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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군의 위치로 보는 낙랑군의 위치

백제사 조회 수 217 추천 수 0 2018.02.12 16:37:30
一道安士 *.232.249.91
낙랑이 만주에 위치하느냐(요하유역이 주류설이고 난하유역설도 있음) 한반도에 위치하느냐(대동강유역이 주류설이고 함흥설도 있음)의 논쟁은 뿌리가 깊다. 근대 이전부터 논란이 된 사항인데 그 이유는 사료가 이분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낙랑군의 위치를 몰라도 대방군이 낙랑군의 남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대방이 어디인지 알면 낙랑의 위치도 나온다.

낙랑군의 설치는 BC 2세기로 삼국의 건국 전이라 삼국사기에 안 나온다. 반면에 대방군의 설치는 3세기 초로 삼국사기의 시기다. 따라서 삼국사기에 대방군의 설치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나온다. 삼국사기는 대방의 건국부터 멸망까지 3세기 약 100년에 걸쳐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지금도 대방군 설치로 인해 발생한 고고학적 유적을 서울에서 지하철 타고 가면 볼 수 있다. 삼국사기가 기록한 3세기 초 대방군의 설치 과정을 살펴보자.

건국초부터 후한과 계속 충돌하던 2세기 고구려에 해씨에서 고씨로 정권이 바뀐다. 그런데 건국 초부터 끊임없이 백제를 공격하던 말갈이 2세기 중반에 갑자기 공격을 중단하고, 초대 고씨왕이 남해 바다를 3개월 다녀온다. 이 직후 요서에 마한군이 나타나 고구려군과 연합하여 후한군과 전투를 한다.

이때 나오는 유명한 기록이 백제의 다섯 장군이 신라를 구원한 기록이다. 말갈이 백제는 공격하지 않으나 신라는 공격하자, 신라 지마이사금은 말갈을 막으려 하지 않고 대신 백제에 구원을 청한다. 백제가 다섯 장군을 보내 신라를 구원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말갈군이 신라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철수한다.

전쟁에서 후퇴를 모르던 말갈군이 소문만 듣고 철군한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말갈군 지휘부는 고구려 정부에 이 상황을 보고하자, 국내성의 고구려 정부가 철군명령을 내린 것이다. 요서에서 백제(마한)와 힘을 모아 후한과 맞서는데 백제의 일파인 한성백제의 심기를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다. 

당시는 백제가 아직 마한만을 통치할 때다. 따라서 요서에 마한만 나와야지 진한군이나 변한군이 나오면 모순이다. 말갈의 위협이 사라지자 웅진의 진왕 백제 정부는 한반도 남부 통일에 나서 3세기 초에 사로국(신라)과 우유국(울릉도)을 제외한 변진한을 통합한다. 진왕의 백제가 변진한을 통합하는 과정이 일본서기 신공황후조에 상세히 나온다.

이후 약 70년 동안 말갈의 공격이 없다가 203년부터 신라와 백제에 말갈이 출현하여 공격이 시작된다. 약 20년간의 전쟁이 계속되다 229년에 말갈과 백제의 전투가 말갈의 승리로 끝난 후 더 이상 전투가 없다. 그리고 한성백제에 말갈정권이 들어서는데 그것이 고이왕 정부다. 이후 백제의 모든 제도가 고구려식으로 바뀐다.

203년은 공손도의 마지막 해로 그의 아들인 공손강이 대방군을 설치하기 시작한 해다. 새로운 군의 설치란 군사적 정복이다. 요동반도의 둔유현 남쪽 황무지에 대방군이 설치되자 요동반도의 고구려 변방인들이 대규모로 한반도 서부로 이주하여 상대적 힘의 공백지대였던 황해도와 경기도에 정착하는데 그것이 70년 만에 신라와 백제에 나타난 말갈의 대공습이다. 대방인의 주류는 한강유역으로 내려왔다고 본다. 

더 못 내려간 이유도 삼국사기에 나온다. 백제에 막혀 못 내려간 것이다. 이후 백제와 손잡고 백제의 일부가 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고이왕 5년(238), (가)春正月, 祭天地, 用{鼓}吹. (나)二月, 田於<釜山>, 五旬乃返. (다)夏四月, 震王宮門柱, 黃龍自其門飛出.
(가) 봄 정월, 악기를 사용하여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냈다. 
(나) 봄 2월, 왕이 부산에서 사냥하다가 50일 만에 돌아왔다. 
(다) 여름 4월, 왕궁의 문기둥에 벼락이 치자 황룡이 그 문에서 날아갔다. 

