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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곤지신사의 제사

백제사 조회 수 178 추천 수 0 2017.10.06 07:31:09
一道安士 *.3.199.170
일본에는 5세기 중반 오사카 일대의 최고 권력자였던 곤지에 대한 전설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다. 거기에 곤지신사라는 신사도 있어서 매년 제사를 지낸다.

[문제] 일본의 곤지신사는 매년 몇 월(음력)에 제사를 지내는가?

이 문제는 역사문제도 아니다. 역사를 몰라도 일본 곤지신사에 전화를 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또는 인터넷 검색을 해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일고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역사책을 보고 안다.

*일본서기, 청령천황, 원년(479년설과 480년 설이 있음); 겨울 10월, 웅략천황을 단비고취원릉에 장사지냈다.

따라서 답은 10월이다. 실제로 곤지신사는 매년 음력 10월에 제사를 지낸다. 

삼국사기를 보아도 곤지를 언제 장사지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문주 원년(475); 고구려에게 패하여 웅진으로 천도, 목협만치와 조미걸취가 천도를 도움. 
*문주 2년(476); 8월, 해구를 병관좌평으로 삼음.
*문주 3년(477); 2월, 궁궐을 수리함, 4월, 곤지를 내신좌평으로 삼음, 5월, 흑룡(내란을 상징)이 웅진에 출현함, 7월, 곤지가 죽음. 8월, 해구가 권력을 장악함. 9월, 왕이 해구에게 죽음.

<일부 삼국사기 판본에서 문주왕 3년 8월 이후 기사를 문주왕 4년조를 신설하여 배치한 경우가 있는데 이는 연도가 안 맞아 바로 오류임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곤지는 477년 7월에 죽었다. 

그런데 무령왕릉 지석을 보면 당시 백제왕실은 왕이 죽은 후 2년 3개월 후에 장사를 지내는 예법이 있었다. 

*무령왕릉 지석: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62세 되는 계묘년(523) 5월 7일 임진날에 돌아가셔서, 을사년(525) 8월 12일 갑신날에 이르러 대묘에 예를 갖추어 안장하고 이와 같이 기록한다.

왕이 죽으면 가묘를 만들어 매장한다. 그리고 후계자가 장례를 준비하고 능을 만들면서 왕권계승작업을 한다. 2년 3개월 후에 능에 안장하고 장사를 지내고 옥새를 받는 의식을 행하며, 자신이 새로운 왕이 되었음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한다. 무령왕의 경우 공주 정지산 유적이 2년 3개월 동안의 가묘 장소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곤지가 477년 7월에 죽었으므로 2년 3개월 후면 479년 10월에 장사를 지내야 맞다. 따라서 삼국사기에 의해서도 곤지신사의 제사는 10월이 되어야 한다. 


일본서기 웅략천황 5년조를 보면 무령왕의 출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개로왕의 아우인 곤지가 개로왕에게 임신한 부인을 달라고 해서 왜국으로 데려가다 461년 6월에 각라도라는 섬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아이는 백제로 돌여보내진다. 7월에 곤지는 왕비만 데리고 왜국의 수도에 들어간다. 곤지는 이미 이때 다섯왕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웅략도 무령왕을 제외하고 왕자가 다섯이다.

일본서기에는 웅략의 다섯 아들들 중에 이상하게 1, 3, 4자만 등장한다. 반면에 곤지는 다섯 아들들 중에 이상하게 2자만 등장한다. 그 2자가 모대(말다, M-D)왕자, 즉 훗날의 동성왕이다. 5자는 둘 다 안 나오는데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남제왕, 즉 훗날의 계체천황이다.

<전용신의 일본서기를 보면 왕비도 백제로 돌여보냈다고 해석하였는데 원문을 보면 바로 오역임을 알 수 있다. 사료는 번역을 다 믿지말고 항상 원문과 대조하면서 읽는 습관을 들어야 한다.>

무령왕은 섬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도군,' 즉 '섬왕'이라 불렸다는 것인데, 이 기록이 정확하다는 것은 무령왕릉 지석이 발견되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무령왕의 이름이 왜 사마왕(섬왕)인지를 알 수 있다.

무령왕의 아버지에 관하여 한국과 일본의 학계에는 3가지 설이 있다. 일단 삼국사기에 나온 동성왕의 제2자란 표현은 부자관계가 아니라는 표현으로 본다. 그 이유는 백제본기는 비정상적인 왕권교체의 경우, 즉 친부자관계나 친형제관계가 아닌 경우 제'2자'나 '서자'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3가지 설은 다음과 같다. 

(1) 무령왕은 개로왕의 혈통을 받았으므로 개로왕이 아버지다.
(2) 무령왕은 어머니가 이동하여 곤지의 호적에 올렸으므로 곤지가 아버지다.
(3) 무령왕은 개로왕과 곤지가 둘 다 아버지다.

참고로 동북아역사재단이 번역한 일본서기 역주 177쪽을 보면 (2)를 답으로 하고 있다. 한국사료로 보면 곤지는 461년 6월에 왜국으로 건너가, 16년을 왜국에 머물다가, 477년 4월에 백제로 귀국한 사람이다. 그런데 곤지, 즉 부여 곤은 한중일 3국 사서에 모두 이름을 남긴 사람이다. 

참고로 백제 부여씨란, 목씨, 사씨등과 함께 영산강유역에서 옹관묘를 쌓던 집단을 이른다. 이것도 왜 그런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곤지가 왜국에 간 이유에 대하여 일본학계는 <청병사설>이 다수였다. 고구려에게 대항할 군대를 요청하기 위하여 개로왕이 동생인 곤지를 왜국의 웅략천황에게 파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료 어디를 보아도 청병의 흔적은 없다. 청병사설은 한일 고대사에 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곤지와 웅략은 재위 기간이 겹친다. 더구나 같은 지역인 오사카 일대에서 세력을 펴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같은 지역에, 호랑이 같은 두 권력자가 약 20년을 공존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국내에서 나온 설은 곤지가 당시 왜국을 통치하던 웅략천황을 도우러 갔다는 것이다. 일본서기를 보면 개로왕이 임신한 자기 아내를 주며 도우라는 말을 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웅략은 타인의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쥔 절대 강자였다. 

이것도 왜국을(천황을) 도우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당시 왜국은 왕이 공립되지 못하여, 통치자가 스스로 왕을 칭하지 못하고 왕세자를 칭해야 하는 국가적 혼란기였던 것이다. 개로왕의 말은 이를 종식시켜 왜국 왕실을 안정시키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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