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齊書  列傳
是歲, <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 入其界, <牟大>遣將<沙法名>·<贊首流>·<解禮昆>·<木干那>率衆襲擊虜軍, 大破之.

 백제본기 동성왕 十年 魏遣兵來伐 爲我所敗

김성호님은 <한중일 국가기원과 그역사,맑은소리,2008>에서
북위의 기병 수십만을 이긴 백제군은 백제에서 건너간게 아니라 동청주(산동반도)에 있던 백제번인이였다,
지휘만 백제에서 했다는 설명인거 같아요...

선생님은 영산강 유역 세력이면 충분히 그 병력을 감당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 하신듯 합니다(한반도에서 군대를 파견했다)...
파견했다면 일부만 파견..? 수십만을 파견..?
그런 기병 수십만을 격퇴한 영산강 유역세력이 또 동성왕의 무진주 원정에는  쉽게 항복하는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요....
거기다 삼국사기(구삼국사?)는 자랑스러울법한 騎數十萬을 적어놓지 않은 이윤 또 어떻게 받아 들이면 좋을까요....

수십만 기병이  좀 과장 된건지...
이걸 근거로 일부에선 원래 중국내에 백제가 따로 크게 있었다는 사람들도 있으니...
대륙백제설을 도대체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삼국사기의 삼한백제관련서술 삭제원칙에 따라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게 선생님 말씀인데요..
일본서기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나요..이부분이.
자세한 안내 부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