼한백제)가 유지했던 가야,영산강유역등에
대한  느슨한 연방제를 고구려가 인식하지 못했다고도 주장할 수 있지요.


이 부분을  공격의 명분을 서술하다보니 그리하였다라고 볼 수 도 있지만 ,

보다 더 그럴듯한 맥락이 닿는 以辛卯年에 대한 다른 견해가 있을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