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대하여 전혀 공부를 안하던 사람이(제가)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단지 정리된 걸 찾아 보려고(정리된줄 알고) 어쩌다 한두권 읽다 보니 ,
도대체 정리가 안되있고 설이 너무 분분하여
아직도 이런 동네도 있구나하고 의견이  어떻게 나뉘나 알아보던중
김 상 님의 삼한 백제론은  참 멋진 이론이다,한국삼국시대를 매끄럽게 읽게  해주는  나침반이다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말로 남들에게 내것처럼 말하기에는 너무 어려움을 느낍니다....

대체로 다른 어떤 해석 보다 삼국사기나 광개토대왕비문을  읽는데
삼한백제설은  편안한건 사실이나...
읽는게 아니라 역사로서 실제 이야기로 하려면 뭔가 좀 아쉽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지금이야 먼 옜날 지나간 일이니 그럴꺼다 아니다 하지만 ...
당시 주변국가에서는,
백제는  연방제로 구성되어 있고
금강유역백제가 종주국이고 느슨  하지만  연방제에 들어있는 나라가 어디까지인지
비밀도 아닌 뚜렸한 국체이기에 다  인식하고 있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그런 사례를 역으로 보여주면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사기에 나온 흔적은 김 상 선생님이 일일이 찾아 놓으셔서
그림을 그리긴 하는데 삭제된 곳이 많으니 한계가 있고요...

 

구,신당서나 수서에 있는 <백제는 22담로를 운영한다>는 기사도 하나의 인식 사례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이지 않으므로 답답합니다.
그보다 앞선 중국사서도  하나 같이 백제연방제를 인식하고 기록 했을법 한데 말이죠...

그런 사례로 광개토대왕비문에 영락6년에 한강으로 안가고 수군으로 금강유역으로 공격해 들어간 것 역시
삼한백제운영체제를 주변에서 인지하고 있었다는  좋은 사례로 보입니다......


그런데 영락13년(응신28년)에 일본에 약속위반에 대한 항의를 하고 일본의 설명을 듣고야
다시 영락 17년에 영산강유역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부분은 오히려  고구려가 옆나라의 연방제 운영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거나,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단 반증을 줍니다.....

결국 영낙6년에  당시 고구려는 공격할 나라의 국가운영체계-삼한백제의 연합국가 운영체계-를
충분한 인식 없이 공격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물론 즉시 변동되는 느슨한 담로제(반 독립적 담로제)라고  답을 해도 되지만.....
또는 부흥운동이 일어난것으로 볼수도 있지만......
부흥운동이 일어 났다고 쳐도  일본에 항의했단것으로 봐서는......
그것 역시 그런 느슨한 형태든, 반독립적이였든,  긴밀한 형태든,
주변국가가  옆나라의 운영체계를  국가정보원을 동원할만한 정도의 비밀은 당연 아니여야만 
주변에서 인식하고 있었다는 충분한 증거가 되기때문입니다.

2세기 부터 시작된 백제의 담로제도가
중간에 확장,축소,변형되었을지언정 백제 멸망까지 바뀌지 않았음이 확실 하다면,
주변국들은 구체적으로 함께 그 변동까지 다 알고 있었고 ,
그런 인식을 여기저기 3세기,4세기,5세기  중국사서들에,일본서기에
 구체적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시작부분을 찾아내서 백제사가 정리 되면 더 없이 좋겠지만
삭제되거나 망실된게 대부분일테니 .......어려운 일입니다만...

 

삼국지 위서와 일본서기로 가야연방 신규,편입은  쉽게 설명해 주셨는데요...


뭔가 조금만 더 깨끗하게 정리되면 삼국시대사 노벨상을 타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