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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사학과의 임나 위치 비정에 관한 의견

기타 조회 수 213 추천 수 0 2018.02.06 16:38:40
一道安士 *.232.249.91

최근 인하대 사학과 연구팀이 임나의 위치를 한반도 남부가 아니라 대마도로 비정했다는 뉴스를 보고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그 연구결과에 대한 내 의견을 주석 형태로 달아보았다.


[출처] 인하대 연구팀 "일본 주장 임나는 가야가 아닌 대마도"


임나(任那)는 가야가 아니라 대마도였다는 새로운 주장이 인하대 연구팀에 의해 제기돼 주목받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현 대마도를 현지 조사한 인하대 고고학과 답사팀은 조선총독부 관변 학자들이 주장한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이 허구임을 실증했다고 29일 밝혔다.


=> 새로운 주장이 아니고 50년 전인 1970년대 이전에 이미 나왔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 학자들은 '일본서기' 신공황후 기록을 인용해 신라를 정벌한 365년부터 200년간 식민통치기관인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한반도 남부는 일본의 식민지였고, 북부는 한사군에 의해 지배됐으므로 일제의 식민통치도 한국의 원래 상태로 돌아간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식민사관의 핵심 논리였다.


=> 일본서기 중애 9년에 기록된 신공황후의 신라정벌은 365년이 아니다. 중애 9년은 서기 173년이다. 역사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건 연도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다음 기록이 신공황후 정벌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여기서 왜국이란 오사카로 천도한 과거 여구왕, 여휘왕 등의 비류를 잇는 진왕의 백제고, 신라란 3세기 말에 망했다가 4세기 중반 고구려-연 전쟁 중에 연나라 군으로 참전했던 흉노계 선비족을 중심으로한 북방 유목민족이 남하하여 건국한 신흥국가다.


일본서기 

응신 16년(응신 16년과 19년은 모두 401년이다), 8월 平群木菟宿禰・的戶田宿禰(숙녜란 백제의 중앙관료 명칭이다. 한성백제는 좌평이었다)를 加羅에 보냈다. 그리고 날랜 군사를 주면서 詔를 내려, “襲津彦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반드시 신라가 막고 있기 때문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빨리 가서 新羅를 공격하여 그 길을 열라”고 하였다. 이에 木菟宿禰(훗날의 윤공천황, 왜왕 제) 등이 날랜 군사를 거느리고 진격하여 新羅의 국경에 다다르자, 新羅王(내물이사금)은 두려워하며 그 죄를 自服하였다. 그래서 弓月(훗날의 인덕천황, 왜왕 찬)의 人夫(백제 120현민)를 거느리고 襲津彦과 함께 돌아왔다.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남창희 교수 연구팀은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된 일본서기 중애천황조 기록을 정밀 분석한 결과, 논리적 모순을 다수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서기에는 당시 바닷물이 나라 안으로 들어와 겁을 먹은 신라왕이 항복했다고 기록됐지만, 동해는 원래 조수간만의 차이가 별로 없는 지역인 데다 해발고도상 신라의 수도 경주는 밀물이 들어 올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이다.


=> 나는 논리적 모순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중애천황은 2세기 중후반으로 당시는 김해평야가 바다였다. 신라가 왜군과 싸운 목출도 같은 섬이 당시의 김해 바다에 있었고 지금은 어떤 산일 것이다. 경주의 남쪽에서 바다물이 밀려들어온 것이지 동해의 물이 밀려들어온 것이 아니다.  2천 년 전의 사료를 해석하려면 2천 년 전의 지형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데 오늘의 지형으로 해석하려니 될 리가 없다.


경주 시내 형산강(서천)의 둔치 해발고도가 28m이고 시내 평지 표고는 30~40m에 달한다. 4세기까지 부산과 김해 등 남해안 지역은 가야 세력권이라 신라와는 무관하므로, 한반도에서는 신공황후 신라정벌설에 해당하는 곳이 없다는 지적이다. 연구팀이 지난 3년간 주목한 것이 고구려·백제·신라가 각각 대마도에 세력권을 나누어 갖고 있었다는 부산대 이병선 교수의 주장이다. 


