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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중국의 무왕의 왕비에 대한 견해를 보고

백제사 조회 수 128 추천 수 0 2018.03.20 07:47:45
一道安士 *.3.199.170


우선 뉴스를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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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백제사를 전공한 노중국 계명대 명예교수는 9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리는 백제학회 학술회의에서 백제 무왕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학술회의에 앞서 배포된 발표문에 따르면 노 교수는 논쟁거리인 무왕의 부친에 대해 선왕인 법왕(재위 599∼600)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노 교수는 "삼국유사 파른본 '왕력'(王曆)편에는 전왕과 현왕의 관계를 아들이나 동생으로 모두 표기하고 있는데, 무왕은 아버지 표기가 없으므로 법왕이 부친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615∼682)의 묘지명(墓誌銘·죽은 사람의 행적을 돌이나 도자기에 새긴 유물)에도 할아버지 '장'(璋·무왕의 이름), 아버지 '의자'(義慈)만 있고 증조부에 대한 표기가 없다며 "지금까지 확인된 백제 유민의 묘지명 11건 중 8건에 증조부가 기록돼 있다는 점에서 무왕은 법왕의 아들이라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무왕의 어린 시절 이름이 마를 캐는 아이를 뜻하는 '서동'(薯童)이었으니 그는 비천한 집안 출신이었을까.


이에 대해 노 교수는 "왕족이 아니면 왕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왕은 조선 철종처럼 몰락한 왕족의 후손이었다"며 "무왕은 본래 왕의 성인 '부여'씨에서 갈라져 나온 '귀실'씨였으나, 왕위에 오른 뒤 부여씨로 환원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노 교수는 2009년 부여 미륵사지석탑에서 사리봉안기가 나오면서 촉발된 무왕의 부인 논쟁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미륵사지는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가 창건했다고 알려졌으나, 사리봉안기에는 백제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라고 기록돼 있다.


그는 "의자왕이 595년을 전후해 태어났다고 가정하면, 당시 무왕은 왕이 아니었기에 공주나 귀족과 결혼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익산 지역의 유명하지 않은 가문 출신 여성과 혼인해 의자왕을 낳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교수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결혼과 관련해서는 백제와 신라가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양국 간 혼인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반론을 인정하지 않고 왕권강화책의 하나로 혼사가 성사됐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러면서 고구려 안원왕이 세 명의 부인을 둔 사례를 근거로 의자왕의 모친, 선화공주, 사택적덕의 딸이 모두 무왕의 부인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629년 미륵사 중앙에 목탑을 짓고 10년 뒤 동쪽과 서쪽에 석탑을 조성했다고 설명한 뒤 "목탑이 화재에 취약하다거나 오래 보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석탑을 만든 것은 아니다"라며 "사택씨 왕후가 무왕의 장수를 간절히 바라며 썩어 없어지는 목탑 대신 영구한 석탑을 제작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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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에 대한 의견 중에 저와 몇 가지가 다릅니다. 삼국사기 기록과 진왕제의 시각으로 보느냐(일도안사) 아니냐(노중국)의 차이입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무왕을 法王之子라고 하고 있는데, 노중국 교수님은 부여융 묘지석에 증조부인 법왕의 기록이 없어 무왕이 법왕의 아들이 아닐 것이라고 추정하십니다.


삼국사기는 법왕을 惠王之<長子>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혜왕이 자립위왕에 실패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2년 만에 죽은 것입니다. 진왕제 기록인 5세기 일본서기를 보면 2년 이내에 못하면 권력이 급격히 약화된다. 근초고왕 역시 2년째에 권력이 약화되어 조정좌평 진정이 대리통치를 하는데 이것은 정확한 기록입니다.


법왕도 2년 만에 죽었는데 法王之子만으로는 판단이 어려우나, 그도 2년 이내에 왕후를 세우지 못해서 권력이 약화되었고, 그 약화된 권력을 버텨낼만한 힘이 없어서 일찍 죽었을 것입니다. 부여융의 증조부인 법왕이 자립위왕을 못한 것이 부여융 묘지석에 법왕이 없는 이유라고 봅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왕이 부자관계가 아닐 경우에는 第二子라고 합니다. 그냥 00之子는 다 부자관계입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고구려 안원왕의 예는 잘못든 예라고 봅니다. 삼국유사는 좀 더 확인해보겠습니다. 


노중국 교수님은 의자왕을 무명의 여인이 낳은 아들이라고 하나 삼국사기는 의자왕을 武王之元子라고 하였습니다. 원자란 아버지를 자립위왕 시킨 왕후가 낳은 아들일 경우에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어머니가 평민이면 자립위왕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의자왕은 선화공주의 아들이라고 봅니다. 


미륵사지에서 나온 사택적덕의 딸이 무왕의 마지막 왕후로 교기왕자(훗날의 천지천황)의 어머니입니다. 의자왕 집권 후 자기 아들과 함께 왜국 추방됩니다. 40여명의 왕족 및 귀족들과 함께 가는데 이들이 소아왕조를 끝장내고 왜국의 권력을 잡습니다.  


"백제와 신라가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양국 간 혼인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반론을 인정하지 않고 왕권강화책의 하나로 혼사가 성사됐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 왕권강화책이라는 점은 저와 같으나 왜 하필 신라왕녀와 결혼해야 왕권강화책이 되느냐에 설명이 다릅니다. 이는 진왕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왕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비극(자립위왕에 실패하여 단명하게 된 것)을 되풀이 하지 않고 안정된 왕권을 유지하려면 가장 강한 소국과 혼인하여 공립형식을 갖추는 것뿐입니다.


같은 대상을 놓고 판단하는데 그 판단자료가 무엇이냐가 저와 노중국 교수님의 차이입니다. 진왕제의 입장에서 보면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무왕뿐만 아니라 백제본기에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왕들에 대하여 일관된 원칙으로 출신과 배경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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