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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지도 글자 예측

백제사 조회 수 407 추천 수 0 2016.01.05 19:18:57
一道安士 *.202.72.51

칠지도가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고 가정하고 핵심글자를 예측하는 빈칸 넣기를 해보겠습니다.  


[1] 기년 예측

일본서기 신공황후 52년조에는 백제에서 가지가 7개인 칼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3년 전인 신공 49년도 3월에 백제가 가야 7국을 정발하는데 왜국이 군사를 보내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백제에게 정복된 가야 7국의 이름까지 죽 적어놓았는데 여기에 대가야와 금관가야도 있습니다. 이때 신라도 군대를 보내 가야를 도와 탁순국 등지에서 가야-신라 연합군이 백제-왜 연합군과 싸웠다고 하는데 가야-신라 연합군이 져서 가야는 망했으나 신라는 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게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우선 진짜로 가야가 중간에 한 번 망한 적이 있는지, 망했다면 실제로 7국이 망한 것인지 아니면 1, 2국이 망한 것을 부풀린 것인지, 3월에 망했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인지, 진짜로 이 전쟁에 신라가 참전했는지, 일본서기의 신라가 삼국사기의 신라인지, 신라는 안 망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인지,... 다 궁금합니다.
 
삼국사기를 한 번 봅시다. 망한 나라들 중에 삼국사기에 나오는 남가야(금관가야)가 있으니 가야사를 검토하여 중간에 기록 공백이 있는지를 확인하면 됩니다. 나라가 중간에 망했으면, 그리고 기록이 정확하다면 기록 공백이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삼국사기에서 가야기록을 뽑아봅니다.
 
(1) 탈해 21년(77); 秋八月, 阿湌吉門與加耶兵 戰於黃山津口 獲一千餘級 以吉門爲波珍湌
賞功也
(2) 파사 15년(94); 春二月, 加耶賊圍馬頭城 遣阿湌吉元 將騎一千擊走之
(3) 파사 17년(96); 秋九月, 加耶人襲南鄙 遣加城主長世 拒之 爲賊所殺 王怒 率勇士五千 出戰敗之 虜獲甚多
(4) 파사 18년(97); 春正月, 擧兵 欲伐加耶 其國主遣使請罪 乃止
(5) 파사 23년(102); 秋八月, 音汁伐國與悉直谷國爭疆 詣王請決 王難之謂 金官國首露王 年老 多智識 召問之 首露立議 以所爭之地 屬音汁伐國 於是 王命六部 會饗首露王 五部皆以伊湌爲主 唯漢祇部 以位卑者主之 首露怒 命奴耽下里 殺漢祇部主保齊而歸 奴逃依音汁伐主陀鄒干家 王使人索其奴 陁鄒不送 王怒 以兵伐音汁伐國 其主與衆自降 悉直-押督二國王來降
(6) 파사 27년(106); 秋八月, 命馬頭城主 伐加耶
(7) 지마 4년(115); 春二月, 加耶寇南邊 秋七月 親征加耶 帥步騎度黃山河 加耶人伏兵林薄 以待之 王不覺直前 伏發圍數重 王揮軍奮擊 決圍而退
(8) 지마 5년(116); 秋八月, 遣將侵加耶 王帥精兵一萬 以繼之 加耶嬰城固守 會久雨 乃還
(9) 내해 6년(201); 春二月, 加耶國請和
(10) 내해 14년(209); 秋七月, 浦上八國 謀侵加羅(加羅 勿稽子傳皆作阿羅) 加羅王子來請救 王命太子于老 與伊伐湌利音 將六部兵 往救之 擊殺八國將軍 奪所虜六千人 還之
(11) 내해 17년(212); 春三月, 加耶送王子爲質 - 전기가야 마지막 기사

