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o Korean History+새한국고대사
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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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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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
2008.10
초고왕,책계왕조의 의문점..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44073 2008.10.02 19:42:16 (*.142.178.7) Q&A2 Comments 378 Views
선생님의 책을 읽고 삼국사기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어 너무 너무 감사 합니다.....
기초가 부족하여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에도 그림이 잘 안그려집니다.....
김 운회,대쥬신을 찾아서,라는 책에서
초고왕2년, 신라의 <2만>군사동원은 믿기 어렵다....서기 168년의 신라의 국력이..?
책계왕 13년,한이맥과함께 침략하였다 는것을 이해하기 어렵다....(이병도 주:한을 낙랑,맥을 동예)
삼국사기는 믿을 수 없는데가 많으니 다른곳도 믿을수없다....그런말이 되네요...
선생님이라면 멋지게 전후맥락을 설명해 주실 수 있을것 같아서 여쭙니다...






<< 2세기의 위화도 회군 >>
질문하신 부분은 초기신라 박씨 마지막 왕인 아달라이사금시절에 신라가 3만에 가까운 대군으로 한강유역에 쳐들어갔다가 돌아온 후, 신라의 왕통이 박씨에서 석씨로 바뀌는 부분입니다.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신라사에서 아주 중요한 곳입니다. 읽으셨다는 글에서도 저자가 신라사의 박씨 -> 석씨로의 중대한 왕통전환을 지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려 말에 신흥세력인 명을 상대로 요동정벌군을 보낸 것은 무리한 일이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위화도 회군은 조선 성립의 직접적인 사건입니다. 만일 누가 위화도 회군이 거짓이었다고 주장하려면 이성계에 의한 조선의 성립을 부정해야 할 것입니다.
2세기 후반 일길찬 흥선이 지휘하는 2만 신라군의 한강유역 회군은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이전에 비견할만한 중대한 사건입니다. 이로써 신라의 박씨 왕통이 끝나고 벌휴이사금에 의한 석씨왕조가 시작됩니다. 석씨왕조를 성립한 벌휴이사금이 한강유역에서 회군한 흥선입니다. 흥선이 한강유역 회군으로 신라의 실권을 장악하였으나 자신이 직접 신라를 통치하기 시작한 것은 아달라이사금 21년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아달라이사금은 31년에 죽는데 21년부터 10년간 기록이 없습니다.
하지만 질문의 요점은 당시 신라의 객관적 군사력일 것입니다. 신라인 자신의 말이 아닌 제3자로부터 확인이 가능한 근거들입니다. 맹수의 왕이라는 사자의 능력을 알아보는데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사자 자체의 말을 믿기 어려우면 그와 비슷한 능력으로 간주되는 호랑이의 능력을 통해서도 사자의 말을 검증할 수 있습니다. 즉 2세기 후반의 백제가 어느 정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느냐를 통해 그와 맞서던 신라의 군사력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첫번째로 보는 것은 자치통감 같은 중국 기록입니다. 한강유역 회군이 있기 전인 2세기 중반에 요서에 백제군(마한)이 등장하여 후한과 전쟁을 치룹니다. 그 백제와 맞서려면 신라도 그에 상당하는 군사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라의 군사력을 부정하려면 마한(삼한백제)의 군사력을 부정해야 하고, 그러면 이와 연관된 당시 후한의 군사력도 부정해야합니다.
두번째로 보는 것은 당시 왜국입니다. 2세기인 173년에 비미호가 쿠데타에 성공하고 맨 먼저 하는 것이 아달아이사금의 신라에 사신을 보내 정권의 추인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미호는 6년간의 내란을 거친후에야 비로소 즉위합니다. 따라서 비미호1년=179년이지요. 비미호의 바다 건너 왜국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오는 이유는 이 왜국이 임나가야인들이 바다를 건너가 세운 가야사의 연장이기 때문입니다.
<< 3세기의 백제와 漢人의 만남 >>
다음 질문은 3세기 후반의 백제가 한인 및 맥인들과 전투를 벌였느냐입니다. 아마 질문의 요점은 맥인이 아니라 한인이고, 여기서 한인은 당시 북중국을 통치하던 조위일 것입니다. 문제가 되는 3세기 후반의 사건 앞뒤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로 앞입니다. 3세기 중반에 고이왕은 고구려를 침략한 위군을 견제하기 위해 위군의 배후인 낙랑군을 공격합니다. 낙랑군이라면 백제의 입장에서 한인일 것입니다. 삼한백제는 이 사건 직후 또 기리영을 공격하지요. 그러면 당시 백제인이 한인을 만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뒤인 4세기 초입니다. 요서에 백제가 등장합니다. 중국사서에 백제라는 명칭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이 요서백제입니다. 아예 강력한 군대와 영토를 가지고 등장하지요. 강력한 군대가 장기간 주둔하면 영토가 따라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중국사서도 이때 부터는 삼한이란 명칭대신에 백제로 호칭하는 것입니다.(4세기 진서를 보면 중부이남 한반도의 통치자는 백제왕이나 아직은 백제전이 아니라 삼한전입니다) 당연히 백제가 漢人을 만났습니다.
자, 그러면 그 가운데인 3세기 후반에 백제와 북중국세력이 만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없겠습니까? 앞뒤가 되는데 그 중간이 안 된다면 오히려 이상하지요.
우리는 고대인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5백년동안 바다를 막아놓고 살았고, 현재도 북쪽이 막혀있어서 우리는 섬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의 우리 환경이 과거에 대한 해석까지 구속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