(가) 피리를 비롯한 악기를 사용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은 고구려벽화 대행렬도에 나오는 고구려식이다.
(나) 사냥은 군대와 무기를 동원하는 행사다. 이 부산은 서울 남쪽 화성 부근으로 여기서 진왕의 백제에게 막혔다. 50일간의 전투가 있었다고 본다. 이 곳은 두 백제의 경계로 훗날 진사왕이 죽은 곳이기도 한다. 
(나) 삼국유사를 보면 이때 사반왕이 죽고 고이왕이 왕이 된다. 왜 하필 이때 왕이 되느냐에 대한 답은 그 직전 50일간 부산에 내려간 것이다. 왕이 수도를 무려 50일을 비우는 것은 부산에 대단히 중요한 일이 있었다는 뜻이다. 

상식적인 추론은 백제와의 전투가 교착상태에 빠지자 고이왕은 백제왕(진왕)에게 한성백제의 통치권을 인정받고 서울로 돌아와 사반왕을 제거하고 왕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때부터 말갈은 백제의 일부가 되어 고이왕의 군대는 백제의 신라 공격에 동원된다. 

대방인들이 203년 이후 지속적으로 한반도로 이주해왔고, 강화도를 포함하여 한강 북쪽을 다 점령하는데 20년이 걸린 것이다. 이때부터 한강변에 요동반도의 기단식 적석총이 대규모로 축조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요동반도의 묘제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한강유역에만 남아있는 이유다. 즉 석촌동 초기 백제 고분군은 대방군 설치의 고고학적 흔적이다.

대방인들이 요동반도에서 한강유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자 대방이 요동반도와 한반도 중부에 분포하게 되었고, 공손씨 정권은 공손모와 장창 등 관리를 보내 한반도 대방에 대한 통치를 지속하고자 한다. 경기도로 내려온 말갈은 백제의 마한에 흡수되고, 황해도에 남은 말갈은 대방국을 세우게 되니 이것이 황해도 대방의 시작이다.

대방국 시조는 보과 공주의 아버지인 나갈이다. 고이왕 이후 한성백제가 대방을 돕는 것은, 단지 혼인했기 때문이 아니라, 본래 한 뿌리였기 때문이다. 이후 3세기 후반에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고구려에 흡수되고, 대방 왕족은 서기 300년에 신라에 귀복함으로써 황해도 대방의 역사가 끝난다. 이후 4세기 초에 고구려는 황해도에 장수산성을 쌓게 되는데 남평양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에 요동반도의 대방은 314년에 고구려 미천왕의 공격을 받고 요서로 쫓겨난다.

황해도의 대방은 요동반도의 대방이 이동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도 석촌동에 서있는 요동반도의 초기 고구려식 고분군은 대방군이 요동반도에서 한반도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고고학적 증거라고 생각한다.

2백 년 전에 있었던 대방군보다 훨씬 더 큰 낙랑군 설치는 만주에서 대동강유역으로 낙랑의 주류가 이동하는 민족이동을 불러왔을 것으로 본다, 특히 대동강유역은 고조선의 준왕이 이미 백성들을 이끌고 천도하여 마한을 건국한 곳이라 이주의 부담도 적었을 것이라 본다.

대동강유역의 낙랑이 고구려의 영토로 완전히 굳어진 것은 3세기 중반에 있었던 고구려-위 전쟁이다. 전쟁이 끝나고 <2년 후> 동천왕이 천도한 평양은 지금의 평양이다. 그러니 이후 대방군에 대한 압력이 시작되고, 대방을 정복한 후 정복지인 황해도에 장수산성을 쌓는 것이다.

313년에 고구려 미천왕에게 공격받은 낙랑군은 요동의 낙랑군이다. 만일 이 낙랑군이 대동강의 낙랑군이라고 하면, 고구려는 대규모 선단이나 항공기를 통하여 낙랑을 건너 뛰어 황해도에 장수산성을 쌓는 인력과 재료를 공수해야 한다. 314년에 고구려에게 공격받은 대방군이 황해도라면, 고구려는 이미 장수산성을 쌓고 있는 자기 영토를 공격했다는 모순이 된다.

대동강유역은 2세기 중반에 말갈군이 백제 다섯 장군이 신라를 구원한다는 소문을 듣고 철군할 때 이미 고구려의 영향 하에 있었다고 본다. 삼국사기는 낙랑과 대방의 기록에 대하여 전혀 모순이 없고, 고고학적으로도 일치하며, 아주 논리적이다.

[질문] 로마의 수도는 어디에 있었는가? 
(1) 이태리 반도, (2) 발칸반도

고대 서로마 제국의 수도는 이태리 반도에 있었고, 중세 동로마 제국의 수도는 발칸반도에 있었으므로 둘 다 맞다. 낙랑이 만주에 있었느냐, 한반도에 있었느냐도 같은 질문이라고 본다. 싸울 필요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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