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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
2008.10
책계왕 13년조의 한인과 맥인의 침입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54011 2008.10.19 11:05:46 (*.147.81.148) 백제사2 Comments 229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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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장소는 두가지의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백제군이 만주(요동보다 요서)에서 한인과 전투하였거나, 반대로 한인이 한강유역까지 침투해들어와 백제와 전투하였을 가능성 둘 다 입니다. 어느 쪽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고이왕에서 시작하는 백제가 만주에서 왔다고 보면 만주에도 근거지가 있을 것이므로 만주에서 전투하였을수도 있고, 漢人은 한반도 지리를 잘 모를 것이므로 그냥 한인만 들어왔다고 하면 믿기 어려운데 거기에 한반도 지리에 숙지해있을 맥인이 함께 왔다는 기록으로 신빙성을 주고 있어서 한반도에서 전투하였을 가능성 역시 높습니다. 맥인은 고구려세력일 것이므로 한인이 한반도 북부를 통과하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관구검 전쟁 직후에 있었던 기리영 전투도 황해도 남부입니다.
왕이 전사할 정도의 사건이라면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백제본기 책계왕조를 보면 사건의 진행이 다음과 같습니다.
책계왕 1년:
(1) 고구려가 (황해도의) 대방국을 치니 대방국이 구원을 청함.
(2) (대방은 백제의 담로국이었으므로) 왕이 군사를 보내 구원함.
(3) 고구려가 이를 원망함.
(4) (고구려의 복수를 두려워하여) 아차성과 사성을 수리하고 대비함 .
책계왕 13년:
(1) 한인과 (고구려의 명령을 받는) 맥인이 쳐들어옴.
(2) 책계왕이 적을 맞아 싸우다가 전사함.
사건의 진행이 일목요연합니다. 고구려는 그 전에 있었던 백제의 대방국 구원에 대하여 복수한 것입니다. 백제에까지 들려온 고구려가 원망하였다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대강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체에 울려퍼질 정도로 분노했을 것입니다. 고구려는 당시에 주변 여러 국가에 대하여 이미 이이제이 정책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들 고구려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고구려는 그보다 훨씬 대단한 나라였을지도 모릅니다. 아시아에서 후한이나 조위부터 뒤에 나오는 수나 당에 맞서는 것은 오늘날 미국에 맞서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국경까지 맞대고 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인구와 경제력이 월등한 중원국가에 한번 맞서고는 곧 사라지는 북방 여러나라들과는 달리, 수백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고 거뜬하게 버티고 있으니 동아시아 모든 국가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전투의 장소를 구태여 지적하라고 한다면 저는 책계왕 1년조에 나오는 아차성과 사성을 지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