<<기록의 공백기 270년>>

(12) 소지 3년(481); 春三月, 高句麗與靺鞨入北邊 取狐鳴等七城 又進軍於彌秩夫 我軍與百濟 加耶 援兵 分道禦之 賊敗退 追擊破之泥河西 斬首千餘級 - 후기가야 첫 번째 기사
(13) 소지 18년(496); 春二月, 加耶國送百雉 尾長五尺
(14) 법흥 9년(522); 春三月, 加耶國王遣使請婚 王以伊飡比助夫之妹送之
(15) 법흥 11년(523); 秋九月, 王出巡南境拓地 加耶國王來會
(16) 법흥 19년(532); (달이 없음) 金官國主金仇亥 與妃及三子 長曰奴宗 仲曰武德 季曰武力 以國帑寶物來降 王禮待之 授位上等 以本國爲食邑 子武力仕至角干
(17) 진흥 12년(551년); 春三月, 王巡守次娘城 聞于勒及其弟子尼文知音樂 特喚之 王駐河臨宮 令奏其樂 二人各製新歌奏之 先是 加耶國嘉悉王 製十二弦琴 以象十二月之律 乃命于勒製其曲 及其國亂 操樂器投我 其樂名加耶琴 王命居柒夫等 侵高句麗 乘勝取十郡
(18) 진흥 23년(562년); 秋九月, 加耶叛 王命異斯夫討之 斯多含副之 斯多含領五千騎 先馳入栴檀門 立白旗 城中恐懼 不知所爲 異斯夫引兵臨之 一時盡降 論功 斯多含爲最 王賞以良田及所虜二百口 斯多含三讓 王强之 乃受其生口 放爲良人 田分與戰士 國人美之


가야사 중간에 270년의 공백기가 있어서 일본서기의 기록이 합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야가 중간에 망했고 그 시기는 공백기 마지막 기록이 나오는 내해이사금 17년 직후여야 합니다. 더욱이 이 시기가 신빙성이 높은 것은 이 무렵에 가야가 포상팔국의 공격을 받는 등 약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서기 기록대로 신라가 가야를 도와 이 전쟁에 참전하였다면, 백제가 한 나라를 정복하고 이동하고, 또 다음 나라를 정복하고 이동하고, ... 7국을 정복하려면 1국당 5일만 잡아도 35일로 2달 소요됩니다. 이 정도 전쟁이면 신라본기에 어떤 형식으로건 흔적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신공 49년조의 신라가 삼국사기의 신라일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일본서기 기록대로 3월에 일곱 나라가 망했다면 신라본기를 펴고 가야기록이 끝나는 직후의 기록에서 2-3월에 출병한 기록이 있는지를 찾습니다. 그리고 신라군의 출병 방향은 경주에서 볼 때 가야 쪽이면 서남쪽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신라는 안 망했다면 신라를 구한 영웅에 대한 흔적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신라본기 내해이사금조의 가야가 사라진 다음 부분부터 봅니다.
 
내해이사금 17年, 春三月, 加耶送王子爲質. 夏五月, 大雨, 漂毁民屋. : 전기가야 마지막 기록
내해이사금 19年, 春三月, 大風折才木. 秋七月, 百濟來攻國西<腰車城>, 殺城主<薛夫>. 王命伊伐湌<利音>, 率精兵六千伐百濟, 破<沙峴城>. 冬十二月, 雷.
내해이사금 23年, 秋七月, 武庫兵物自出. 百濟人來國圍<獐山城>, 王親率兵出擊走之.
내해이사금 25年, 春三月, 伊伐湌<利音>卒. 以<忠萱>爲伊伐湌, 兼知兵馬事. 秋七月, 大閱<楊山>西.
내해이사금 27年, 夏四月, 雹傷菽麥. <南新縣>人死, 歷月復活. 冬十月, 百濟兵入<牛頭州>, 伊伐湌<忠萱>將兵拒之. 至<熊谷>, 爲賊所敗, 單騎而返. 貶爲鎭主, 以<連珍>爲伊伐湌, 兼知兵馬事.
내해이사금 29年, 秋七月, 伊伐湌<連珍>與百濟戰, <烽山>下破之, 殺獲一千餘級. 八月, 築<烽山城>.
내해이사금 31年, 春 不雨, 至秋七月乃雨. 民飢, 發倉廩賑給. 冬十月, 錄內外獄囚, 原輕罪.
내해이사금 32年, 春二月, 巡狩<西南>郡邑, 三月 還. 拜波珍湌<康萱>爲伊湌.
내해이사금 34年, 夏四月, 蛇鳴南庫三日. 秋九月, 地震. 冬十月, 大雪深五尺.
내해이사금 35年, 春三月, 王薨.
 
 
저 신라본기 기록들 중에 앞에서 말한 조건을 하나라도 만족하는 조건이 있습니까? 32년조의 기록을 봅시다. 

*내해이사금 32年, 春二月, 巡狩<西南>郡邑, 三月 還. 拜波珍湌<康萱>爲伊湌.
 
