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언제부터 국립동식물원을 가지고 있었을까? 이는 그 나라의 생물학이나 의학수준과 연결되는 문제이다. 사냥은 재배가 아니므로 제외하고, 농사와 양잠도 크게 보면 여기에 들어가지만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아니다.

과천 서울대공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식물원인데 안타깝게도 그 연혁에 우리나라 동식물원의 역사에 대한 설명은 없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우리나라는 최근에야  국립동식물원을 운영하는 나라인 줄로 오해하기 쉽다.


“서울대공원은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지구촌 동물가족들의 보금자리이다. 동물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곳의 기후, 환경조건에 따라 30여 개 구역으로 나뉘어 생활한다. 84년 개원 이후 지금까지 희귀 야생동물을 비롯한 전 세계의 3백60여종 3천2백여 마리의 동물을 사육하고 있다. ... 2000년 4월 국내 최초로 환경부의 야생동물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 6월에는 국제종정보시스템 및 세계동물원기구에 가입하는 등 세계 10대 동물원으로서의 규모를 인정받고 있다.” -야후사전


기록에 전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동식물원을 개설한 사람은 누구일까? 민가에서 운영하는 사립동식물원은 기록이 없어 모르지만 다행히 국립동식물원에 대해서는 삼국사기가 기록하고 있다.


백제 진사왕 7년(391년);  봄 정월,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기이한 새를 기르며 색다른 화초를 가꾸었다. 

현재까지의 기록으로 보면 우리나라 국립동물원의 시조가 1600여년 전의 백제 진사왕인 셈이다.

391년은 백제에게 시기적으로 복잡한 해였다. 외부적으로는 고구려와의 전쟁이 치열해지고, 내부적으로는 삼한백제의 진왕 응신이 전 해에 즉위를 했으나 자립위왕을 못해서 곤란을 당하고 있었다. 응신은 침류왕의 딸을 왕후로 세우고 자립위왕 하려고 했으나 그가 즉위를 하였을 때는 침류왕 대신에 그 동생인 진사왕이 왕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때 진사왕은 2장의 패를 들고 있었다. 하나는 고구려를 막을 백제군의 주력이 자신의 군대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자신의 딸이 아니면 응신은 자립위왕을 못하고 계속 왕세자를 칭하고 기다려야할 입장이라는 것이었다.

이때 세워진 것이 국립동식물원이다. 진사왕은 패를 들고 게임을 하는데 욕심을 내서 할아버지인 근초고왕을 따르게 된다. 즉 자신이 직접 자립위왕하고 백제왕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험은 관미성이 함락되면서 파국을 불러왔다. 진사왕도 몰락하지만 여구-여휘-응신으로 이어지는 백제 진왕가도 왜국으로 쫓겨나게 된다. 모든 상황이 정리된 416년에 전지왕은 한성백제사 최초로 중국왕조로부터 백제왕의 책봉을 받아내고 자신이 백제왕이 되었음을 대내외에 공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