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o Korean History+새한국고대사
※첨부파일은 hwp, zip, jpg, gif 만 가능합니다.
2008.10
삼한백제론의 험난한 여정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55411 2008.10.21 22:50:38 (*.142.178.7) 기타5 Comments 311 Views
비전공자이지만 처음 본순간 너무나도 신선하고 멋있어 삼한 백제론 전도사가 되도 좋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2001년에 나온 이 설이 아직도 왜 역사학계에 이렇게 반향이 더딜까 생각하면서 걱정을 해봤습니다.
저는 이 삼한백제론 안지 두달반 됬습니다.
자연과학쪽에서 9번 맞는 소리 하다가 1번만 틀린소리 하면 그 학자는 신뢰도 90%가 아니라,10%로 내려 갑니다.
심지어 퇴출 됩니다.
역사쪽은 구경해보니까 9번 이상한 소리 하다가 1번만 그럴듯한 소리 해도 밥먹는데 지장이 없는 동네라는 느낌입니다.
심지어 10번 내내 이상한 소리해도 그만인 동네인가봐요...
왜냐면 틀렸는지,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없거나 너무 멀리 있다 보니까 일단 우기고 봐도
당분간은 문제가 없는것처럼 넘어가게 되나봐요.....걱정입니다...
그러나 20년후,내가 죽은 후 40년후 까지 생각하면 함부로 책을 쓰기 어려울듯 싶은데 ....
하여튼 지난번 제가 삼한백제론의 핵심인 백제는 담로제이며, 종주국이 금강유역백제였으며,
이 담로제는
주변국가들이 아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주변국의 인식상태로 간접증거 하면
어떻겠냐고 여쭌적이 있었는데요....
궁금해서 제가 직접 중국정사 조선열전을 대략 훑어봤습니다....
진서,송서,남제서,양서,위서,주서,남사,북사,수서,구당서,신당서 순서로 있던데
아마 거의 시대순으로 맞게 정렬한것 같아요..
22담로라고 명백히 기록한것은
양서,
남사,
밖에 없드군요,그것도 중국의 군현제와 같다라고 되있습니다.
담로를 떠올리는 다모라국<其南海行三月 有聃牟羅國 南北千餘里 東西數百里 土多麞鹿 附庸於百濟 > 기사는
북사,
수서,
구당서,
세 곳이구요...
백제의 요서지역 기사로는
송서의 진평현,진평군 기사,
양서의 진평현 백제군 기사,
남사의 진평현 백제군 기사,
남제서의 동성왕 표문과 위군격파기록 ,
네 곳입니다.
사실 많다면 많은 기록이라고 보이기도 한데요....무척 아쉬웠습니다.
특별히 주서는 중국 사서 중에 제일먼저 백제의 정치제도,군사제도,지방행정제도,
군대운영,군사수까지 자세히 또한 사회 전반에 걸친 자세한 안내 기사가 실린 사서인데
<담로>를 보지 못해서 속상했습니다...
아예 22담로나 ,담로관련 아무런 언급도 없어요.....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볼수도 있겠습니다.
1,백제 담로제는 무슨 특별한게 아니라 그 당시 대부분의 국가들이 채택하는 자연스런 국체다,
기록을 해두어야할 대단한게 아니다.
2,중국사서 정리가들이 고의로 백제에 대한 전성기시의 기록을 축소했다.
3,제3국에서 신경쓰지 않을 정도의 국체라서 주목받지 못했다.(일본이 국회의원을
2년마다 뽑든 3년마다 뽑든 우리가 신경쓰지 않듯이)
4,중국사서라고 다 믿냐,조작이 많다
그러나 어느것도 만족 스럽지 않습니다.
..........
흔히 <봐라 22담로제라고 써있다>라고 하는데 이건 설득력이 없습니다....
우선 그들은 읍이라고 썼고 중국의 지방 군현제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군현제가 백제담로하고 같게 운영 되는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먼저 알려주고 인용해야 할듯 합니다.
무엇 보다도 백제담로제를 확연히 인식했다라는 주장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주서에 아예 담로가 언급 안된건 치명적입니다.
주서가 백제에 대해 그렇게 자세히 기원,역사,제도,인구,군대수,군사제도를
꼼꼼히 조사하면서 담로제,<송서,양서,남사,남제서의 요서지역 군사활동 언급>이 없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
다모라국 기사는 몹시 혼돈을 줍니다.