2월에 가서 3월에 왔으니 달이 일본서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일곱 나라가 망한 것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지요. 출병방향이 서남쪽입니다. 방향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강훤이 이찬으로 승진하고 있는데 승진이유는 앞의 2-3월의 출병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합당합니다.
 
신공 49년에 전쟁이 끝나고 3년 후에 칠지도가 왔다고 합니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가 이 정도로 일치한다면 신공 52년에 칠지도가 왔다는 일본서기 기록도 믿을만 합니다. 내해 32년이 227년이나 3년을 더하면 230년입니다.
 
외교에서는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연호를 씁니다. 우리가 단기 안 쓰고 서기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나라는 위나라입니다. 위나라의 230년 연호를 찾아봅니다. 魏 明帝 太和(泰和)4년입니다. 따라서 만일 그 칠지도가 발견된다면 그 칼에는 다음과 같은 연호가 적혀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太和四年 또는 泰和四年


[II] 길상구와 주고받은 사람 예측

칠지도가 230년에 간 것이라면 2, 3세기 후한시대의 풍습에 따라 칼에는 다음 3가지가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1) 태양의 기가 높음을 상징하는 길상구
(2) 칼을 준 사람
(3) 칼을 받을 사람
   

(1) 당시 길상구를 보면 丙午라는 간지(午가 정오를 상징함)를 쓰고, 태양이 머리 위에 비춘다는 뜻의 日中 혹은 正楊을 씁니다. 그리고 달은 음력으로 하지를 뜻하는 5월(만일 날짜까지 쓰면 5월 중순)을 씁니다. 즉 2-3세기 동아시아 관습을 따른다면 다음 글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丙午,
日中 혹은 正楊,
五月 또는 五月+(중순날짜)
 
상식적인 이야기인데 글자가 오래되면 획이 떨어져나가 다음처럼 보일 수 있으니 판독에 주의해야 합니다.
二 -> 一
三 -> 二
千, 五, 七 -> 十
 
(2) 신공 49년에 전쟁이 종료되었으면 그해 보내거나 늦어도 다음 해에는 칠지도를 보내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3년이나 지난 다음에 칼을 보냈다는 것은 백제 내부에 어떤 중대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외교를 늦출 정도의 사건이라면 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왕권교체의 혼란 이후 새 진왕(백제왕)왕의 즉위는 230년이나 아직 自立爲王(본즉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대외적으로 '세자'자를 붙여 백제왕이 아니라 백제왕제자를 칭하게 됩니다. 따라서 칼을 보낸 사람은 다음처럼 써야 합니다.
 
百濟王世子
 
(3) ‘무엇으로 임명하다’ 또는 ‘무엇이 되다’ 할 때는 직책 앞에 爲자를 붙입니다. 따라서 외교문서에 爲자는 함부로 쓰는 글자가 아닙니다. 칼을 받은 사람은 비미호인데 만일 비미호에게만 보내는 경우는 ‘위왜여왕’이 적합하고, 그 이후 다음 왕들에게까지 준다면 ‘위왜왕’이 적합합니다.
 
둘 중에 어느 쪽을 택하느냐 인데, 만일 칼에 '비미호'라고 쓰거나 ‘위왜여왕’이라고 쓰면 다음 왜왕은 누가 될지도 모르는 데 그 칼을 가져다 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위왜왕’ 가능성이 더 높고, 그러면 후대에 전하라는 뜻으로 後世와 傳자가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어느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17대다 하면 十七代孫이라고 하지 않고 十七世孫이라고 쓰는 것입니다. 따라서 後代라고 쓰면 틀립니다. 즉 칼을 받을 사람은 다음처럼 표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爲倭王, 後世와 傳자가 함께 나옴.


[III] 칼을 주는 사람 수식어 예측

爲倭王이란 글자가 나오면 칠지도는 책봉한다는 의미로 준 것입니다. 그런데 본즉위를 한 목지국 백제 진왕이 아니라 아직은 가즉위만 한(부득 자립위왕) 진왕인 백제왕세자에게 받는다는 것은 찜찜합니다. 

마치 아직 청문회를 통과하지 않은 장관이 국제조약에 서명을 하는 것이나 유사합니다. 그러면 장관은 상대에게 자기는 그냥 장관이 아니라 청문회통과정도는 문제가 없는 확실한 장관이라고 강조할 것입니다. 백제왕이면 문제가 없는데 백제왕세자이기 때문에 자기가 문제없는 곧 백제왕이 될 신분이라는 것을 표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일종의 안심시키기입니다. 