=> 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벌했다는 중애말년은 173년이다. 이 해에 왜국에 정변이 발생하여 새로 왕이 된 비미호가 신라에 사신을 보낸 기록이다. 본래 일본서기에는 400년부터 402년 사이에 고구려군의 공격으로 신라 땅에 갖힌 백제 피난민들을 구하고자 응신의 왕후가 구원병을 보내 내물이사금을 위협한 기록이 있었다. 일본서기 편자들은 신공황후조를 만들어 173년에 죽은 중애와 390년에 즉위한 응신 사이의 공백을 연결시키고자 했다. 앞부분은 응신의 왕후였던 중희의 기록으로 채우고, 뒷부분은 비미호의 기록으로 채웠는데, 이때 신라정벌 기록을 비미호와 신라가 접촉한 173년에 옮겨 기록한 것이다. 


후쿠오카에서 출발한 원정함대가 상륙작전을 할 곳은 대마도와 이키섬 두 지역밖에 없었다. 대마도 아소만의 와타스미 신사의 수중(水中) 도리이(신사의 입구문)는 만조 때 최대 2m 물에 잠길 정도로 대마도는 뚜렷한 조수간만 현상이 발견된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기록 기해월 신축일을 조수간만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계산해 보면 그날부터 3일간 만조였고, 당시 후쿠오카에서 배로 사흘 걸리는 대마도 서쪽에 사리 현상이 있었다. 한국천문연구원 양홍진 박사가 반복적으로 데이터 입력해 나온 결과라는 것이다. 신공황후가 정벌했다는 신라는 한반도의 신라가 아니고 대마도 서쪽 연안의 신라계 세력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게 답사팀이 내린 결론이다. 


=> 2세기 비미호와 5세기 응신의 왕후 기록에서 옮겨온 신공황후의 신라정벌설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비미호의 사신기록, 내물이사금의 사망연도, 광개토왕비문의 고구려군 신라지역 원정 등 다른 기록에도 나온다. 이와 반대로 이 직후 신라가 바다를 건너 왜국을 정벌한 기록도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 동시에 나온다.


답사팀은 대마도의 서북 좌호만(左�灣) 지역이 작은 성읍국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고 북쪽 지역에서 신라계 토기가 많이 발견된 사실도 확인했다. 같은 일본서기 숭신천황 65년 기록에는 임나가 후쿠오카에서 2천리 가량 떨어져 있고 신라 경주의 서남 방향에 있으며 북쪽은 바다로 가로막혀 있다고 기록됐다.


=> 2세기에는 김해평야가 바다여서 부산지역은 긴 반도였고 북쪽이 바다로 막혀있었다. 석탈해가 선단을 이끌고 신라에 상륙한 것도 동해 바다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김해와 부산사이의 바다를 선단으로 통과해 경주 남쪽에 상륙한 것이다.


고려대 최대석 명예교수와 북한의 김석형 등은 이 기록을 정밀 분석한 결과 대마도가 임나라고 비정한 바 있다. 신공황후는 신라를 정벌한 것이 아니라 대마도 서북쪽 신라계 성읍국가를 공략했고, 이곳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고 보는 게 논리적이라는 것이다. 남 교수는 "군사고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신공황후의 원정군은 상륙작전이 용이하도록 만조 수위가 가장 높을 때 만 입구에서 군사력 시위를 하는 심리전을 구사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대마도도 임나의 영역이었으나 임나가 대마도는 아니다. 신공황후조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서기의 사건 연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는 "365년 당시 한반도의 국제정세를 놓고 정치군사 게 임 (PolMil 분석)을 하면, 신라는 대마도의 신라계 세력을 공격하는 백제의 동맹국 왜의 공세에 대응하기 어려웠다"며 "가야와 동맹한 백제의 해군력이 우월했고 백제가 김해나 부산 지역에 현존함대(Fleet in Being) 전략으로 신라 지원 수군을 묶어 두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 365년에 일본열도에는 국가가 없었다. 일본서기에 365년의 일본을 설명하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일본서기의 4세기는 영락 6년에 잔국이 토벌되어, 잔국 왕실이 왜국으로 천도하는 396년 9월부터 나온다. 그 전의 4세기에 일본에 관하여 아직 아무런 기록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고고학적으로도 일치한다.


창원대 정유영 학장은 "일본의 우익정권이 계속되면서 후소샤 등 극우 교과서 출판사가 임나일본부설을 다시 주장하는 가운데, 그 허구성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게 된 것은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역사연구에서 비논리적 해석을 하는 이유는,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고, 편견이 합리적 사고를 가리기 때문이다. 이 정도 해석 능력이면 일본서기뿐만 아니라 삼국사기도 읽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댓글 '1'

백휘성

2018.02.07 02:00:07
*.44.175.28

이부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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