북사가 기록후 수서와 구당서가 그대로 베낀 느낌인데(똑같음),
동시에 22담로라든가 하는 안내만 있었어도 ,
다른 지역 한 곳만이라도 더 소개하면 좋으련만 달랑 하나만 백제의 부용국이다 했고,
그것도 전성기일듯한 5세기6세기가 아니라 7세기 후반 사서들의 기록이므로 반가우면서도
충분조건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백제의 요서활동은 일부 친 환단고기 세력에 의해 백제,신라,고구려가 아예
중국내륙 깊숙히 있었었다라는 주장에 많이 이용 되는걸 인터넽에서 봅니다만,
백제의 담로로 해석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참 어렵네요...
하나도 아니고 네군데 정도고,
또 같은 내용도 아니고(양서,남사는 동일)..
여기에 제일 매달려 보고 싶은데 삼국사기의 삭제문제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여기도 그들이 백제의 담로제를 명백히 인식했다라는 기사로는 다소 미흡합니다.
그럼에도 분명 삼한백제론이 삼국사기,광개토대왕비,일본서기,삼국지위서,삼국유사등이
모순없이 잘 해석되는 훌륭한 틀임에 공감합니다.
모든 중국사서에 다 있어야만 증거일까 ?
한국6,25전쟁은 겨우 100년도 안된 애긴데 정설이 없었지요..
미국이 유도했다,
김일성이 했다.
이승만이 기획했다.
스탈린이 그랬다.
구소련의 기밀문서해제로 정답은 나온거라고 봐야지요...
<처음 김일성의 요청에 부정적이던 스탈린이 49년부터 적극적으로 총지휘하게 되고
마오쩌퉁과 김일성은 충실히 계획을 이행했다...>
는 기록이 해제되니 그거 한권이면 충분하지요.....
주서에 담로제 설명만 있었다면 거의 그런 정도였다고 생각 됩니다.
곧 찾게 될테지요...
뭐 그런 책이나 비석 나오면 좋을텐데요....






담로(다물)는 고구려본기에 가장 자세히 나옵니다. 고구려와 비류국이 통합하는 과정에서입니다. 고구려 동명왕과 비류국 송양왕이 겨루어 고구려가 이깁니다. 그러자 비류국 지배층의 여인(송양왕의 딸)이 고구려 지배층으로 시집오고, 고구려는 비류국 송양에게 그곳의 통치권을 위임하는 형식을 갖추어 두 나라가 하나로 통합합니다. 이것이 담로가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백제는 삼한을 통일한 것입니다. 느슨한 연합체적 통일입니다. 그리고 이는 농경민족적 통합방식입니다.
반면에 신라는 정복을 통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합입니다. 유목민족적 방식입니다. 그런데 신라의 방식이 최종적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중앙집권적 국가의 틀을 유지해왔습니다.
담로가 고구려본기에 처음 출현하는 것은 이것이 본래 부여의 제도였기 때문입니다. 부여왕의 재현이 진왕이고, 진왕의 재현이 일본의 천황입니다. 지방분권적 통치에 적합한 왕들로서 실권있는 왕은 몇 없고 대부분 명목상의 통치자들입니다. 문화는 항상 본류보다 지파가 고형을 오래 보존합니다. 부여의 본류인 고구려에서 사라진 담로제가 부여의 지류인 백제에 남았고, 다시 본류인 한국에서 사라진 담로제가 지류인 일본에 봉건제로 남았습니다.
중국사료에 담로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후한서와 삼국지로서 마한, 진한, 변한이 70여개 정도의 소국(담로)으로 이루어진 통치체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립이 지배층의 혼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삼국사기와 일본서기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진왕제는 담로제가 진화하여 왕실의 계승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즉 진왕제는 담로제의 왕실버젼인 셈입니다.
이 삼한의 소국 숫자가 3-4세기에 별 변화가 없는데 만일 이들이 별개의 국가라면 서로 싸워서 병합하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서울, 경기도, 충남, 충북, 강원,.. 등등 지방구조가 오래가는 것은 어떤 나라의 지방행정구역이기 때문입니다.
삼국사기, 특히 백제본기는 온조왕조부터 전체가 담로 및 진왕제로 뎦혀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삼한사의 재조명2에서 보여줄 것입니다.
제가 과거에 올린 담로관련 글들이 많이 있는데 2개만 소개합니다. 나머지도 검색하셔서 읽으시면 됩니다.
http://www.histopia.net/zbxe/9247
http://www.histopia.net/zbxe/9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