그러면 적어도 두 마디는 해야 합니다. (1)고대는 신분이 중요하므로 내가 신분이 다르다는 이야기와, (2)내가 힘을 가진 모든 삼한소국들의 엄들 위에 위치한 지배자라는 이야기입니다. 기술 순서는 태어난 것이 먼저고 권력자가 된 것이 다음입니다.
 
따라서 백제왕세자 앞에 나와 수식할 수 있는 글자는 다음 중에서 추정합니다. 좁은 칼 위에 쓰려면 최대한 줄여서 각각 2자씩으로 압축했다고 예상합니다. 잘 사용하지 않는 글자나 안 좋은 의미로 쓰일 가능성이 있는 글자는 당연히 제외합니다.
 
(1)□□ (2)□□ 百濟王世子
 
(1)□□: ‘신분이 다르다’는 뜻의 두 글자의 조합입니다. 자신의 출신이 일반인들과 다르게 고귀하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貴, 奇, 高, 純,... 중에 가능한대로 좋은 글자로 한 글자
 
誕, 生, 出, ... 중에 가능한대로 좋은 글자로 한 글자
 
 
(2)□□: ‘엄들의 지배자다’라는 뜻의 두 글자의 조합입니다. 엄은 순수한 우리말이니 비슷한 발음을 내는 한자에서 선택합니다.(*칠지도는 백제에서 이두를 3세기부터 사용했다는 증거입니다)
 
高, 大, 太, 聖, 王, 皇,... 중에 가능한대로 좋은 글자로 한 글자
 
廉, 念, 閻 , 嚴, 儼, 音, 噾, 崟, 愔, 窨, 荶 ... 엄, 염, 음에 해당하는 소리를 내는 글자들 중에 가능한대로 좋은 글자로 한 글자

(1)(신분) (2)(권력) 百濟王世子
 

[IV] 칼의 재료와 구조 예측

가지가 7개인 칼의 재료와 모양도 예측이 가능합니다. 4세기 후반이 되면 한반도에 손잡이에 금이나 은으로 용이나 봉황을 만들어 넣은 환두대도가 등장합니다. 

한강유역은 말갈문화권, 즉 고구려문화권으로 전투용이 아닌 의례용 장식대도는 안 나옵니다. 신라는 말, 백제는 칼, 고구려는 활 문화입니다. 

장식대도는 충청이남의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만 나옵니다. 따라서 칠지도 손잡이에 용무늬나 봉황무늬 조형이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고리칼(환두대도)도 아닙니다.
 
3세기 무렵에는 칼 표면에 홈을 파고 재료를 집어넣어 글자를 새기는 상감대도가 유행이었으므로 칠지도는 상감대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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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가지신 분은 저처럼, 칠지도가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고 가정하고 글자를 예측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댓글 '1'

역사를바로알자

2016.01.13 18:39:29
*.142.176.234

잘 읽고 갑니다.
여담 한번해보겠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1년반정도 있었고, 일본어는 어느정도 알아듣는 편입니다
우연히 유투브에서 일본과 백제에 관련된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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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규슈 지방에 구마모토라는 도시에 있는 박물관에 노부부가 가서 그 경험담을 말하는 거였습니다.
물론 카메라촬영은 금지라서 못 찍었습니다만, 노부부중 여성분이 들어갔다가 나와서 하는 말 중에
자신들이 배웠던 역사가 다르다고, 백제의 역할을 그렇게 큰 지 몰랐다고 하면서, 백제가 일본일수도 있다라는 말과 일본 왕가가 백제의 왕가라고 말한 동영상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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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또 다른 지역의 박물관에 간 동영상이 있는데.. 그 박물관에는 아스카..?비조.? 이야기가 나오면서..
4~5세기 일본은 고구려(코레이),백제(쿠다라),가야(카야),신라(시라기)로 이름이 영역 위에 있고, 영
역이 표시된 지도를 보여주면서 박물관관계자가 노부부에게 설명하더군요..
이 박물관은 일반 박물관처럼 팜플렛에 소개가 잘 되어 있거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것 같다라면
서 의구심을 품은 노부부에 말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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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역사의 깊이가 깊지는 않지만 관심은 정말 많습니다..
이런 동영상이 있다는 것도 알려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남김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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