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왕 시절을 김상님은 말갈백제라 하여 말갈세력이 한성백제의 중심세력으로
들어온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삼한사의 재조명이나, 네티즌고대사에서 보이신대로
고이왕 시절 갑자기 말갈과 백제가 매우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갈의 묘제라고 보입니다.

왜냐하면 한성에 남아있는 적석총 양식은 전형적인 고구려양식인데 반해
말갈이 고구려 못지않은 적석총을 갖고 있었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러시아측에서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조사한 말갈의 무덤양식을 보면,
토광수혈봉토분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발해건국전후에 말갈의 적석봉토분이
보이긴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양식도 일정치 않구요..

구당서 말갈전에도, "죽은자는 땅을 파고 묻으며, 시신 위에 흙을 덮는다. 관이 없이 시신을 수습한다."
(死者穿地埋之, 以身천土, 無棺斂之具)고 하여 토광묘의 형태로 전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합니다.
말갈 이전의 숙신, 읍루, 물길의 묘제 역시 토광수혈묘로 알려져 있고,
말갈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여진족이나 만주족 역시 적석총 형태의 무덤을 남기지 않고
있습니다.

또 국내에 말갈이 남긴 적석총에 대한 기록이나 발굴도 아직까지 보고된 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고이왕 시기에 등장하는 한성의 적석총 양식의 무덤들을
말갈과 연결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고이왕 대에 말갈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것같다고 해서 곧 말갈이 한성백제의 중심세력으로 들어왔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 될 수도 있고요.

더구나 님께서는 말갈이 고구려의 세력권에 드는 것도 비교적 후대로 보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면 말갈이 애초부터 적석총 양식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한성에 들어와 남겼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것은 현재까지 알려진
말갈의 무덤양식과는 맞지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