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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본기는 원칙적으로 모든 왕에 대하여 왕비를 기록하고 있다. 백제본기는 원칙적으로 모든 왕에 대하여 왕비를 기록하지 않고 있다.
고구려본기는 왕비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여 원칙이 없는 듯 하다. 하지만 고구려는 신라나 백제와 다르게 원칙적으로 후계자를 태자로 세운다.
고구려 왕의 비들 중에 가장 서열이 높은 정실 왕비는 왕후라 부른다. 그리고 그 다음이 왕비이다. 이는 일본서기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왜국이 4세기 이전 한반도에 백제라는 이름을 걸고 있을 때 정실 왕비는 근초고왕조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왕후였을 것이다. 8세기에 일본서기 쓸 때 왕후-왕비-왕부인를 황후-황비-황부인으로 고쳤다.
고구려와 삼한백제는 왕후라 호칭하였으며, 신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따라 왕비라 호칭하였다. 그러면 한성백제는 무엇이라고 호칭하였을까? 4세기까지는 아신왕조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부인이라 호칭하였고, 5세기 이후는 무령왕릉지석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왕비라 호칭하였다고 생각한다.
태자: 태자책봉을 받은 아들
원자: 태자책봉을 받지 못한 아들
장자: 실제 아들
제2자: 본래는 왕이 될 신분이 아니었으나 운이 좋아 왕이 된 사람
제3자: 본래는 왕이 될 신분이 아니었으나 억지로 왕이 된 사람
동모제: 혈통이 무관한 후계자
계제: 혈통이 무관한 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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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동명성왕 - 해모수의 아들
예씨부인 - 하백의 딸
소서노 - 졸본부여 왕녀 *고구려본기에서 탈락됨
*19년 봄 4월, 왕자 유리를 태자로 삼음
2. 유리왕 - 동명성왕의 아들
송씨부인 - 비류국 송양의 딸
화희 - 골천사람의 딸
치희 - 한나라 사람의 딸
*23년 봄 2월, 왕자 해명을 태자로 삼움.
*33년 봄 3월, 왕자 무휼을 태자로 삼음
3. 대무신왕 - 유리왕의 제3자
첫째 왕비 - 출신 없음 *왕자 호동 제거
둘째 왕비 - 갈사왕 손녀 *왕자 호동의 어머니
*15년 겨울 12월, 왕자 해우(모본왕)를 태자로 삼움
4. 민중왕-유리왕의 아들, 대무신왕의 동생
왕비 - 기록 없음
5. 모본왕 - 대무신왕의 원자
왕비 - 기록 없음
*원년 겨울 10월, 왕자 익을 왕태자로 삼음
[해설 1]
고구려는 후계자를 태자로 삼는 원칙이 있다. 하지만 태자를 결정하는 것은 왕이 아니라 왕비와 왕자들이 서로 얽혀서 싸우다가 승리자가 스스로 태자가 되는 것이다. 유리왕도 다른 왕자들을 제거하고 태자가 되었으며, 대무신왕은 유리왕이 죽은 후에 스스로 정권을 장악하고 태자가 되었다. 이 풍습은 후대에도 이어져 장자가 자동적으로 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능력 위주로 태자가 되는 전통이 생겼다.
민중왕은 태자가 아니었으나 대무신왕 이후에 왕자가 어리다는 이유로 왕권을 장악하고 후계자가 되었다. 4-5대는 혼란기로서 왕비 기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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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사 - 유리왕의 아들
비 - 부여사람
6. 태조대왕 - 재사의 아들
왕비 - 기록 없음
7. 차대왕 - 태조대왕의 동모제
왕비 - 기록 없음
8. 신대왕 - 태조대왕의 季弟(막내 동생)
왕비 - 기록 없음
*12년 봄 3월, 왕자 남무(고국천왕)를 왕태자로 삼음
[해설 2]
고구려 왕통이 해씨에서 고씨로 바뀐다. 재사를 유리왕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정통성 때문에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대왕은 태조왕과 전혀 무관하며 이전 해씨 왕통으로 추정된다. 신대왕 역시 태조대왕의 먼 친척 정도로 추정된다.
6-8대 3대왕이 모두 왕비 기록이 없는데, 이 시기가 왕통 교체기이자 대 혼란기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결국 4-8대까지 5대가 왕비 기록이 빠졌는데 이는 우연한 기록의 망실이 아니라, 어떤 집필원칙에 의하여 빠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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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고국천왕 - 신대왕의 제2자
우씨 - 제나부 우소의 딸
10. 산상왕 - 고국천왕의 아우
우씨 - 제나부 우소의 딸
주통촌 여자
* 17년 봄 정월, 교체(동천왕)를 왕태자로 삼음
11. 동천왕 - 산상왕의 아들
왕비 - 기록 없음
* 17년 봄 정월, 왕자 연불(중천왕)을 왕태자로 삼음
12. 중천왕 - 동천왕의 아들
연씨 - 출신 없음
관나 부인
*8년 왕자 약로(서천왕)를 왕태자로 삼음
13. 서천왕 - 중천왕의 제2자
서부 대사자 우수의 딸
[해설 3]
3세기의 고구려는 모두 왕비기록이 존재하고 후계자를 태자로 책봉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대단히 정상적이다. 태자를 책봉할 때 왕자 아무개를 태자로 삼았다고 하였는데 산상왕조는 왕자 교체(훗날의 동천왕)가 아니라 그냥 교체를 태자로 삼았다고 하고 있다. 교체는 왕자가 아니었는가? 왕자가 아닌 사람도 태자가 될 수 있었을까? 단순히 기록상의 실수인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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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봉상왕 - 서천왕의 태자
왕비 - 기록 없음
15. 미천왕 - 고추가 돌고의 아들
왕비 - 기록 없음
*15년 봄 2월, 왕자 사유(고국원왕)를 태자로 삼움
16. 고국원왕 - 미천왕의 태자
왕비 - 전연에게 포로가 됨. 돌아오지 못함.
*25년 봄 정월, 왕자 구부(소수림왕)를 왕태자로 삼음.
17. 소수림왕 - 고국원왕의 아들
왕비 - 기록 없음
18. 고국양왕 - 소수림왕의 아우
왕비 - 기록 없음
*3년 봄 정월, 왕자 담덕(광개토왕)을 태자로 삼음.
19. 광개토왕 - 고국양왕의 아들
왕비 - 기록 없음
*18년 봄 여름 4월, 왕자 거련(장수왕)을 태자로 삼음.
[해설 4]
4세기가 되면 왕비기록들이 자취를 감추어 왕실의 제도에 어떤 변고가 발생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왜 고국원왕조의 왕비는 왕후가 아니라 왕비인가? 혹시 전쟁 중에 포로가 되면서 왕후에서 왕비로 내려간 것은 아닌가?
광개토왕의 어머니는 누구인가? 광개토왕의 어머니는 광개토왕비문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광개토왕비문에 나오는 대무신왕 다음의 17세손이라는 구절을 두고, 대수가 아니라 생물학적인 대수를 따지려하는 경우를 보았는데, 왕통이 여러번 바뀌는데 어떻게 생물학적인 대수를 따진다는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