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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역별 지배층의 묘제

백제사 조회 수 149 추천 수 0 2017.10.19 06:05:07
一道安士 *.3.199.170
남제서에서 동성왕이 책봉을 요구한 인물들 중 호남지역이 나오는 경우:

(1) 여씨
여고(餘古) - 아차왕(阿錯王)
여력(餘歷) - 매로왕(邁盧王)
여고(餘固) - 불사후(弗斯侯)
(2) 목씨
목간나(木干那) - 면중후(面中侯)
(3) 사씨
사법명(沙法名) - 매라왕(邁羅王)
(4) 해씨
해례곤(解禮昆) - 불중후(弗中侯)
(5) 기타
저근(姐瑾) - 도한왕(都漢王)
찬수류(贊首流) - 벽중왕(辟中王)

마지막인 벽중왕을 제외하면 모두 영산강유역입니다. 찬수류는 벽중왕인데 이곳은 김제지역으로 전북지역인 만경강/동진강 유역입니다. 한강유역 성씨인 해씨가 영산강유역인 불중(광주)에 단 한번 나오나 이는 예외적인 경우고 대부분이 영산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전남북 지역입니다. 목씨나 사씨는 예가 한 번 뿐이라 확신하기 어려우니 부여씨는 분명 영산강유역입니다.

동성왕대 백제가 중앙에서 지방으로 파견한 관리는 드물고 대부분이 그 지역 담로주를 후왕으로 책봉하여 해당지역 통치권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동성왕이 498년에 지금의 나주-광주 지역인 무진주에 출병하여 이들을 무력으로 제압합니다. 만일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라면 바꾸면 되므로 무력으로 제압할 필요가 없습니다. 

BC 1세기에 영산강유역에 출현한 옹관묘집단이 왜 그렇게 6세기까지 오래 묘제를 유지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지배층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들의 묘제가 전축분부터 전방후원분까지 다양한지도 알 수 있습니다. 옹관묘는 봉분 하나에 수십~수백년에 걸쳐 많은 사람을 떼로 묻는 떼 무덤의 일종으로서, 엄밀히 말하면 묘제가 아니라 고대의 납골당이기 때문입니다. 고유 묘제가 없기 때문에 묘제로부터 자유스럽고 당시 그 지역에서 유행하던 묘제를 쉽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들은 웅진시대 이후 점차 수도권인 금강유역으로 이주하여 사비시대에는 영산강유역이 쇠퇴합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왕족
 
부여씨 – 영산강유역, 왜국 이주; 
묘제: 옹관묘, 전방후원분, 전축분, 석실분; 餘古(팔중후), 餘固(불사후), 여력(매로왕) 등, 
 
팔성대족(시대에 따라 변동)
 
목씨 – 영산강유역, 왜국 이주; 묘제: 옹관묘, 전방후원분, 석실분; 4세기 기각, 5세기 목라근자, 목간나(면중후), 6세기 소아마자, 7세기 소아입록 등,
사씨 – 영산강유역; 묘제: 옹관묘, 전방후원분, 석실분; 5세기 사법명, 7세기 사택지적 등, 

백(묘)씨 - 금강유역; 묘제: 토광목곽묘, 횡혈식 석실분, 수혈식 석곽묘; 5세기 백가 등, 
연씨 – 금강유역; 묘제: 토광목곽묘, 횡혈식 석실분, 수혈식 석곽묘; 5세기 연신 등, 
국씨 – 금강유역; 묘제: 횡혈식 석실분; 7세기 국지모 등,
협씨 – 7세기 금강유역 추정; 묘제: 횡혈식 석실분;
정씨 - 7세기 금강유역 추정; 묘제: 횡혈식 석실분;

해씨 – 한강유역; 묘제: 만주형 목관묘; 5세기에 금강유역으로 남하한 후 소멸, 
진씨 – 한강유역; 묘제: 고구려식 적석총(금강이남에 없음); 5세기에 금강유역으로 남하한 후 소멸,

*해씨 묘제는 아래 참조
차윤환; 古文化 第82號, 2013.12, 33-60 (28 pages)

금강유역이 수도였기 때문에 귀족들 중에서 숫자로는 가장 많습니다. 하지만 지배성인 부여씨, 목협씨, 사택씨가 영산강유역입니다. 영산강은 배를 이용한 한중일 해상교통의 중심지로써 이들이 후에 왜국으로 이주한 주력입니다. 이들은 옹관묘 쓰다가 전방후원분씁니다. 

목씨나 사씨가 5세기 이전에 다른 지역에 나타난 경우는 없습니다.(목씨가 신라지역에 딱 한 번 나타나는데 나중에 설명합니다.) 단 이들 성씨는 지금과 같은 중국식 성씨 개념이 아니라 혈연적 종족 개념이 강했습니다. 목씨는 가야관련 사항이 많아 오래전부터 가야와 교규한 집단이거나 가야쪽에서 영산강유역으로 이주한 집단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암등 영산강유역에서 가야관련 유물이나 고분이 발견되는데 목씨들 무덤으로 생각됩니다.

한강변 세력은 본래 백제의 중심부가 아니었으나, 4세기 비류왕대에 금강유역 진왕의 외척이 되면서 백제의 중심부에 진입합니다. 8개 중 2개로 힘은 가장 미약하나, 삼국사기에서 선택받은 덕에 가장 많은 인물 기록을 남겼습니다. 해씨가 왕족이고 진씨가 왕비족이었습니다. 

해씨가 왕권을 뺏긴 것은 영락 17년 고구려와 전투한 왜병이 남해안에서 서울로 북상하면서부터입니다. 고구려의 5만 대군과 맞섰던 왜병의 지휘부가 여신이고 그 휘하에 여비가 있었습니다. 여신이 정권을 잡은 후 여비부터 왕이 됩니다. 이 분이 비유왕으로 한성백제 부여씨의 창업자입니다. 

비유왕부터 구 삼한백제 영역에 금동모, 금동신 등 위세품이 내려갑니다. 왜국으로 건너간 왕조가 아니라 나를 왕으로 섬기라는 뜻입니다. 이 위세품은 비유왕의 아들인 개로왕대까지 계속되다 왜국에서 천도해 온 왕조인 동성왕이 등장하며 정책이 조금씩 변해서 지방세력을 힘으로 제압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동성왕이 죽습니다.

일본서기는 백제가 망하자 왜국 지배층에 대하여 8개의 성으로 이루어진 팔색성 제도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이 팔색성 제도가 팔성대족에서 온 것이 아닌가 추정되는데, 백제에서 쓰던 위의 성들은 쓰지 않고 모두 바꿉니다. 그 중에 가장 높은 신분을 眞人이라고 하는데 신라의 성골/진골과 같은 개념입니다. 물론 위의 한강유역 진씨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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